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정부가 유류세 추가 인하 카드를 꺼내들었다. 오는 7월까지 한시적으로 취하고 있는 유류세 인하의 폭을 현행 20%에서 30%로 늘리기로 한 것이다. 이번 조치는 소비자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는데 따라 취해졌다. 유류세 추가 인하 기간은 오는 5~7월이다.

5일 통계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에 비해 4.1% 상승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5개월째 3%대 상승 행진을 이어온 소비자물가지수가 마침내 4%벽마저 뚫고 올라선 것이다. 소비자물가지수가 4%대 상승률을 보이기는 10년 3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국내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 9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3%대(3.2%)를 기록한 뒤 그 다음 달부터 차례로 3.8%, 3.7%, 3.6%, 3.7%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최근 7%대까지 올라간 것에 비하면 수치상 낮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상승률은 미국 못지않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의 물가지수 산정 방식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배경이다. 일례로 우리의 물가지수는 주거비 등락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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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최근의 고물가는 대외 요인에 주로 기인하는 세계적 현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정부의 대응도 전에 비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가 안정 효과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유류세 추가 인하 카드를 꺼내든 것도 그런 고민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내달부터 3개월 동안 유류세 인하폭을 30%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조치로 휘발유 1ℓ당 세금은 유류세 20% 인하 때보다 83원 더 낮아진다. 유류세 인하 조치 이전에 비해서는 247원 내려간다. 인하율 확대로 휘발유 1ℓ에는 574원의 세금이 붙게 된다.

유류세 추가 인하로 ℓ당 10㎞의 연비로 하루 40㎞를 운행하는 휘발유 사용 운전자는 월 3만원의 유류비를 절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20% 인하 때에 비해서는 월 1만원 정도의 비용절감 효과를 누릴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이와 함께 경유값 상승으로 고통받는 영업용 화물차와 버스 등에 유가연동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유류세 인하폭만 확대할 경우 유가보조금 지급 단가가 낮아져 화물차 운전자 등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현재 사업용 화물차에는 유류세와 연동된 유가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 기준가격(ℓ당 1850원) 이상 상승분의 50%를 지원하고, 최대 지원한도는 ℓ당 183.21원이다.

홍 부총리는 이번에 국민들의 체감 유류비를 낮추기 위해 고유가 부담 완화 3종 세트를 마련해 신속히 시행키로 했다고 밝히면서 유류세 인하폭 확대와 유가연동 보조금 지급 외에 차량용 부탄(LPG)에 대한 판매 부과금 30% 감면(ℓ당 12원) 등을 발표했다. 이들 조치의 적용 기간 역시 5월부터 3개월이다.

정부는 또 원자재 가격 상승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이차전지 및 알루미늄 스트립 등에 할당관세 0%를 적용하기로 했다. 할당관세는 수입 원자재 등에 대한 수급 조절을 목적으로 일정한 범위 안에서 플러스·마이너스로 적용하는 관세를 의미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국제적으로 가격이 뛴 곡물의 수급을 조절하기 위해 사료용 밀과 옥수수 등에 대해서는 대체입찰 등을 통해 물량을 추가로 확보하고, 검역 및 통관 지원을 통해 신속히 유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치하기로 했다.

담합 등 불공정행위에 대해서도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동시에 주요 독과점 분야의 경쟁을 촉진시키기 위해 관련 규제를 적극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홍 부총리는 최근의 소비자물가 급등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이 본격화하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분석하면서 “주요 선진국들도 30~40년 만에 6~7%대의 물가 오름세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분간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등 물가 문제는 어느 현안보다도 중요하고 엄중한 사안”이라며 “정부 교체기에 면밀한 모니터링 속에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책역량을 총동원해 마지막까지 대응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물가 상승세가 장기화·가속화하자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정부에 유류세 인하폭 확대를 공개적으로 요청했었다. 인수위 경제1분과 최상목 간사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인수위 사무실에서 경제분과 업무보고 내용을 브리핑하면서 최근 휘발유 값이 ℓ당 2000원이 넘었다고 지적한 뒤 유류세 인하폭을 30%로 늘려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정부도 추가 인하를 검토한다고 밝힌 만큼 4월 중 시행령 개정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현행법 상 유류세는 최대 30%까지 인하할 수 있다. 하지만 유류에 적용하는 탄력세율을 기본세율로 바꾸면 7%포인트 정도의 추가 인하 여지가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정부는 유류에 기본세율보다 높은 탄력세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마저 없애면 소비자들이 추가 혜택을 누릴 여지가 더 생긴다는 의미다.

이를 고려하면 정부는 아직까지도 마지막 카드를 아껴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국제유가가 또 다시 꿈틀대고 그 여파로 국내 휘발유 가격 등이 지금보다 상승할 때를 대비한 결정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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