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역대급 호실적을 기록한 금융사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금융소비자 대부분이 어렵게 버티고 있는 현실에 아랑곳없이 이자놀이로 번 돈을 금융사들이 두둑한 성과급으로 안에서 나눠먹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당기순이익 전망치 평균은 전년(2020년)보다 33% 늘어난 14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순이익 규모가 역대 최대다. 영업이익 전망치 평균도 30% 증가한 20조1000억원으로 전망됐다. 4대 금융지주의 실적이 좋은 것은 시중은행들의 이자이익이 대폭 늘어난 데다 증시 활황에 힘입어 증권사 등 비은행 계열사의 수수료 등 비이자이익도 증가한 점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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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해 1~3분기 누적기준 4대 금융지주의 순이자이익은 전년보다 15%(3조원) 증가한 26조3000억원에 이른다. 이자이익이 대폭 늘어난 것은 시중금리 상승 속에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는 빠르게 인상한 반면 예금금리는 상대적으로 천천히, 그리고 소극적으로 올리면서 예대마진(대출과 예금금리 차이에 따른 이익)을 확대한 덕분이다. 올해 한국은행이 두 차례 이상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보여 금융사 예대마진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중은행들이 사상 최대 수준의 경영 실적을 거두면서 금융지주 핵심 자회사인 은행 직원들의 성과급 규모도 커졌다. 우리은행 노사는 지난달 ‘기본급 200% 경영성과급 지급’ 등에 합의했다. 직원 사기 진작 명목으로 기본급 100%와 100만원도 더해졌다. 직원들은 사실상 지난해 실적에 대한 성과급으로 기본급의 300% 이상을 받는 셈이다.

KB국민은행도 성과급을 월 통상임금(기본급 개념)의 300%로 정하며 전년(통상임금 200%+150만원)보다 지급액을 늘렸다. 신한은행 직원들은 경영성과급으로 기본급의 300%를 받는다. 특별지급분으로 직원들에게 100만 마이신한포인트도 지급됐다. 하나은행 역시 특별성과급을 기본급의 300%로 결정했다.

증권업계의 경우 일부 증권사는 실적 연동으로 연봉의 50% 이상 받은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성과급으로 1억원을 받았다는 30대 증권사 직원의 경험담이 올라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증권업은 회사와 부서, 직군별로 임금 체계에 차이가 큰 만큼 성과급 비중을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다른 업종에 비해 급여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다. 개인 투자자 주식거래 증가, 역대급 기업공개(IPO·상장) 등에 따른 증권업계 실적 개선이 직원들의 거액 성과급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증권사 성과급 증대로 직원들의 평균 연봉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대형 증권사 중 처음으로 평균 2억원을 넘긴 메리츠증권의 연봉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이미 1억7000만원을 넘어섰다.

보험업계에서는 업계 1위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지난해 양호한 실적을 낸 덕분에 성과급 봉투가 두툼해졌다. 삼성화재는 연봉의 평균 36%, 삼성생명은 평균 17% 성과급을 받았다. 삼성생명의 한 관계자는 “실적이 회사의 목표치를 초과해 성과급을 지급했다”고 말했다. 메리츠화재는 올해도 ‘역대급’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표준연봉’의 평균 30%가 넘는 성과급을 지급한데 이어 올해는 평균 40% 이상을 지급할 것으로 전해졌다. 짭잘한 실적을 올린 것으로 알려진 DB손해보험은 표준연봉의 33%가량을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금융소비자연맹은 “손해는 보험료를 올려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이익은 임직원이 나눠 갖는 것은 이율배반적 소비자 배신행위”라며 “보험료 인상을 멈추고 이윤을 소비자와 공유하는 조처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역대급 실적과 성과급 잔치에 흑자를 낸 자동차 보험료를 내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카드업계의 경우 삼성카드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보다 더 많은 성과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계 카드사인 신한카드와 국민카드, 우리카드 등도 성과급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은행 수준과 비슷한 선에서 지급됐거나 지급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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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금융사들이 이자와 수수료로 낸 수익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데 대해 난감해 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사의 성과급 지급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는 자제하면서도 대손충당금 확충 등 위기에 대비한 완충능력 보강에 재원을 쌓으라고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금융사들의 성과급 지급과 관련해 “지금 상황에서는 앞으로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손실 흡수능력을 확충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기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직원들과 나누는 것은 별로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의 폐업과 도산이 속출하는 가운데 금융소비자들의 돈을 굴리는 금융사들의 대규모 성과급을 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대출금리는 재빠르게 올린 반면 예금금리는 차일피일 늦게 올려 예대마진을 챙기며 수익을 늘려왔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예대금리차 폭리를 막기 위한 논의가 시작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실제로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예대금리차 공시 의무화와 금융위원회 개선 권고 등의 내용을 담은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은행이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및 그 차이(예대금리차)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정기적으로 공시해야 한다는 내용 등의 신설항목을 담고 있다.

은행 직원들의 성과급을 대폭 늘린 것도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급증한 가계대출로 이자이익이 급증한 것을 경영성과로 볼 수 있는지와 그 이익을 성과급으로 직원들끼리만 나눠 갖는 게 바람직한 지에 대한 이견 때문이다. 은행의 이자수익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빚투(빚내 투자)’ 등 투자 수요와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생활자금 수요 등이 겹쳐 가계대출이 많이 늘어난 데다 금리까지 오른 바람에 대폭 증가했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수익이 많이 나서 그에 맞춰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이며 은행의 사회적 기능을 고려해 다양한 사회공헌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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