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가격인상 폭과 거래처를 나눠 영업망을 챙기기로 짬짜미한 아이스크림 업체들이 거액의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 물가상승률이 고공행진을 지속하면서 국민경제에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물가상승을 부추기는 담합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법위반 적발 시 무관용원칙에 따라 엄중 제재하겠다는 게 정부 당국의 입장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빙그레와 해태제과, 롯데지주, 롯데제과, 롯데푸드 등 5개 아이스크림 업체에 아이스크림 판매·납품가격 및 소매점 거래처 분할 등을 담합한 행위로 과징금 1350억4500만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번 과징금은 2015년 대법원의 무죄선고로 과징금을 부과하지 못한 라면담합을 제외하면 식품 담합사건 관련 역대 최대 규모다.

회사별 과징금은 ▲빙그레 388억3800만원 ▲해태제과 244억8800만원 ▲롯데제과 244억6500만원 ▲롯데푸드 237억4400만원 ▲롯데지주 235억1000만원이다. 빙그레와 롯데푸드의 경우 조사과정에서 불성실한 협조, 법위반 전력 등을 고려해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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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5개사의 담합 관련 매출액을 3조3000억원 규모로 파악해 과징금을 매겼다. 과징금 부과율도 5%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들의 담합행위가 4년 가까이 지속된 데다 짬짜미에 참여한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이 84.7%에 이르는 만큼 사실상 아이스크림 가격이 담합으로 올랐다고 판단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5개사는 아이스크림 주요 소비층인 저연령 인구 감소, 소매점 감소세에 따라 납품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수익성이 떨어지자 2016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3년 8개월간 짬짜미했다. 담합은 이 기간 동안 아이스크림의 독특한 유통구조를 이용해 거래처·가격·입찰 등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아이스크림은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 편의점, 동네슈퍼, 아이스크림 전문점 등에서 판매된다. 소매 판매처마다 유통방식이 제각각인 만큼 소비자가격에도 차이가 난다. 동네슈퍼나 아이스크림 전문점의 경우 주로 대리점을 통해 아이스크림을 공급받는다. 이들 소매점은 한 곳의 대리점과 공급계약을 맺고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받아 판매한다. 아이스크림 전용 냉장고를 대리점에서 대여해주기 때문이다.

제조업체 대리점은 많은 소매점을 납품처로 유치하기 위해 납품가를 인하하며 경쟁하는 바람에 ‘출혈’이 커졌다. 이에 2016년 2월 경쟁사가 거래 중인 소매점에 높은 지원율을 제시해 자신의 거래처로 바꾸는 영업경쟁을 하지 않기로 제조사들은 몰래 합의했다. 합의를 어기고 경쟁사의 소매점을 빼앗아 갈 경우 대신 자신이 가진 기존 소매점을 경쟁사에 주기도 했다. 그 결과 경쟁사의 납품 소매점을 빼앗은 개수는 급감했다. 2016년 719개에서 2017년 87개, 2018년 47개, 2019년 29개로 큰 폭으로 감소했다.

대형마트와 SSM, 편의점은 제조업체로부터 직접 아이스크림을 공급받는다. 이들 소매점은 할인행사와 덤증정(2+1) 등을 통해 낮은 납품가격을 제안한 제조사의 제품을 대량매입해 판매한다. 제조업체들은 납품가격을 낮춰 거래처를 늘리고, 대량매입을 유도하는 등 매출증대를 위해 경쟁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짬짜미가 이뤄졌다. 2017년 8월 제조업체들이 납품계약을 하면서 편의점의 마진율을 합의할 때 제조사끼리 마진율을 45% 이하로 낮추기로 담합했다. 편의점의 마진율이 낮아지면 납품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편의점의 ‘2+1’ 같은 덤 증정 판촉 아이스크림 품목도 짬짜미를 통해 3~5개로 축소하기도 했다.

직접적인 가격 담합도 이뤄진다. 2017년 4월 롯데푸드와 해태제과는 거북알·빠삐코, 폴라포·탱크보이 등의 튜브류 제품의 소매점 판매가격을 800원에서 1000원으로 동시에 올렸다. 2018년에는 티코와 투게더, 호두마루 등 홈류(가정용 대용량) 제품의 소매점 판매가격을 할인 없이 4500원으로 고정하는 짬짜미를 했다. 2017년 8월에는 대형마트와 SSM 등을 대상으로 콘류·샌드류 판매가격은 700원, 바류 판매가격은 400원, 튜브류 판매가격 600원, 홈류 판매가격은 3600원으로 각각 인상했다. 2019년 8월에는 모든 유형의 아이스크림 제품의 판매가격을 20% 일괄 인상하기도 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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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납품하는 아이스크림 판매가격 역시 담합 대상이었다. 5개 제조사는 2019년 1월 월드콘과 구구콘, 부라보콘 등 콘류와 붕어싸만코와 같은 샌드류의 판매가격 인상에 합의해 가격을 1500원에서 1800원으로 올렸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의 경우 매입 규모가 커 제조업체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데 제조사는 짬짜미를 통해 자신들의 협상력을 끌어올린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아이스크림 구매입찰 과정에서도 담합한 사실이 드러났다. 현대차는 임직원용 아이스크림 구매를 위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차례 구매 입찰을 했는데 제조사끼리 순번을 합의해 높은 가격으로 낙찰이 이뤄지도록 한 혐의가 드러났다. 해마다 3개사가 낙찰받아 아이스크림 14억원어치를 납품했다.

공정위는 2007년에도 빙그레, 롯데제과, 롯데삼강, 해태제과 등 4개사가 아이스크림 판매가격을 담합한 사실을 적발하고 45억1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조홍선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대표 국민간식인 아이스크림 가격 상승을 초래한 다양한 형태의 담합을 시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2007년 가격담합 제재에도 불구하고 다시 발생한 담합에 대해 거액의 과징금 부과 및 검찰고발 조치를 행함으로써 향후 아이스크림 판매시장에서 경쟁질서가 확고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아이스크림 담합사건에 대한 제재가 정부의 물가잡기 대책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조치라는 관측이 나온다. 소비자물가가 4개월째 3%대를 이어가는 데다 국제유가 상승 등으로 물가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정부가 업계에 물가억제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는 이례적으로 공정위를 대동해 식품업체들과 만나 물가안정 협조를 구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15일 공정위와 함께 CJ제일제당과 농심, 오뚜기, SPC 등 대형 식품업체 9곳의 관계자들을 만난 바 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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