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식량가격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와중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터져 글로벌 식량위기가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주요 농산물에 대해 수출허가제를 도입함에 따라 국제 곡물가격은 더욱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2월 세계식량가격지수(FFPI)는 140.7로 집계됐다. 전달(135.4)보다 3.9%, 전년 같은 기간보다는 24.1% 각각 상승했다. 1996년 통계작성을 시작한 이후 26년 만에 가장 높다. ‘아랍의 봄’ 사태로 국제 식량가격이 급등했던 2011년 2월 지수보다도 3.1포인트 높다. FAO는 매달 24개 품목에 대한 국제가격동향(95개)을 조사해 5개 품목군(곡물, 유지류, 육류, 유제품, 설탕)별 식량가격지수를 작성해 발표한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2002∼2004년 식량가격의 평균치를 기준(100)으로 현재의 가격수준을 지수로 표현한 값이다.

러시아의 밀농장,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밀농장,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5개 품목군 가운데 설탕을 제외한 4개 품목군의 가격지수가 상승했고, 유지류와 유제품 지수의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구체적으로 지난달 곡물 가격지수는 1월 140.6포인트보다 3.0% 상승한 144.8포인트를 기록했다. 흑해지역의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수출에 어려움이 예상된 밀도 가격이 상승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수출량의 29%를 차지해 ‘유럽지역의 빵공장’으로 불린다. 옥수수는 아르헨티나·브라질 작황 감소 우려와 우크라이나산 수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가격이 올랐다. 쌀도 일부 수출국 통화가치의 상승과 동아시아국가의 수요증가로 오름세를 보였다.

지난달 유지류는 전달보다 8.5% 상승한 201.7포인트를 기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해바라기유 수출의 80%를 담당한다.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인 인도네시아의 수출량 감소 전망으로 팜유의 가격이 상승했고 대두유는 남미지역 생산저조 전망으로 가격이 뛰었다. 지난달 유제품도 1월 132.6포인트에서 6.4% 상승한 141.1포인트로 급등했다. 서유럽과 오세아니아의 공급량이 예상보다 저조하고 북아시아·중동의 수입 수요가 높은 점이 가격상승을 촉진했다.

육류는 1월 111.5포인트보다 1.1% 상승한 112.8포인트를 기록했다. 쇠고기는 브라질의 도축량 부족과 세계 수입수요 강세에 따라 가격이 올랐다. 돼지고기는 미국·유럽지역 내에서 공급이 둔화되고 수요가 증가한 점이 반영돼 가격이 상승했다. 이에 비해 양고기는 오세아니아 지역의 수출량 증가로, 가금육은 중국의 수입량 및 브라질의 국내 수요 감소로 각각 가격이 떨어졌다.

설탕은 지난달 유일하게 가격지수가 하락한 품목이다. 설탕은 전달(112.7포인트)보다 1.9% 하락한 110.6포인트를 기록했다. 설탕 주요 수출국인 인도·태국의 낙관적인 생산전망과 브라질의 재배여건 개선, 에탄올 가격 하락 등이 가격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2월 지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상황을 주로 반영한 것인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세계식량가격지수가 더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FAO는 “식량가격 상승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 회복중인 세계경제에 인플레이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며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의 빈곤층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FAO는 2021~2022년도 곡물 생산량이 27억9560만t으로 1년 전보다 0.7%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기간 세계 곡물소비량은 28억160만t으로 전년보다 1.5%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2021~2022년도 세계 곡물 기말 재고량은 8억3580만t으로 전년보다 0.5%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정부는 6일(현지시간) 밀과 옥수수, 해바라기씨유, 달걀 등 주요 농산물을 수출하는 무역업자는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앞서 호밀과 귀리, 기장, 메밀, 소금, 설탕, 육류, 가축의 수출도 중단한 바 있다. 흑해 항구들이 사실상 가동을 중단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정부의 추가 조치는 전 세계 식량공급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전쟁으로 우크라이나는 밀 파종에도 차질을 빚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우크라이나 농부들이 곧 파종을 시작하지 않으면 세계 식량 안보에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며 “수확 시기에 우크라이나 밀 생산량이 떨어질 경우 밀 가격은 2∼3배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식량안보를 강화하려는 세계 각국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헝가리 농무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식량 가격 상승을 이유로 모든 곡물수출을 즉각 중단한다고 지난 4일 발표했다. 주요곡물 수출국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는 밀의 자국 내 공급 보장과 파스타 가격안정을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섰으며, 최대 밀가루 수출국 중 하나인 터키도 곡물수출에 대한 정부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몰도바는 이달부터 밀과 옥수수, 설탕 수출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우리 정부도 국제곡물 가격동향을 예의주시하고 대응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우선 사료 및 식품 원료구매자금(사료 647억원, 식품 1280억원) 금리를 2.5~3.0%에서 2.0~2.5%로 0.5%포인트 인하했다. 사료곡물을 대체할 수 있는 원료에 대해 무관세가 적용되는 할당물량도 증량(겉보리 4만t→10만t 소맥피 3만t→6만t)하기로 했다.

농식품부는 이와 함께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곡물 가격 등의 변동성이 커짐에 따라 업계 재고, 계약 등 원료 수급상황을 매일 점검하고 ‘식품수출기업 상담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권재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우크라이나 사태 등 국제 곡물시장 불안으로 인한 국내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업계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시장 상황을 각별히 점검하고, 추가적으로 필요한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업계 차원에서도 주요 곡물의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고, 안정적인 원산지로 물량 계약, 필요할 경우 업체 간 원활한 소비대차 등 수급 안정 조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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