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지난해 6조원 가까운 사상 최대 규모의 영업손실을 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요금을 동결한 상황에서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비가 급등한 데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른 신재생에너지 투자증가 등으로 비용부담이 커진 탓이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연료비가 다시 상승하고 있는 데다 신재생에너지 확대정책도 강화되는 만큼 올해 적자규모가 2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손실이 5조8601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최근 공시했다. 2020년 영업이익(4조863억원)과 비교해 무려 9조9464억원이나 악화된 것으로 시장 전망치(영업손실 5조1006억원)를 14.8% 웃돌았다. 역대 최대 적자를 낸 2008년(영업손실 2조7981억원)보다 배 이상 많다. 지난해 매출은 전력 판매량 증가 등으로 전년(58조5693억원)보다 3.4% 늘어난 60조5748억원을 기록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낸 이유는 전기요금이 동결된 데다 원가에 해당하는 연료비와 전력구입비가 증가한 것이었다. 코로나19 사태 확산 직후인 2020년 하반기부터 연료비가 본격적으로 상승했다. 지난해 초 배럴당 47.6달러대였던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해 말 75.2달러대까지 급등했다. LNG 현물가격도 지난해 1월 t당 413.7달러에서 12월에는 892.6달러로 100% 이상 치솟았다. 정부는 당초 발전연료비 증가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연동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확산에 따른 물가상승 억제 차원에서 지난해 2분기와 3분기에 전기료를 묶었다.

정부가 탈원전 기조 아래 신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비율을 상향한 것도 한몫했다.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RPS) 비율이 7%에서 9%로 증가해 정책비용이 늘어난 데다 단가가 비싼 LNG 발전비중이 확대됐다. 발전단가가 비싼 태양광·풍력생산 전력을 한전이 사줘야 하는 RPS 비율이 2%포인트 늘어나고 줄어든 원전이용률을 메우기 위해 LNG 비중을 늘린 것이 적자 요인이 됐다는 얘기다. 한전은 “자회사 연료비는 4조6136억원, 민간발전사 전력구입비는 5조9069억원 증가했다”며 “이는 석탄·LNG 등 연료비 상승뿐 아니라 RPS 비율이 상향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수급불안정이 장기화하면 올해 한전의 적자는 지난해보다 크게 불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현 정부 들어 펼친 에너지정책 난맥도 적자 확대에 일조했다. 지난해 국제유가와 LNG, 석탄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도 전기요금을 동결하면서 적자 폭증을 방치했고, 탈원전 정책에 따른 월성1호기 조기 폐쇄로 전력생산 비용이 증가한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부담도 고스란히 한전의 몫이었다.

한전은 전기차 확대 등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로 지난해 매출은 2조원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전년보다 한전 자회사의 연료비 4조6136억원, 민간발전사 전력구입비 5조9069억원 각각 증가했지만 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해 전기를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 됐다. 한전은 발전사들이 한전에 판매하는 전력도매가격(SMP)이 오르면 비용부담이 증가하는 구조다. 지난달 SMP는 ㎾h당 154.42원이다. 1년 전인 지난해 1월(70.65원)보다 118.6% 올랐다.

한전은 SMP 상승 등에 따른 비용부담으로 부채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 한전은 1월 2조3600억원, 지난달에 1조8800억원어치(24일 기준)의 공사채를 발행했다. 부채증가에 따른 이자비용 증가까지 물어야 할 판이다. 정부정책에 따라 재생에너지 관련 투자확대도 경영상 부담이다. 한전의 지난해 재생에너지 관련 투자액은 5700억원이었고 올해 9700억원, 내년에는 9900억원의 추가 투자가 예정돼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런 판국인 데도 정부는 2020년 말 연료비를 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도 시행을 주저했다. 물가상승이 우려된다며 지난해 2분기와 3분기 잇따라 전기료를 동결한 것이다. 지난해 말 국제 에너지가격 급등에도 올해 1분기 전기요금 역시 동결한 상태다. 한전 실적은 통상적으로 국제유가 변동과 전기요금 인상 여부에 따라 좌우돼 왔다. 2016년에는 저유가 호황 덕에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인 12조원을 기록했다. 이후 국제유가 상승과 탈원전 정책비용 등으로 2018년 2080억원, 2019년 1조276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저유가 효과에 4조863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했다가 지난해 다시 적자수렁에 빠진 것이다.

문제는 한전의 올해 전망이 매우 어둡다는데 있다. 한전은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연료비를 ㎾h당 4.9원 인상하기로 했다. 기후환경요금도 4월부터 ㎾h당 2원 오른다. 요금인상이 시작되는 2분기 전까지는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이미 100달러 돌파했다. LNG 현물가격도 t당 1100달러대로 급등했다. 1~2월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SMP 상승세도 올 하반기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SMP는 통상 유가에 6개월 정도 뒤에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

RPS 비율은 올해 12.5%로 상향됐다. 지난해와 올해 3.5%포인트 높아진 만큼 한전이 떠안는 RPS 비용도 그만큼 더 증가한다. 한전의 경영부담이 갈수록 가중되자 증권업계에서는 한전의 올해 적자 규모를 대폭 늘려 잡았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에너지가격의 추가상승을 배제할 수 없다”며 “올해 연료비 kWh당 9.8원, 기후환경요금 2.0원 및 연료비 조정단가 최대 5원을 감안해도 비용부담으로 인해 영업적자가 20조원에 이를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연료가격의 추가상승으로 재무 리스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재무위기 대응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해 전력공급비용 절감, 설비효율 개선, 비핵심 자산 매각 등을 추진하고 연료비를 절감하는 등 고강도 자구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