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함으로써 국제정세에 불안한 기류가 조성됐다. 이로 인해 세계경제에도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거대한 먹구름이 드리워지게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 새벽 6시(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지역 내에서 러시아군 특수 군사작전을 수행한다고 선언했다. 이와 동시에 폴란드와 경계를 맞댄 우크라이나 서쪽을 제외한 동, 남, 북 3방향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군사기지와 방공망 등을 선제적으로 무력화시키려는 게 목적이었다.

이번 사태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정황상으론 전장이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넓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것을 사태 해결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번 사태는 기약 없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의 의도를 두고는 각종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침공 목적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지금으로서는 러시아의 최종 침략 범위가 친 러시아 반군의 활동 무대였던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국한될지, 아니면 그 이상일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병합을 노리고 있는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저지가 목적인지도 불분명하다.

우크라이나 남쪽 크림반도에서 이동중인 러시아군 장갑차.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남쪽 크림반도에서 이동중인 러시아군 장갑차.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속내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언제 해결될지를 결정해줄 중요한 변수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 속내가 무엇이냐에 따라 해결 방법과 난도가 달라질 수 있다.

분명한 점 한 가지는 러시아의 침략 야욕이 거둬지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 사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현실이 주는 분명한 메시지는 국제사회가 러시아의 침략 야욕을 저지할 직접적 수단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미국이 사태 전개 과정에서 보여준 행동을 통해 일찍이 확인됐다. 미국은 진작부터 러시아의 침공을 예견한다고 밝히면서도 군사적 대응 카드를 접어두었다. ‘군사적 옵션도 테이블 위에 있다’는 정도의 외교적 수사조차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옵션이 ‘테이블에 없다’고 확인해줌으로써 러시아의 침공을 방치하려는 듯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이런 메시지를 앞장서서 발신한 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애초부터 ‘세계대전’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를 토대로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의 제재 카드가 경제 분야에 국한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돼왔다.

하지만 특정국에 대한 경제제재는 그 여파가 다른 나라들에게도 광범위하게 미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세계가 네트워크화되면서 그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물론 제재로 인해 러시아가 느낄 고통이 가장 크겠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얻을 반대급부가 크다는 생각을 접지 않는 한 끝까지 버틸 가능성이 크다. 그러는 사이 세계경제는 다시 한 번 암울한 먹구름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우리로서도 세계경제의 침체를 논하기 이전에 당장 닥칠 악영향부터 고민해야 할 판이다. 미 상무부가 24일 발표한 추가적인 경제제재 조치가 발등의 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상무부는 국방과 항공우주, 해양 분야를 주로 겨냥한 대(對) 러시아 경제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반도체와 컴퓨터, 통신, 정보보안, 레이저, 센서 등을 수출 규제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것이었다.

제재의 근거 규정은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이다. FDPR은 미국 바깥에 있는 외국 기업이 생산한 제품일지라도 미국의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것이면 특정국에 대해 수출을 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피해 해당 품목을 러시아에 수출하려면 미 당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이 발표로 인해 한국산 자동차와 반도체, 전자제품 등의 대 러시아 수출에 지장이 초래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또 러시아 기관 49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며 미국 기업들로 하여금 이들 기관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이 조치에는 유럽연합(EU)과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일본 등이 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EU와 캐나다 등은 같은 날 곧바로 러시아에 대한 수출통제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국제유가와 원자재 및 곡물 가격 인상을 초래함으로써 코로나19 팬데믹을 털어내고 막 기지개를 켜려는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는 우리나라의 수출길이 보다 험난해질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수입물가가 상승함에 따라 소비자물가가 크게 오르고, 수출 부진 등으로 경기는 침체되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일명 스태그플레이션이란 달갑지 않은 현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 수 있다는 뜻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 EPA/연합뉴스]

러시아 침공 당일 통화정책 회의를 연 한국은행의 이주열 총재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특히 국내 물가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이날 한은이 올해 국내물가 상승률을 3.1%로 수정 제시한 데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란 전제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사태가 전면전으로 치닫는 최악의 상황은 상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심화 또는 장기화될 경우 물가 상황이 전망치보다 더 악화될 수 있음을 예고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총재는 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원자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상기시킨 뒤 “(원자재 수급불균형이 나타나면)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서방 국가들이 제재 강도를 높이면 세계경제가 위축되면서 국내 수출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 총재의 발언이 암시하듯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우리 경제가 받을 타격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커질 수 있다. 그러니 정부는 사태를 예의 주시하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입지가 우크라이나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점을 고려해 보다 적극적으로 외교적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도 필요해 보인다. 이번 사태는 양대 진영의 경계에 위치해 국제정치적 입지가 불안한 우크라이나가 서방국들과 확실한 군사동맹을 맺으려 시도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다. 결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군사동맹 없는 고립이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지를 웅변으로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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