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가 시작됐다. 출발점은 지난 5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였다. 이날 회의에선 재적위원 27명(공익위원,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각 9명) 가운데 24명이 참석했다.

매년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 파열음을 내며 논의가 진행됐지만 이번 최저임금 심의 과정은 전보다 더욱 복잡한 갈등 양상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논의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에 더해 최저임금 차등적용 문제가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새 정부에 의해 처음 고시된다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을 모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최저임금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중요한 실천방안 중 하나로 다뤄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기조 속에서 최저임금은 이전 정부 때보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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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오는 5월 출범할 새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파기하고 시장원리에 입각해 기업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경제정책을 펼칠 것이 확실시된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 속도의 조절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은 편이다. 그런 분위기 탓에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적정 수준을 둘러싼 논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6470원이었다. 이후 최저임금은 꾸준히 올라 2022년 현재 9160원을 기록하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늘어난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계산하면 지난 5년간의 최저임금 상승폭은 2690원, 상승률은 41.6%에 달한다.

지금의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노동계와 경영계의 인식은 크게 엇갈린다. 노동계가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에 못 미친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는 반면 경영계는 업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최저임금이 올라갔다는 주장을 펴왔다.

양측은 최저임금 인상폭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넓어지는 바람에 최저임금의 실제 인상폭은 단순 계산에 의한 결과치보다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 중 한 명인 박희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산입범위 확대를 반영해 계산하면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의 최저임금 상승률은 5.86%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문 정부 5년 동안의 상승률이 오히려 이전 정권 때보다 낮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산입범위 조정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등의 경우 사실상 지난 5년간의 시간당 최저임금 상승률 41.6%를 고스란히 추가 부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영계는 급격히 상승한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소상공인들이 늘어났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른 바 ‘최저임금 미만율’이 전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집계에 따르면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의 비율이 재작년 기준으로 15.6%나 된다. 2019(16.5%)보다 약간 낮아지긴 했지만 경영계는 문재인 정부 들어 이 비율이 가파르게 올라갔다며 최저임금의 추가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경총 전무는 소상공인과 영세사업자들은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그들의 입장을 감안해 내년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노동계는 소상공인 등의 어려움은 임금이 아니라 임대료나 카드 수수료 등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이므로 정부가 따로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입장이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문제도 미리부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논쟁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운동 과정에서 최저임금 차등화 실현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과 연관돼 있다. 윤 당선인은 최저임금 관련 공약을 통해 점진적 인상과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을 약속했다.

이 문제를 두고도 노동계와 경영계는 날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의 근거는 현행 최저임금법에 마련돼 있다. 동법 4조 1항엔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두고도 양측의 입장차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노동계는 이 조항이 적용된 예가 거의 없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의 지역별 구분은 법적 근거조차 전혀 없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실제로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이 제도가 처음 시행된 1988년 한차례만 시행됐다. 이를 토대로 노동계는 해당 조항을 삭제하는 게 타당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민주노총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업종별 구분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것은 물론 수습·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용자 이익을 대변하는 류기정 위원은 “법으로 보장된 업종별 구분 적용이 그 동안 심도 있게 논의되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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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의 상반된 주장은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나타날 갈등이 전년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최저임금 심의는 오는 6월 29일까지 끝나야 한다. 현행법 상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최종안을 도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 노동부 장관은 8월 5일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시해야 한다.

이 같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심의가 기한 내에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난해에도 최저임금 최종안은 7월 13일에 가서야 의결됐다. 이번에도 심의 시한이 지켜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기한이 미뤄지는 것과 함께 노동부가 재심의를 요구할지 여부도 새로운 관심사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아직 전례가 없지만 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 심의 결과에 대해 어느 한쪽의 이의제기가 있을 경우 내용 검토 후 재심의를 요구할 수 있어서이다.

재심의 요구는 사실상 최저임금의 키를 쥐어온 공익위원들에 대한 새 정부의 불만이 강하게 작용할 경우 나타날 수 있다. 지금의 공익위원 9명 중 8명은 작년 5월 14일 3년 임기를 시작했다.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공익위원들의 거취에 대해 언급하면서 “사퇴를 밝힌 사람은 한 분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공익위원들은 지위가 유지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심의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독립적인 기구의 일원으로서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심의에 임할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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