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우크라이나 침공의 책임을 물어 서방이 러시아에 가하는 제재의 강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의 반발도 덩달아 강해지면서 충돌 과정에서 생기는 불똥이 세계전역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미국 등 서방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한국도 불똥 피해의 예외지역이 아니다.

양측의 충돌로 발생한 불똥 중 대표적인 것이 국제유가의 급격한 상승이다. 전세계 공급망 차질로 그러지 않아도 일찍이 고공행진을 시작한 국제유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한 단계 더 상승하는 흐름을 보였다. 에너지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가 그 원인이었다.

우려는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유럽을 방문 중이던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CNN에 출연해 “유럽국들과 러시아산 원유수입 금지조치를 논의 중”이라고 밝히면서 한 번 더 증폭됐다. 그 여파로 지난 7일 국제유가는 배럴당 140달러선 턱밑까지 올라갔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한때 전 거래일 대비 18% 상승한 139.13달러까지, 미국 서부텍사스산(WTI) 원유도 배럴당 130 달러대에 진입했다. 두 유종 모두 13년 만에 최고가를 경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7일 미국의 대(對)러 에너지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국제유가는 다소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숄츠 총리는 성명을 통해 ▲유럽국들은 그간 러시아산 에너지를 일부러 제재 대상에서 제외해왔으며 ▲현재로서는 에너지 제재의 부작용을 해결할 대안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국제유가는 다소 하락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날 브렌트유와 WTI의 배럴당 가격은 120달러대로 내려갔다.

하지만 미국은 독일 등의 불참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자적으로라도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금지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급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베네수엘라와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를 고려중이다.

미국은 특히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에 대해 취해온 제재를 완화함으로써 러시아산 석유 수입의 공백을 메우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19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부정선거 당선을 이유로 외교 관계를 단절한 이래 처음으로 베네수엘라와 정부 간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지는 미지수다. 베네수엘라는 그간 친러시아 및 친중국 행보를 보여왔고,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에도 러시아를 지지하는 한편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는 베네수엘라가 러시아와 중국 등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의 수입을 금지하면 국제유가는 다시 한 번 널뛰기를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는 현재 세계 원유 생산량의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원유 수입분에서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3%다. 여기에 휘발유 등 석유제품을 포함하면 그 비중은 8%로 늘어난다. 총량으로 치면 그 규모는 월 2040만 배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러시아산이 세계 원유 공급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미국의 대러 에너지 제재가 실행되면 하루 500만 배럴 이상의 공급 감소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했다. 그 결과 국제유가는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제조업 강자로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으로서는 그 같은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유가 상승은 공장 가동 과정에서의 비용은 물론 물류비를 대거 끌어올려 생산원가를 높이면서 국내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타격이 심하게 미칠 분야로는 항공 및 해운업, 석유화학 업종 등이 거론된다.

러시아가 한국을 미국·유럽국가(EU) 등과 함께 비우호국 명단에 올린 것도 우리 경제엔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가 확정한 비우호국은 한·미·EU 외에 영국·노르웨이·호주·뉴질랜드·캐나다·대만·싱가포르·우크라이나 등이다.

러시아는 한국이 미국 등 서방과 보조를 맞추자 즉각 비우호국 명단에 추가했다. 한국이 한 발 늦게나마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서방과 행동을 같이하기로 하자 미국은 최근 우리에 대해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면제를 확정했다. FDPR은 미국 바깥에 있는 해외기업이 만든 제품일지라도 미국의 기술과 소프트웨어가 적용된 생산품에 대해 특정국에 수출할 수 없도록 규정한 제재조항이다. 이 조항의 제재를 피하려면 해당 기업은 미 당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 제재조항으로 인해 한국의 관련 기업들은 러시아로 물건을 수출하려면 일일이 미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미국의 면제 조치로 그런 절차 없이 자체적으로 수출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

그 대가가 이번에 러시아가 한국에 대해 취한 비우호국 분류였다. 당장 우려되는 것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차질이다. 하지만 정부는 에너지 수입은 보통 장기계약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당장 큰 피해는 없을 것이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러시아의 이번 조치와 관련, “업종별 영향을 파악 중”이라며 “결과에 따라 대응조치를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석유공사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규모는 5374만8000배럴이었다. 전체 원유수입 물량(9억6014만7000배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6%였다. 한국이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2억8177만4000배럴)였고 그 다음은 미국(1억1866만8000배럴), 쿠웨이트(1억172만1000배럴), 이라크(5999만3000배럴), 아랍에미리트연합(5680만9000배럴), 멕시코(5440만 배럴) 순이었다.

러시아의 움직임에 대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와 한국무역협회 등도 향후 닥칠 영향을 면밀히 살펴보며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기로 했다. 무역협회는 러시아 수출입 기업을 대상으로 애로사항을 접수하기로 했다. 코트라 역시 현지 무역관 등을 통해 정보수집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공급망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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