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재임 시절 관광차 모스크바 크렘린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소련(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연방이 새롭게 출범한 지 2년 남짓한 때의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철의 장막’이니 ‘죽(竹)의 장막’이니 하는 유행어로 상징됐던 공산권 국가들의 폐쇄성이 강하게 남아 있던 시기였다. 더구나 ‘크렘린’이란 말은 일반명사화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또는 장소’를 비유하는 단어로 쓰이곤 했다. ‘크렘린 같은’이란 말은 극단적 폐쇄성을 강조하는 대표적 수사였다.

그런 시절이었던 만큼 ‘붉은 광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크렘린궁에 대한 선입견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크렘린 안으로 들어간 순간부터 그 선입견은 금세 사라졌다. 예상 외로 자유롭게 내부를 관광할 수 있었고, 외부 관람에 그치긴 했지만 대통령 집무실 건물까지 그 대상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특히 노란색의 대통령 집무실 건물이 외관상 결코 권위적이지 않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음산하다 생각했던 공산독재 종주국의 대통령궁이 우리의 청와대보다 오히려 화사하고 접근성과 개방성까지 높다는 점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윤석열 당선인. [사진 = 연합뉴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윤석열 당선인. [사진 = 연합뉴스]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청와대는 내가 보았던 1990대 초반의 크렘린궁보다도 훨씬 더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청와대 앞길은 일반인 통행이 불가능했고, 심지어 경복궁 서문을 지나 청와대 분수대 광장 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때엔 반드시 검문을 받아야 했다. 지금은 경복궁 서문 앞 바리케이드가 사라지고 청와대 앞길도 개방됐지만 여전히 청와대의 접근성은 소련 붕괴 직후의 크렘린궁보다 나쁘다.

물론 우리 국민들도 청와대 내부 관람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일반인이 누구나 시간적 구애 없이 자유롭게 청와대 일부 구역이나마 관광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여전히 청와대 전역은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성역으로 남아 있다.

기자들에게도 청와대가 성역이기는 마찬가지다. 신원 확인을 거쳐 청와대 출입 등록을 마친 기자일지라도 청와대 경내 진입은 매우 제한적이다. 풀기자(순번대로 기자단을 대표해 취재에 나서는 기자) 자격으로 경내에 들어갈 때를 제외하곤 대체로 그렇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오직 청와대 남동부 모퉁이에 만들어진 춘추관이다.

청와대의 폐쇄성이 초래하는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과 국민들 간 소통의 단절이다. 대통령이 구중심처에 앉아 외부와 단절된 채 집무에 임하게 되면 민심과 동떨어진 결정을 기반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폐단이 나타나기 쉽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문도 잘 안 읽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심심찮게 ‘화성인’ 같은 발언을 했던 것이 청와대의 폐쇄성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해왔다.

소통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현실 여건상 기자들과의 대화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소통을 중시한다 한들 대통령이 전국민을 일일이 다 상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들이 회견장에서는 물론 이동 중 멈춰 서서, 때론 비행기 트랩 앞에서 기자들과 문답을 하고 심지어 언성 높여가며 설전을 주고받는 것도 모두 소통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불가능하다. 대통령 주변에 구조적 장벽과 인의 장막이 겹겹이 둘러쳐져 있어서이다.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춘추관을 찾지 않는 한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대통령에게 질문해볼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 청와대 출입기자 생활을 마감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처럼 임기 5년이 다 되도록 기자회견을 거의 하지 않는 경우라면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유명무실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기자들의 만남이 거의 없다는 것은 국민들이 대통령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기회가 드물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는 불통의 일상화를 의미한다.

지금의 불통을 있게 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청와대의 위치나 구조를 꼽을 수 있다. 청와대는 처음부터 왕조 시대의 궁궐 뺨칠 정도로 폐쇄성과 배타성이 강조된 시설이다. 정통성을 담보하지 못한 군사독재 정권의 수반이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지내기 딱 좋았던 건물이 청와대다.

세상이 바뀐 만큼 지금의 청와대는 마땅히 바뀌어야 한다. 바뀌어도 크게 바뀌어야 한다. 미국이나 영국 등 정부 수반의 집무실처럼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그 반대로 시민들이 대통령의 일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대통령 및 대통령실에 대한 기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그런 노력에 부합하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다. 문 대통령이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 공약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케이스를 통해 확인했듯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5년 전과 지금의 관련 논란을 통해 우리는 집무실 이전이 수반하는 문제점과 부작용을 충분히 학습했다. 집무실 이전이 종국엔 충분조건을 충족해 줄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국가 안보와 정보 보안 등 국가운영의 필요조건을 훼손한다는 게 우리가 얻은 교훈이자 사실상의 결론이다.

서울 용산에 있는 합동참모본부 건물(왼쪽)과 국방부 청사. [사진 = 연합뉴스]
서울 용산에 있는 합동참모본부 건물(왼쪽)과 국방부 청사. [사진 = 연합뉴스]

윤 당선인의 열정적인 브리핑과 논의 과정을 차분히 지켜본 국민들의 여론이 이전 반대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이는 청와대 이전이 국민들의 일상에 불편을 초래할 것이란 인식의 반영일 수 있다. 정권 출범을 전후해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데 대한 우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국민 불편 최소화 차원에서 본다면 지금의 청와대는 오히려 최적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 집무시설이 국민 속으로 다가가기보다 국민들에 대한 청와대의 개방성을 대폭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면 어떨까 싶다. 그게 부산스럽지 않으면서도 윤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 공약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를테면 백악관의 세 배나 된다는 청와대의 대부분을 개방하고 기존 부지의 일부만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기타 필수 안보시설, 대통령실 직원들의 사무실 등으로 사용하도록 구조를 바꾸고 대통령 집무실 코앞까지 시민들이 상시 접근할 수 있도록 잔디마당을 구축하는 방안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잔디마당에서 핸드폰이 안 터진다 해도 불평을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차후에 당선될 대통령 누구도 더 이상 집무실 이전을 운위할 수 없게 되리라 여겨진다.

중요한 것은 당선인의 의지다. 대통령이 시민들의 시선을 받으며 출근하고, 집무실로 걸어가는 동선 옆의 기자실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며 수시로 담소를 하든 언쟁을 벌이든 한다면 그 이상 좋은 구도는 없을 것 같다. 그 정도 구도만 정착시켜도 윤 당선인은 두고두고 소통에 적극적인 대통령이었다는 평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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