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논의의 장이 펼쳐졌다. 이맘때부터 8월 초까지 기간이면 으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곤 했던 연례행사가 사회적 관심 속에 또 시작된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 시한은 6월 29일이다. 지켜질지 모르지만 일단 정해진 시한은 그렇다. 이 때까지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종안을 의결한 뒤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면 노동부 장관은 8월 5일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시하게 된다.

올해의 최저임금 심의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요인은 여럿이다.

우선 올해는 보기 드문 장기간의 고물가 행진 속에 최저임금 논의가 진행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월급 빼고는 다 올랐다”는 푸념이 나올 만큼 임금 근로자, 특히 저임금 근로자들의 불만이 고조돼 있다. 국내에서는 6개월째 3% 이상의 고물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에 비해 4.1%나 치솟았다. 이런 분위기를 업고 노동계는 10%에 육박하는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일전을 벼르는 듯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심의 과정상의 치열함을 예고하는 두 번째 요인은 보수 정당에 의한 정권 교체다. 곧 집권당이 될 국민의힘은 소득주도성장의 실천방안으로 최저임금 인상 카드를 선택해온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을 전환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를 잘 아는 경영계는 전에 없이 큰 목소리로 새로운 권력을 향해 자신들의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경영계의 이 같은 움직임에는 사실상 최저임금 결정권을 쥐고 있는 최저임금위 공익위원들을 압박하려는 목적이 내포돼 있다. 그간 최저임금위의 최저임금 심의는 근로자위원 그룹과 사용자위원 그룹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공익위원들이 최종안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돼왔다.

최저임금 인상 외에 차등적용이 뜨거운 현안으로 떠올랐다는 점도 심의 과정상의 험로를 예고해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한국산업연합포럼(KIAF) 등 경영계를 대변하는 단체들은 설문조사 결과 등을 앞세우며 최저임금의 차등적용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업종별로 지불능력에 따라 최저임금에 차등을 두어 위기에 빠진 기업들에게 숨통을 틔워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들은 산업 활성화를 위해 새 정부가 우선 해결해주어야 할 과제로 최저임금 차등적용과 유연근로제 확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등을 제시하고 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중 하나라는 점에서도 새삼 관심을 모으는 이슈가 되어버렸다. 윤 당선인은 최저임금 주제와 관련해 점진적 인상,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이슈는 올 들어 갑자기 불거진 게 아니다. 경영계는 이전부터 차등적용 필요성을 거론해왔고, 지난해 최저임금 심의에서도 이 주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었다. 결국 표결(반대 15, 찬성 11, 기권 1)에 의해 부결됐지만 차등적용 이행은 경영계의 숙원으로 남아 있다. 그러던 차에 차등적용을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경영계는 이참에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따라서 이번 최저임금위 심의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의 결정 못지않게 차등적용 문제가 중요한 현안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최저임금위 또한 바뀌는 정치 환경에 따라 다소간의 입장 변화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중립성을 보장받은 기구라고는 하지만 최저임금위는 그간 정부의 정책방향에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춰온 게 사실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보수 정권이 새로 들어서는 만큼 노동계의 반발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윤 당선인의 공약대로 일을 밀어붙이다간 위법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현행 최저임금법이 최저임금의 사업별 차등적용 근거 조항만을 두고 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최저임금법 4조 1항은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역별 차등적용의 법적 근거는 없다는 얘기다.

지금으로서는 차등적용과 관련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면 ‘업종별’ 영역으로 제한해 진행하는 게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그마저 무리하게 추진하는 건 삼가야 한다. 자칫 산업계 내부에서 업종 간 갈등이 일어날 수 있고, 차등적용 자체가 임금의 최저선 설정이라는 최저임금제의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아서이다. 차등적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 점을 감안, 향후 새 정부는 당장 대선 공약 이행을 강행하려 하기보다 최저임금위가 적정선에서, 기한 내에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힘써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하고 그 이후에도 꼭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법 개정이든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경영계도 마찬가지다. 서두르기보다 적법하고 합리적 절차에 따라 의지를 관철하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일단 올해 최저임금위 심의에서는 합리적 임금수준 결정에만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는 뜻이다. 특히 올해는 장기간의 고물가 행진 속에 최저임금 심의가 이뤄지는 만큼 심의 참가자들의 고민도 어느 때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고물가 상황이 경영계에는 최저임금 억제 명분을, 노동계에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 명분을 각각 제공하는 등 양면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결정은 인상폭을 너무 키우면 한덕수 총리 후보자의 지적대로 기업들이 고용을 줄여 결과적으로 ‘루즈루즈’ 게임이 될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엔 노동계의 거센 반발에 사회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그 사이 어느 지점에서 위원회가 ‘윈윈’의 묘수를 찾아내는 데 집중하도록 차분히 지켜보며 결과에 승복할 준비를 하는 것이 정부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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