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기업들의 자금조달 환경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그동안 1%대의 저금리로 시중자금을 끌어들였던 기업들은 요즘 1년 전보다 배 이상 높아진 이자를 물어야 할 판이다. 글로벌 주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금리인상을 서두르고 있는 데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 물가상승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해소되지 않고 남아있는 등 채권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자금조달을 검토하던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금리인상 속도가 시장 예상보다 더 빠를 것으로 전망돼 비우량기업들은 자금난에 내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권시장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부터 가파르게 오르던 국고채 금리는 올 들어 상승 폭이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14일 국고채 3년물은 금리 2.347%, 10년물은 금리 2.714%로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해 9월 초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408%, 10년물 금리는 1.927%이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리인상 기조와 물가상승률 급등 등 대외적 불안 요인과 함께 정치권에서 추가경정예산 증액 논란까지 불거지며 채권금리가 상승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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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회사채 금리도 덩달아 뜀박질을 하고 있다. 3년 만기 기준 ‘AA-’등급 회사채 금리는 이날 2.926%로 1년 전 1.311%에 비해 약 1.615%포인트 올랐다. 올해 초 60.7bp(1bp=0.01%p)에서 시작한 회사채 ‘AA-’ 등급 3년물과 동일 만기 국고채 간 크레디트 스프레드는 한때 56.1bp까지 축소됐으나, 이날 기준 57.9bp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1월 같은 기간 크레디트 스프레드는 41.8bp에서 32.1bp까지 10bp 가까이 축소된 것과 대조적이다. 회사채 투자 심리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크레딧 스프레드는 신용등급 AA-기준 회사채 3년물 금리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를 뺀 것을 말한다, 수치가 커질수록 회사채 발행 환경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연초부터 쏟아진 회사채 발행물량도 채권금리 상승을 부채질했다. 앞으로 회사채 금리가 더욱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회사채 발행물량은 6조7534억원으로 집계돼 전년 같은 기간 5조9702억원보다 13%가량 늘어났다. 더욱이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직후인 3주 차에만 1월 발행 물량의 75%가 집중됐다.

이에 따라 우량기업들은 연 3% 안팎의 금리로 자금조달을 하고, 비우량기업들이 부담해야 하는 이자는 연 9%에 육박했다. 둘 다 201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금리인상 속도가 시장 예상보다 빨라지면서 저금리 기조에 힘겹게 버텨온 한계기업들이 자금난에 내몰릴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는 이유다.

채권평가회사들에 따르면 우량 회사채(신용등급 AA급 이상)의 평균 이자비용은 지난 9일 2.8% 수준으로 8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1년 전(1.3% 수준)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높다. 기관투자가들이 시장금리 상승(채권가격 하락)에 따른 평가손실을 우려해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게 가장 큰 악재다. 대기업이라도 1년 전보다 2배 이상의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신세계(AA)는 지난 9일 연 2.96% 금리로 3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했다. 2012년 수요예측 제도 시행 이후 신세계가 발행한 3년물 가운데 가장 비싼 이자를 물게 됐다. 지난해 1월 발행 당시 금리(연 1.21%)와 비교하면 2.4배나 된다. 호텔롯데(AA-)도 지난 7일 3년 만기 회사채를 연 3.25% 금리로 발행했다. 10대 그룹 우량 계열사 3년물의 연 3%대 발행은 8년 만이다. 이 회사의 1년 전 발행금리는 연 1.46%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량기업마저 모집금액을 채우지 못하는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CJ프레시웨이(A)와 LS전선(A+) 등이 수요예측 과정에서 당초 예정 모집물량을 채우지 못했다. CJ프레시웨이가 1000억원을 모집하는 3년물에 520억원, LS전선이 600억원을 모집하는 5년물에는 400억원의 주문만 들어왔다. 지난해 다반사였던 언더발행(회사측 제시금리보다 낮은 금리에 발행) 기업은 자취를 감췄다. 코웨이(AA-), 포스코에너지(AA-), CJ제일제당(AA) 등이 언더발행에 실패했다.

때문에 발행계획을 연기하는 회사들도 나오고 있다. 한솔제지(A)는 투자심리가 얼어붙자 1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계획을 중단했다. 한솔제지(A)와 현대위아(AA-), HDC현대EP(A-), 현대건설(AA) 등은 발행계획을 잠정 연기한 상태다. 시가총액 1위 건설사 현대건설은 금리인상에 HDC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붕괴사고로 이달 계획한 자금조달을 다음 달 이후로 미뤘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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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 발행을 준비하던 기업들도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발행을 재검토하고 있다. 롯데지주(AA)는 지난달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수요예측을 실시하려 했다가 회사채 발행을 한차례 연기했다.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금리가 더 오르기 전에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의 발행공급이 역대급으로 많이 쏟아진 가운데 대내외 시장금리 급등이 채권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고 분석했다.

비우량기업들은 사정이 더욱 어렵다. 비우량 투자적격 최하단인 BBB-급 회사채 평균 금리는 8년 만의 최고 수준인 연 9%에 근접하고 있다. 2014년 6월 후 8년 만이다. 채권평가사들에 따르면 BBB- 3년물 평균 금리는 지난 9일 기준 연 8.72%를 나타냈다. 지난해 9월 이후로만 1.02%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국고채 3년물이 연 2.27%로 0.88%포인트 상승한 것과 비교할 때 빠른 속도다.

하지만 채권시장이 당분간 안정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선발행 증가와 투자수요 감소로 오는 4월까지 회사채의 수급 불균형이 지속될 것”이라며 “발행시장 약세로 스프레드 확대가 유통시장의 크레디트 스프레드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장기화로 영업실적 회복이 늦어지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마저 다음달 종료를 앞둔 상황이어서 재무안정성 유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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