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1~3월)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분기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별 적자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수출이 견실한 성장세를 보였지만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바람에 수입이 더 많이 늘어난 탓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달 초 내놓은 ‘2022년 3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3월 수출액은 634억8000만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2% 증가했다. 정부가 무역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56년 이후 66년 만에 월별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종전 최고치인 2021년 12월(607억4000만 달러)보다 27억4000만 달러(4.5%) 증가한 것이다. 수출은 지난해 3월부터 13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2020년 11월부터 지난달까지 17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세계 경제가 2020년 하반기부터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충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덕분이다.

부산항 감만부두. [사진 = 연합뉴스]
부산항 감만부두. [사진 = 연합뉴스]

15대 주요 수출품목 가운데 13개 품목의 수출이 증가했다. 효자 품목인 반도체(131억 달러)와 석유화학(54억 달러) 등이 사상 최고 실적을 경신하며 3월 수출 호조를 이끌었다. 무선통신(44.5%), 디스플레이(48.4%), 석유제품(90.1%), 철강(26.8%) 등 전통 주력 산업도 상승세를 이끌었다. 바이오(24.2%)를 비롯한 신산업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에 더해 중국 내 코로나 재확산, 일본 지진 등 공급망 차질요인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자동차 수출(-9.7%)은 5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수주 계약과 수출 사이의 시차 발생 등의 이유로 선박 수출(-35.9%)도 크게 감소했다.

지역별로는 중국(16.6%), 미국(19.9%), 아세안(44.4%) 등 3대 시장 수출 모두 월간 최고 실적을 경신했으며 중동(17.4%), 중남미(25.6%) 등 신시장에 대한 수출도 두 자릿수 증가의 상승세를 유지했다. 손호영 산업부 수출입과장은 “지난달 대통령 선거로 조업일수가 하루 감소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여건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수출 체력이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증명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수입 역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3월 수입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7.9% 늘어난 636억2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통상적으로 경기호황기에는 수출제품 생산에 필요한 각종 원자재·중간재 수입도 함께 늘어난다. 특히 수입액 급증에는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세계적 대유행) 사태와 글로벌 공급망 차질,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에너지 가격 폭등 등이 주요 악재로 작용했다.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원 수입액이 지난해 3월 77억2000만 달러에서 지난달 161억9000만 달러로 1년 만에 84억7000만 달러(109.7%)나 증가하며 월간 최고치를 경신한 게 수입액 증가의 주요인이다. 주요 3대 수입 에너지 가운데 유가(두바이유 기준)는 지난해 3월 배럴당 64.44달러에서 지난달 110.93달러로 72% 올랐다. 같은 기간 동북아 천연가스 현물가격(JKM)은 mmbtu(열량 단위)당 8.26달러에서 24.81달러로 200% 폭등했다. 석탄(호주산 기준) 가격은 t당 60.7달러에서 328.2달러로 441% 치솟았다.

지난달 무역수지는 1억4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2개월 연속 이어진 무역적자가 지난 2월 흑자로 반전됐지만, 1개월 만에 다시 적자로 전환됐다. 3월에 무역수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3월(-11억1879만 달러) 이후 14년 만의 일이다. 지난달 월간 수출은 역대 최고치 기록을 썼지만, 동시에 에너지 수입 월간 최대치 기록도 같이 쓰는 바람에 3월 무역수지 적자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보통 연초에 속하는 3월에는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기 어려운 시기로 꼽힌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충격이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인 무역수지 흑자 기조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1분기 무역적자는 40억4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1분기 기준 무역적자가 발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와 원유 가격급등 현상이 뚜렷했던 2008년 1분기(-66억 1000만 달러) 이후 처음이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잇단 악재로 망가진 글로벌 공급망 질서가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이런 만큼 향후 에너지 가격폭등세가 이어지면 수입물가 상승과 수입 규모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수출업체의 원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무역수지 적자 폭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날 ‘원재료수입물가 상승이 무역수지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원유와 가스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올해 1~2월 중 원재료수입물가가 58.5% 상승했다고 밝혔다. 한경연은 “원재료수입물가가 1%포인트 상승하면 무역수지는 분기 기준으로 7200만 달러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올해 1분기 원재료수입물가 상승률을 58.5%로 가정했을 경우, 무역수지는 42억3000만 달러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최근 글로벌 공급망 불안,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원자재의 공급난이 심화되는 양상”이라며 “주요 수입원재료에 대한 관세율을 인하하고 침체된 해외자원개발을 다시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수출업체를 돕기 위해 △무역금융 제공 △물류바우처 대상 확대 △디지털 무역지원 강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 악화와 중국 내 코로나19 재확산 등 우리나라의 무역·공급망 전반에 우호적이라고 볼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수출기업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도록 노력하는 한편 반도체 희귀가스를 포함한 공급망 핵심품목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노력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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