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에 시범 도입되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가 초안보다 강화된 방향으로 논의되면서 수출기업들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탄소국경세제로 불리는 CBAM은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함유량에 EU 탄소배출권 거래제(ETS)와 연동된 탄소가격을 부과하는 조치다. 수출기업에는 일종의 추가관세로 인식될 만한 제도인 셈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 3일 내놓은 ‘EU 의회의 CBAM 수정안 평가와 시사점’에 따르면 EU 의회가 공개한 수정안은 초안보다 더욱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수정안이 초안과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내용은 △CBAM 적용 품목 확대 △CBAM 적용 및 무상배출권 폐지 조기 시행 △탄소 배출범위에 간접배출 포함 등인 것으로 분석됐다.

초안에서 CBAM 적용대상은 철강과 전력, 비료, 알루미늄, 시멘트 등 5개 품목이었지만 수정을 거치며 유기화학품, 플라스틱, 수소, 암모니아 등 4개가 추가돼 모두 9개 품목으로 늘어났다. 연구원이 이들 품목에 대해 2019~2021년 우리나라가 EU로 수출한 연평균 수출액을 분석한 결과 초안 5개 품목의 경우 30억 달러(약 3조 6600억원) 규모로 EU로의 총수출액 중 5.4%를 차지했고, 수정안에 추가된 4개 품목 수출은 55억 1000만 달러(9.9%)로 집계됐다. 9개 품목을 모두 더하면 85억1000만 달러(15.3%)에 이른다. 무협은 “초안과 비교해 수출 비중이 3배 높아지는 만큼 국내 관련 업계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수정안은 CBAM 탄소배출의 범위도 기존 직접배출에서 간접배출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했다. 직접배출은 상품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간접배출은 상품생산에 사용된 전기를 발전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전력 1kwh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이 472.4g으로 EU(215.7g), 캐나다(123.5g) 등 선진국보다 2~4배가량 많아 부담이 훨씬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CBAM 도입 시기도 2026년에서 2025년으로 1년 앞당겼고, EU 내 탄소누출 위험업종으로 분류되는 사업장에 무상으로 할당하는 탄소배출권 폐지 시기 역시 2036년에서 2028년으로 8년이나 당겼다. 신규섭 무역협회 연구원은 “EU 의회는 올해 상반기 중에 최종안을 도출할 예정”이라며 “최종 법안이 또 수정안을 얼마나 반영할지 알 수 없지만 초안에 비해 업계의 부담을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어 관련업계 및 기관의 세밀한 영향평가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U는 2018년 탄소저감 조치 등 협약을 담은 ‘그린 딜’을 통해 탄소국경세 관련법안의 근거를 마련했다. 지난해 7월 EU 집행위원회가 기후변화에 대응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며 2023년 탄소 국경세를 실질적으로 도입하는 탄소감축을 위한 법안 패키지 ‘피트 포 55’(fit for 55)의 초안을 발표했다.

이 초안에 포함된 EU의 탄소국경세는 EU 내에서 생산된 제품보다 수입품의 탄소배출량이 더 많을 경우 부과하는 관세다. 온실가스 규제를 등한시하는 국가나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국가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켜 궁극적으로 전 지구적인 생산구조 변화와 함께 지구온난화 예방을 꾀한다는 취지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제품은 그만큼 추가 비용이 들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EU는 초안에서 2023년 1월1일부터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기 등 5개 분야에 대해 탄소국경세 부과를 우선 적용하기로 했다. 전면 도입시기는 2026년이다. 우리나라 무역에서 EU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수출 9.9%, 수입의 10.7%를 차지한다. 2012년 이후 EU를 상대로 해마다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인 만큼 새 친환경 관세장벽이 신설되면 무역수지 악화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하지만 유럽의회 환경위원회는 올 들어 CBAM 대상 품목을 확대하고 법안의 발효 시기를 기존 2026년에서 2025년으로 1년 앞당기며 적용 범위에 직접배출뿐만 아니라 간접배출까지 포함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특별보고관 법안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환경위원회는 지난 2월에 모함메드 차힘 탄소국경조정제도 특별보고관이 제출한 법안과 각 정당이 제출한 개정안을 함께 협의해 이달 중 법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이후 본회의에서 표결이 이뤄지면 CBAM 관련 법안이 확정된다.

오는 6월쯤 유럽의회 본회의가 의회 법안을 통과시키면 하반기에 ‘3자협상’을 거쳐 최종 법안이 확정된다. 일부 핵심 쟁점은 각국 정부와 논의해 부칙에 별도로 규정하고, 최종안은 하반기 CBAM 본 협상 후 공개될 예정이다. 조빛나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장은 “EU 의장국인 프랑스의 임기가 종료되는 6월까지 CBAM 이슈가 마무리될 것”이라며 “CBAM 규제는 EU 회원국이 자국 법안으로 수정할 수 없고, EU가 확정하는 대로 모든 회원국에 일괄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미국도 탄소국경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CBAM과 비슷한 국경탄소조정(BCA·Border Carbon Adjustment) 제도 도입을 위한 논의를 구체화하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자국 의회에 제출한 ‘2021 통상정책의제 및 2020 연례보고서’에서 BCA를 검토 중이라고 언급했다. 미 의회에서는 지난해 7월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 등의 주도로 BCA 법안이 발의됐다. 법안에는 2024년부터 화석연료와 알루미늄, 철강, 시멘트 등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은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수출의 14.9%, 수입의 11.9%에 이르는 거대 시장이다. EU보다 비중이 더 큰 만큼 미국의 탄소국경세 도입 역시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EU와 미국이 기후변화 방지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CBAM을 자국 산업 보호용 친환경 무역장벽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