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기를 맞아 물가가 심상찮은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물가 상승을 넘어 인플레이션의 가속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인플레이션은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지금의 국내 고물가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고물가가 주로 대외발 요인에 의해 초래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 해결의 수단이 여느 때보다 적다는 게 직접적인 이유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에 비해 3.7% 상승했다. 3%대 물가 상승률은 벌써 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국내 소비자물가는 작년 10월 근 10년 만에 3%대(3.2%)로 올라서더니 이후 상승폭을 더 키워 매달 3%대 후반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의 소비자물가 산정 기준이 현실과 다소 거리다 있다는 비판까지 감안하면 소비자들이 느끼는 고통은 지표 이상으로 크다고 볼 수 있다. 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주거비 부담이 전에 없이 커진데다 금리 인상으로 인해 부채 이자의 상환 부담까지 늘어난 것이 고통 증가의 구체적 원인들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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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의 장기화로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진 터에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터지자 전세계를 덮친 인플레이션은 보다 심화되고 장기화되는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안 그래도 고공행진 중이던 국제유가와 기타 에너지 가격은 물론 곡물 가격까지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가 흐름에 대한 우려는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또 다시 40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더욱 증폭됐다. 미 상무부는 3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의 2월 PCE 가격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6.4%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1982년 1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미국의 지난 1월 PCE 물가 상승률은 6.25%였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 결정시 주요 기준으로 삼는 근원 PCE 가격지수도 2월에 5.4%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시장의 전망치에 부합하는 결과였다. 시장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상승폭 자체가 컸던 탓에 미국증시는 즉각 움츠러드는 반응을 나타냈다. PCE 가격지수 발표 당일 주요 지수들이 일제히 1%대의 하락폭을 기록한 것이 증시 내부의 불안감을 대변해주었다.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직접 자극한 것은 인플레이션 가속화가 불러올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라 할 수 있다. 이번 PCE 가격지수 발표로 연준이 5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럴 경우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상 압박을 더욱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올릴 경우 우리와의 금리 차는 상단 기준 0.25%포인트로 좁혀진다. 이는 우리가 4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지금의 기준금리(1.25%)를 동결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한은이 4월 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또 한 번 동결할지는 미지수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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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세적으로 전망하자면 금리는 빠르게 상승하는 흐름을 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 입장에서 볼 때 성장에 다소 비중을 덜 두더라도 물가 안정이 당장 시급한 과제가 됐다는 인식을 갖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 탓이다.

미국 정부가 산유국들에 원유 증산을 압박하는 것과 함께 향후 6개월 동안 전략 비축유를 하루 100만 배럴씩 방출하겠다고 31일 발표한 것도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대변한다. 이는 비상한 수단을 써서라도 물가 관리에 나서야 할 만큼 상황이 다급해졌음을 말해준다.

고물가나 고금리 상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이들은 저소득층과 취약차주들이다. 특히 고물가가 장기화되면 저소득층이 받는 고통은 치명적일 정도로 강해진다. 그런 만큼 물가 관리는 무엇보다도 시급한 정부의 당면 과제가 됐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검토 중인 유류세 인하폭 확대를 넘어 시장질서 관리까지 염두에 둔 가운데 사정기관을 망라하는 범정부적 종합대책 마련에 나설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현재 새로운 권력과의 힘겨루기에만 몰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실망감과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서민들은 휘발유값과 경유값, 밀가루 제품값, 기타 공산품 가격 인상 등으로 생활고를 호소하고 있는데 ‘알박기 인사’ 논란을 자초하며 분노까지 유발하고 있는 게 임기 종료를 앞둔 정부의 현재 모습이다. 민생 관리는 외면한 채 정치 행보에만 몰두하는 듯한 일부 정치인 각료의 모습도 한심스럽게 여겨진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현 정부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는 물가 관리다. 임기 말에 권리만 강조하지 말고 책임감도 마지막 순간까지 짊어지겠다는 자세를 가져주길 기대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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