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기업 등 민간부채가 처음으로 4500조원을 돌파하며 우리나라 경제규모를 2.2배나 웃도는 수준으로 불어났다. 특히 금리인상이 본격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물가급등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다중채무자(3개 이상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 차주(돈을 빌린 사람)들이 ‘부실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취약 차주란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 차주를 말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24일 내놓은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말 가계(가계 및 비영리단체) 및 기업(비금융법인) 부문 부채를 더한 민간부채는 4540조원으로 추산됐다. 1년 전보다 10% 증가해 관련통계가 작성된 1975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증가율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6월 말(11%) 이후 11년 반 만에 가장 높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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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목 국내총생산(GDP) 민간부채 비율은 220.8%로 전년 말보다 7.1%포인트 상승했다. 민간부채가 국내 전체 경제규모의 2.2배를 웃돈다는 뜻이다. 2020년 말에 비해 상승폭(7.1%포인트)도 역대 가장 컸다. GDP 대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비율은 각각 106.1%, 114.7%로 전년 말보다 2.7%포인트, 4.4%포인트 높아졌다. 민간부채와 가계부채, 기업부채 비율 모두 관련통계를 작성한 2000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부문별로는 가계부채(2180조원)와 기업부채(2360조원)는 1년 전보다 각각 9.2%, 10.7% 늘었다. 가계부채가 불어난 것은 치솟는 집값 마련과 공모주 청약 등을 위해 가계가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에 나선 까닭이다. 그동안 10% 안팎이던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난해 대출규제 강화와 대출금리 상승 여파로 다소 둔화된 게 위안거리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사태로 현금창출력이 약해진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차입금을 늘리면서 기업부채도 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경기부진이 계속된 데다 이자부담이 늘어나면서 가계부채 상환부담은 더 심해졌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173.4%로 1년 전보다 4.3%포인트 뛰었다. 빚 상환부담이 커졌다는 의미다. 치솟는 가계부채는 소비와 투자를 억누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계부채 비율(106.1%)은 국제결제은행(BIS)의 가계부채비율 임계치(80%)를 훌쩍 넘어섰다. 가계부채가 임계치를 웃돌면 이자·원리금 상환부담이 커져 가계가 씀씀이를 줄인다는 것이다.

취약 차주는 전체 대출자의 6.0%, 대출잔액의 5.0%를 각각 차지했다. 더욱이 20~30대 청년층 취약 차주의 신용리스크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커지는 모습을 보였다. 청년층 취약 차주는 지난해 말 6.6%로 다른 연령층 평균(5.8%)보다 훨씬 높다. 청년층 취약 차주의 연체율 역시 다른 연령층과 달리 지난해 1분기 5.0%에서 4분기 5.8%로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금융지원에 의존하는 자영업자들의 대출부실 위험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빚을 가진 자영업 가구 가운데 ‘적자가구’는 78만 가구로 추산됐다. 전체의 16.7%다. 적자가구는 소득에서 필수 지출과 대출원리금 상환액을 뺀 금액이 마이너스인 가구를 뜻한다. 이들이 보유한 금융부채는 177조1000억원으로 전체의 36.2%를 차지했다.

자영업 적자가구 중 27만 가구는 유동성자산으로 적자를 1년도 감당할 수 없는 ‘유동성 위험가구’다. 이들의 금융부채는 72조원으로 코로나19가 본격화한 2020년 3월보다 12조8000억원이나 늘었다. 정부가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금융지원을 중단할 경우 자영업 적자가구와 유동성 위험가구의 금융부채는 각각 58조원, 41조원 급증할 것으로 분석됐다. 임광규 한은 금융안정국 안정총괄팀장은 “코로나19 금융 지원책이 자영업자 유동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업권별 업황과 유동성 상황을 고려해 단계적인 출구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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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금융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실물·금융 지표들을 바탕으로 산출하는 ‘금융불안지수’(FSI)도 지난 2월 기준 7.4로 주의단계(8~21)에 근접했다. 2020년 4월(24.4) 위험단계를 넘어섰던 FSI는 지난해 6월 0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다시 오르는 추세다. 한은은 “FSI는 지난해 하반기 상승반전 후 올 2월 우크라이나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등으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올 들어 강화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대해 가계부채 증가세 완화효과가 있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대출수요가 큰 취약계층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DSR은 소득 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비율이다. 정부는 올 1월부터 총대출액이 2억원 이상일 경우(2단계), 오는 7월부터는 1억원 이상일 경우(3단계) 금융소비자 단위 DSR 비율을 40%까지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섣부른 DSR 완화조치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DSR을 완화해 주면 당장 숨통을 틔울 수는 있어도 결국 부채를 더 늘리게 된다”며 “지금 자영업자, 소상공인에게는 부채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게 아니라 부채 자체를 줄여서 악순환에서 빠져나가게 해주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은은 가계부채 등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으로 금리인상을 제시했다. 한은은 “금리상승에 따른 가계대출 둔화효과는 금리수준이 높아질수록 크고 코로나19 이후 금리상승에 따른 효과가 더 뚜렷해진다”고 분석했다. 한은에 따르면 2012년 1분기~2021년 3분기 대출금리가 평균 연 3%일 경우 1분기 동안 가계대출 증가규모는 금융소비자당 평균 294만원이다. 하지만 금리가 연 3.5%, 연 4%로 상승하면 그 규모는 각각 227만원, 138만원으로 줄어든다. 이를 전체 가계대출로 환산하면 1분기 동안 가계대출 증가 규모는 34조1000억원(연 3%)에서 26조3000억원(연 3.5%), 16조원(연 4%)으로 각각 줄어든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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