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조원 가까운 자영업자 부채가 또 다시 화두로 등장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등 금융지원 조치 기한이 오는 3월 말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2년 간 늘어난 것은 빚밖에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자영업자들은 기한을 더 늘려달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기한 연장은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는 은행권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자영업자 부채는 887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자영업자 대출 증가율은 1년 전보다 14.2%(110조1000억원) 상승했고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 말보다는 29.6%나 치솟았다. 대출 증가율(전년 대비)은 2020년 1분기 10.0%에서 2분기 15.4%, 3분기 15.9%, 4분기 17.3%, 2021년 1분기 18.8% 등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 이후 2분기(13.7%)와 3분기(14.2%)에는 다소 둔화됐지만 10%선인 가계대출 증가율보다 높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자영업자들이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충격을 빚으로 버티면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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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의 질도 좋지 않다. 자영업 대출자 10명 중 1명은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끌어다 쓴 다중채무자이고, 대출액도 평균 6억원에 육박했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다중채무자는 27만2308명으로 개인사업자 대출자(276만9609명)의 9.8%를 차지했다. 2019년 말(12만8799명)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다. 다중채무자의 대출금액도 101조원에서 157조원으로 늘어나면서 다중채무자 1인당 대출액은 평균 5억7655만원에 이른다. 한은과 금융권, 금융당국 등은 다중채무자를 대표적 취약 채무자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지표들은 그리 나쁘지 않다. 국내 은행들의 개인사업자 대출의 연체율은 지난해 11월 말 0.2% 수준이다. 코로나 사태 전인 2019년 말(0.29%)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폐업률 역시 2020년 기준 11.8%로 2019년(12.7%)보다 낮다. 금융당국이 대출 만기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등 각종 지원책을 쏟아낸 덕분이다. 금융당국은 2020년 4월부터 전 은행권이 참여한 코로나19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세 차례 연장하며 모두 272조2000억원(지난해 11월 말 기준)을 지원했다. 이중 만기연장이 258조2000억원, 원금상환 유예가 13조8000억원, 이자상환 유예가 2354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금융지원 조치 기한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자영업자들에게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코로나19로 입은 충격에서 회복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마당에 금융지원부터 끊어질 경우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추가연장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자영업자들의 요구다. 특히 대통령 선거가 40여일 남은 시점이어서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요구도 거세다.

소상공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지금 정상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재연장 조치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도 “당초 3월 말을 종료 시기로 정한 것은 ‘단계적 일상 회복’을 감안한 조치”라며 “오미크론이라는 코로나 새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하고 거리두기가 강화됐기 때문에 탄력적으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은행권은 조건 없이 기한을 연장하는 것은 부실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스크 점검 등을 통해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3000만원을 3%대로 대출받은 경우 한 달 이자가 7만~8만원 정도 되는데 이마저 못 내겠다고 하는 대출자는 사실상 만기 이후 원금도 갚을 수 없다고 봐야 한다”며 “그런 대출자를 솎아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지원 조치 연장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금융위원회는 지난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소상공인 부채리스크 점검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는 소상공인 부채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루는 금융당국 차원의 사실상 첫 회의였다. 간담회에는 이찬우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과 이상형 한은 부총재보, 서정호 금융연구원 부원장, 남창우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 홍운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부원장, 김영일 나이스평가정보 리서치센터장, 김영주 IBK기업은행 부행장, 오한섭 신한은행 부행장 등이 참석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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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간담회에서도 코로나 대출 만기연장과 상환유예 조치 재연장과 종료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금융지원 조치가 장기화하면서 잠재부실과 장기유예 대출자의 상환부담 누적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9월 이 조치를 추가 연장키로 결정할 당시 올해 3월 종료하는 게 목표라고 밝힌 이유기도 했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부원장은 “금융지원 조치를 언제까지나 지속할 수는 없으며, 조치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시장 충격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질서 있는 정상화 추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창우 KDI 부원장은 “연장 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이고 대상을 제한하는 등의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홍운선 벤처기업연구원 부원장은 “소상공인들은 매출감소와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금융비용 부담이 큰 상황인 만큼 코로나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추가 연장하기를 희망한다”며 “소상공인 금융지원 조치 출구전략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경영상황별 맞춤형 지원책 마련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금융지원 조치 종료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정상화 과정에서 자영업자들이 급격한 일시상환 부담을 겪거나 금융이용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충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며 “현재 금감원 등과 함께 자영업자의 경영·재무 상황을 정밀분석하고 있는데, 이를 토대로 맞춤형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금융시장과 산업 내 잠재부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과감하고 선제적인 채무조정 시행 등을 통해 건전성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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