니켈·리튬·코발트·구리 등 전기자동차 핵심소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국들이 ‘탄소배출 제로(0)’를 내걸면서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는 마당에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생산·물류차질, 재고감소 등 여러 악재마저 겹쳐 이들 금속 가격이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전기차 니켈 선물 3개월물 가격은 지난 14일 t당 2만2850달러를 기록해 2012년 2월 이후 가장 높았다. 지난달 17일(1만9370달러)보다도 17.9% 올랐다. 니켈 재고량은 36주 연속 감소해 사상 최저 수준(9만7746t)으로 곤두박질쳤다.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기 위한 필수 소재인 니켈은 배터리 성능을 결정하는 양극재에서 에너지 밀도를 높여 전기차 1회 충전 후 주행거리를 늘려 준다.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

최근 니켈 수요는 글로벌 전기차 붐에 힘입어 급증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지난해 12월에 판매된 신차 4대 중 1대가 전기차였고, 지난해 상반기 미국에서 판매된 신차 가운데 전기차는 100대 중 2.4대였지만 2025년에는 13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다 세계 니켈 소비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스테인리스강 공장이 몰려 있는 중국의 경기회복 기대감도 가격 상승에 한몫했다.

반면 니켈 공급은 불안하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세계 공급의 25%를 담당하는 최대 공급국인 인도네시아가 스테인리스강에 주로 쓰이는 니켈선철(NPI)과 페로니켈(니켈철)에 수출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공급부족 우려가 커졌다. 니콜라스 스노든 골드만삭스 상품 애널리스트는 “전기차 인기로 니켈 수요가 폭증하고 있지만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향후 12개월간 니켈 목표가를 t당 2만4000달러로 제시했다. 

리튬 가격은 1년 새 무려 500% 이상 치솟았다. 탄산리튬 가격은 이날 ㎏당 312.5위안(약 5만8700원)까지 올랐다. 지난해 1월 4일 48.5위안이었던데 비하면 544%나 폭등했다. 지난해 7월 23일(80위안) 급등세가 본격 시작되면서 6개월 만에 300% 가까이 상승했다.

리튬은 매장량이 세계적으로 풍부한 편이지만 배터리용으로 전환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광물이다. 채굴 과정에서 환경파괴 우려가 크고 채굴 인허가를 얻는데도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기가 힘들다. 이런 까닭에 글로벌 자원기업들이 앞다퉈 리튬광산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 승인과 환경단체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리튬 최대 생산국인 호주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대적으로 광부를 해고한 탓에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고, 중국이 다음 달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대기오염 관리를 위해 북부에 밀집된 리튬공장의 가동을 통제하고 있다는 점도 악재다.

리튬의 수요는 앞으로도 당분간 공급을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분석기관인 S&P글로벌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리튬 공급량은 지난해 49만7000t에서 올해 63만6000t으로 증가하는데 그치는 반면 리튬 수요는 같은 기간 50만4000t에서 64만1000t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공급보다 수요가 2000t 정도 더 많아지는 것이다. 에너지컨설팅 기업인 우드맥킨지의 개빈 몽고메리 배터리원재료 연구디렉터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이전 사이클에서처럼 리튬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은 없다”면서도 “매우 높은 성장세로 인해 앞으로 몇 년간 리튬 가격은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발트 가격도 무섭게 오르고 있다. 지난해 1월4일 t당 3만3000달러였던 코발트 가격은 이날 7만165달러로 1년 만에 2배 이상 상승했다. 2018년 11월 이후 최고치다. 코발트의 절반가량이 매장된 아프리카 콩고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항구 더반을 거쳐 운송되는 코발트 무역로가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로 제 기능을 못 하는 탓에 공급 불안은 더 가중되고 있다. 투자전문 매체인 벤징가는 “지금은 전기차에 사용되는 코발트가 23%에 불과하지만 향후 수십 년간 코발트 수요는 전기차가 주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구리 가격의 상승세 역시 두드러진다.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3월23일 t당 4617.5달러까지 떨어졌던 구리 가격은 이날 9900달러로 2배 이상으로 뛰었다. 급증하는 전기차 수요에다 재고 감소에 따른 공급 우려, 중국이 경기부양 조치를 추가로 내놓을 것이란 기대감 등이 구리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전기차에는 손가락 굵기 이상의 구리 소재 버스바(busbar·전기차용 케이블)가 많이 들어간다. 내연기관차와 비교하면 전기차에는 구리가 20배 이상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의 니켈 광산.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인도네시아의 니켈 광산.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구리 공급은 불안정한 상황이다. 유럽의 주요 구리 생산국인 스웨덴과 네덜란드 등이 러시아의 가스공급 제한에 따른 전력난으로 구리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에서 광산산업에 비판적인 학생운동가 출신 좌파 정치인 가브리엘 보리치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는 환경보호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광산 산업 활성화에 반대하고 있다.

리튬과 코발트, 구리 등 전기차 핵심 소재 가격은 앞으로도 급등할 여력이 크다. 무엇보다 이들 금속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리튬 수요는 지난해 10만5000t에서 2030년 69만6000t으로 증가한다. 같은 기간 니켈 수요는 28만t에서 238만t으로, 코발트 수요는 9만2000t에서 17만t으로 각각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이런 만큼 배터리 부족으로 전기차를 만들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자원업체 차이나몰리브덴이 콩고에서 코발트 생산량을 2배 늘리기로 하고 중국 전기차업체 비야디(BYD)가 칠레에서 8만t 규모의 리튬 채굴권을 따내는 등 중국이 자원 독식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이 배터리 소재 광산의 소유주가 되는 사례가 많다”며 “소재 수급을 둘러싸고 갈등이 일어날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친환경에너지 전환이 향후 수십 년 간 전례 없을 정도로 금속 자원에 대한 수요를 늘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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