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15일로 발효 10주년을 맞았다. 한·미 FTA가 지난 10년 동안 폐지 위협까지 받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됐다는 게 통상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FTA를 통해 관세절감 효과와 제품 다양화를 통한 두 나라 경제의 효율성·생산성 제고에 이바지함으로써 한·미 경제관계가 업그레이드됐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FTA가 활성화하면서 글로벌 무역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지던 2003년 8월 정부는 “우리 경제가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대시장이자 세계 최고 기술·자본·경영·노하우를 가진 미국과 승부를 벌여야 한다”며 한·미 FTA 체결을 강력히 추진했다. 하지만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면 우리 제조업이 버틸 수 없고 농업은 피폐화될 것이다” “스크린쿼터 축소로 우리 문화가 죽고 국내 제약산업은 몰락하며 의료비는 폭등할 것”이라는 등 반대 목소리도 많았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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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차례의 협상 끝에 2007년 FTA 협상이 타결됐지만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거세져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어렵사리 소고기 수입협상을 타결하고 추가협상을 벌인 끝에 2012년 FTA가 공식 발효됐다. 2018년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대미흑자를 문제 삼으며 ‘한미 FTA 폐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개정협상을 벌여 그해 9월 양국은 FTA 개정안에 서명했다.

한·미FTA는 과거 10년 동안 두 나라 무역·투자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14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한·미 FTA 발효 10년차 무역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양국 간 무역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8.5% 증가한 1691억 달러(약 210조원)로 집계됐다. FTA 체결 시점인 2012년(1018억 달러)보다 66.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세계 전체 무역규모가 1조675억 달러에서 1조2595억 달러로 17.9% 증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FTA를 계기로 두 나라의 교역이 가파르게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대미수출액은 2012년 585억 달러에서 2021년 959억 달러로 61.1% 늘어났다. 대미수입액 역시 같은 기간 433억 달러에서 732억 달러로 69.0% 증가했다. 대미 무역수지는 해마다 흑자를 유지하며 2012년 152억 달러에서 지난해 227억 달러로 불어났다. 상위 10대 수출품목 중 무선통신기기를 제외한 전 품목의 수출이 10년새 증가한 가운데 반도체(246.6%), 컴퓨터(259%), 냉장고(130.9%), 합성수지(244.9%), 건전지 및 축전지(634.6%) 등은 증가율이 세 자릿수를 기록했다.

한·미 FTA 체결 추진 당시 가장 큰 저항감을 보였던 농축수산업도 우려와 달리 미국산 농축수산물의 수입보다 우리 농수축산물의 수출이 더 많이 늘었다. 양국 FTA 발효 후 농축산물 수출액(2012~2021년 평균)은 FTA 발효 전(2007~2011년 평균)보다 95.2% 증가했고, 수산물 수출액도 FTA 발효 전보다 평균 99.4% 늘어났다. 미국산 농축산물과 수산물 수입액은 각각 34.1%, 73.9% 증가했다.

대미수입 품목 중에는 에너지원의 수입 증가세가 눈에 띈다. 2012~2013년 전무(0달러)했던 원유수입액은 지난해 84억 달러로 급증했다. 천연가스(LNG)는 5000만 달러에서 48억 달러로, 액화천연가스(LPG)는 1억 달러에서 48억 달러로 각각 폭증했다. 반도체 제조용 장비 수입액도 27억 달러에서 69억 달러로, 자동차도 7억 달러에서 37억 달러로 각각 증가했다.

두 나라 간 투자도 크게 활성화됐다. 상대국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돼 미국은 우리나라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 1위 국가이자 우리나라 기업의 최대 해외투자처가 된 것이다. FTA 발효 후 미국의 대한투자액은 모두 482억 달러로 발효 전(2002~2011년 누적)보다 98%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대미투자 누적액(지난해 3분기까지)도 1130억 달러로 FTA 발효 전보다 282% 늘었다. 대미투자는 배터리·반도체·전기차를 중심으로 큰 폭으로 늘며 미국 내 생산기반 확충과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한 대신 우리 기업들엔 시장 확대 기회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양국의 무역·투자가 고부가가치 분야로 발전하면서 한·미 경제의 효율성과 생산성 제고에 이바지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발간한 ‘한·미 FTA 발효 10년 성과와 시사점’에 따르면 FTA 발효 10년(2011~2020년)간 한·미는 각각 2.4%와 1.7%의 연평균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기록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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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는 두 나라 공급망 협력 강화에도 일조했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안정적인 투자기반 위에 미국이 설계·디자인을, 한국은 제조분야의 강점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공급망 구축을 담당했다. 배터리산업도 우리나라 배터리 생산기업과 미국 완성차 기업들의 합작투자로 우리 기업은 고객사를 선점함으로써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미국 완성차 업체는 안정적으로 배터리를 공급받는 협력관계를 만들어냈다.

이유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한·미 FTA 체결로 경제협력 관계가 더욱 긴밀해져 한국이 미국의 주요 공급망 파트너로 성장했다”며 “미·중 갈등과 코로나19로 촉발된 공급망 위기를 겪으며 신뢰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양국 간 협력이 강화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위기, 양자에서 다자로의 국제통상질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각종 조치 등은 도전 과제로 꼽힌다. 디지털 무역과 기후변화 등 신통상 의제도 향후 FTA 개정에 반영해야 할 숙제다. 미국이 산업보호 등을 이유로 수입 규제조치를 취하는 점도 걸림돌이다. 미국이 유럽연합(EU)과 일본에 대해선 고율 철강관세 철폐에 합의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해선 물량제한 합의안을 유지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김태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경제통상협력본부장은 “한·미 FTA 10년 동안 양국의 교역·투자·소비자 선택이 확대되는 호혜적 성과를 확인했다”며 “공급망 구축 등 양국 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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