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5.5% 안팎’으로 제시했다. ‘6% 이상’을 제시한 지난해보다 낮을 뿐 아니라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시위 유혈진압 사태로 불확실성이 컸던 1991년(4.5%) 이후 31년 만에 최저치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지난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정부업무보고를 통해 “올해 주요 경제발전 목표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5.5% 안팎, 도시실업률 5.5% 이내, 소비자물가 상승률 3% 안팎”이라고 밝혔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전인대가 예년보다 두 달 이상 미뤄져 5월에 열렸고, 이례적으로 성장률 목표치도 내놓지 못했다. 리 총리는 당시 “세계 코로나19 대유행과 경제·무역 불확실성으로 경제성장 예측이 어렵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중국은 그해 성장률 2.3%를 기록하며 주요국 중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빠른 경기회복세에 힘입어 8.1% 성장으로 목표(6% 이상)를 초과 달성했다.

지난 5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 [사진 = 연합뉴스]
지난 5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 [사진 = 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올해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다소 낮게 잡은 것은 경기둔화세가 뚜렷한 데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대외리스크 등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기저효과로 지난해 1분기 18.3%까지 치솟았던 성장률은 부동산업체 헝다(恒大)그룹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로 촉발된 부동산산업의 위축, 전력대란, 코로나 재확산에 따른 봉쇄조치 등 악재가 겹쳐 2∼4분기는 7.9%, 4.9%, 4.0%로 하향세가 뚜렷했다. 올 상반기까지 급격한 경기둔화 흐름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5.5% 성장도 녹록지 않다. 리 총리는 “중국은 현재 수요축소와 공급충격, 성장전망 약화라는 ‘3중 압력’에 직면해 있다”며 “올해는 경제하방 압력 등 사회경제 발전에 도전이 많아 안정적 성장을 중심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올가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3연임을 결정을 앞둔 중국으로서는 성장률 목표가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도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과제다.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한 다양한 조치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전례 없는 3연임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 주석과 공산당에는 경제성장이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며 “공격적인 경제성장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더 많은 경기부양책이 나올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가 재정지출 규모를 확대하는 동시에 기업들의 세금 환급을 늘리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리 총리는 “중앙정부의 지출을 3.8% 확대하겠다”며 “중앙정부가 지방에 이전하는 지출규모를 1조5000억 위안 더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방정부에 전달하는 지출 규모가 전년보다 17.5% 증가한 9조7975억 위안”이라며 “지난 수년 간 최대 증가폭”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정부의 부채규모를 확대하지 않는 대신 중앙정부의 예산을 전달하는 형식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는 올해 이뤄질 세금 환급·인하 규모가 2조5000억 위안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1조1000억 위안 규모의 세금·수수료 감면 조치를 시행한 데 이어 내수 진작을 위해 정부지출 규모를 더 늘리기로 한 셈이다. 더욱이 지난해 하반기 초과 세수가 발생했음에도 집행을 늦춰 올해 활용할 수 있는 실탄도 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클린 롱 BNP파리바 중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3조~4조 위안의 재정자금이 지난해에서 올해로 이전됐다”며 “재정적자를 확대하지 않더라도 재정부양책은 충분히 강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 총리는 정부업무보고에서 올해 1100만개 이상의 도시 일자리를 창출하고 도시실업률을 5.5% 이하로 억제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올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목표치는 3%로 제시했다. 지난해와 대체로 비슷한 목표다. 주민소득 증대와 수출입 안정, 국제수지의 기본적 균형 달성, 6억5000만t 이상의 곡물 생산, 생태환경 개선과 오염물질 배출량 감소 등 주요 사회·경제적 목표도 함께 내놨다.

리커창 중국 총리. [사진 = 연합뉴스]
리커창 중국 총리. [사진 = 연합뉴스]

올해 성장률을 낮췄지만 국방예산은 확대하기로 했다. 재정부가 전인대에 보고한 올해 국방예산은 지난해보다 7.1% 늘어난 1조4504억5000만 위안(약 281조원)에 이른다. 2020년(6.6%), 지난해(6.8%)보다 증가폭이 늘었다. 중국은 올해 재정적자 목표(2.8%)를 지난해(3.2%)보다 낮췄지만 국방예산은 오히려 늘린 것이다. 중국이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경제충격 속에서도 국방예산을 계속 증액하는 이유는 미국 등 서방국의 견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세계 2위 국방비 지출국이지만, 절대치로는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은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등 4개국 협의체)와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로 동맹국을 규합하고,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과 대만해협 군함 통과로 중국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올해 성장률 목표치는 다소 낙관적이라는 전문가의 시각이 우세하다. 국제경제기구·투자은행에선 올해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낮게는 4%대, 높게는 5%대 중반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월 올해 중국 성장률 예상치를 5.6%에서 4.8%로 0.8%포인트 낮췄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이유로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4.3%로 내렸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올해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5.5%로 제시했다. 블룸버그는 “중국 성장률 목표치는 전문가들의 예상치 5.1%보다 높다”며 중국 정부가 인프라(사회기반시설) 투자 확대, 금융정책 완화 등의 부양책을 밀어붙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전했다.

브루스 팡 중국 르네상스증권 거시·전략연구책임자는 “중국이 설정한 5.5% 목표치는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인프라 투자는 중국의 올해 성장을 안정화하는 가장 중요한 동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취훙빈 HSBC차이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경제가 직면한 둔화 압력을 고려할 때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 목표치 5.5%는 더 많은 정책 지원이 필요함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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