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정부가 발표한 올해 경제전망에 대한 대대적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물가·산업 전반에 미칠 파장이 작지 않은 데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커진 까닭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4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3%, 소비자물가 상승률 3.1%, 경상수지 흑자 700억 달러를 제시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말 올해 성장률 3.1%, 소비자물가 상승률 2.2%, 경상수지 흑자 800억 달러를 전망치로 내놓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정부가 내놓은 이 같은 경제전망을 대폭 수정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올해 경제전망치는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내놔야 할 만큼 변화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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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의 거시경제 변수에 미치는 영향 중 가장 큰 부문은 물가다. 국제유가 등 에너지가격이 오르면 수입물가를 끌어올릴 뿐 아니라 기름값 상승으로 서민들의 지갑 사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지난 1월 휘발유(12.8%)와 경유(16.5%), 자동차용 LPG(34.5%), 등유(25.7%) 등 석유류 가격이 16.4% 올랐다고 밝혔다. 전체 물가상승률(3.6%)에서 석유류의 기여도는 0.7%포인트를 차지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연평균 100달러에 이를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1%포인트 밀어올린다. 한은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3.1%에 1.1%포인트를 더하면 4.2%가 되는 셈이다. 연평균 120달러로 상승하면 1.4%포인트, 150달러로 치솟으면 1.8%포인트를 각각 끌어올린다. 

더군다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경제제재로 국제유가가 50%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는 전 세계 교역량의 12% 수준인 하루 500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수출하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 석유수출국기구(OPEC)플러스 등 산유국들의 원유생산 목표치 미달로 인해 수급불균형이 지속되면서 원유재고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국제유가의 추가상승에 무게가 실린다.

원유재고는 지난 1월 26억8000만 배럴로 이전 5개년 평균치보다 9% 적다. 2014년 중순 이후 최저 수준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15일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의 대(對) 유럽 석유·가스공급 차질이 일어나면 국제 에너지시장 불안, 가스대체 석유수요 증가로 국제유가가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큰 폭의 물가 상승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한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3%)에는 변화가 없었다. 탄탄한 수출 증가세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한 재정정책 효과 등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과 공급병목 등의 성장률 하향 요인을 상쇄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그렇지만 국제유가의 급등은 성장률 하락 등 한국경제에 연쇄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제품가격 상승압력이 커지고, 이에 따라 산업 경쟁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강화로 글로벌 교역 조건이 악화하면서 우리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수출이 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원화가치 및 주가하락 등 금융시장의 후폭풍도 우려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르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떨어지고 경상수지는 305억 달러 감소한다. 유가가 120달러까지 오를 경우 성장률과 경상수지는 각각 0.4%포인트, 516억 달러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유가가 100달러만 돼도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 3%보다 0.3%포인트 낮은 2.7%로 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나마 국제유가의 영향만을 고려한 수치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성장률과 경상수지 전망은 더욱 악화할 공산이 크다.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경제전망과 관련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면적인 무력충돌이나 경제제재까지는 감안하지 않았다”며 “전면적 무력충돌로 대러시아 제재가 이뤄진 만큼 물가에는 상방 요인, 성장에는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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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가 러시아에 대한 수출 제재에 나선 것은 우리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이 반도체 등 첨단기술 제품의 러시아 수출을 통제하는 포괄적인 제재방안을 발표해 우리나라 반도체·자동차 기업도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러시아에 대한 수출비중이 크지 않은 편이지만, 세계 각국이 수출 제재에 동참하면 글로벌 교역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산업별로는 당장 원재료비 부담이 커진 화학·정유·철강 등의 타격이 우려된다. 자동차 업계도 영향권에 놓였다. 한국이 지난해 러시아에 수출한 금액의 40% 정도가 완성차·자동차부품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서 연간 23만대를 생산해 인근 국가에 판매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의 핵심 재료인 네온가스와 팔라듐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것이 부담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수입한 네온 가운데 우크라이나산 23%, 러시아산은 5%였다. 러시아는 전 세계 팔라듐 수요의 40%를 담당한다.

수입물가가 크게 오르는 상황에서 수출이 둔화하면 경상수지 흑자도 크게 감소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유가가 100달러면 305억 달러, 120달러면 516억 달러, 150달러면 833억 달러가 각각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무역수지는 에너지가격 급등으로 지난해 12월 적자로 돌아선 뒤 지난달 적자 폭을 키웠다.

박정수 서강대 교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전쟁이 어디까지 확산할지, 얼마나 길어질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제재가 길어지면 그만큼 더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를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생긴다면 러시아로 물건을 파는 것이 힘들어질 뿐 아니라 글로벌 생산에서 병목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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