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인 코스트코가 새벽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직은 일부지역에서 실시되고 취급품목도 한정돼 있지만, 오프라인에만 매달리던 코스트코가 온라인몰 강화와 퀵커머스 확대로 변화의 물꼬를 텄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코스트코는 지난달 31일 CJ대한통운과 손잡고 ‘얼리 모닝 딜리버리’를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오후 5시 전까지 5만원 이상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7시 전까지 무료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새벽배송 서비스는 현재 서울 전 지역과 경기·인천 일부 지역에서만 가능하다. 취급품목은 과일과 채소, 치즈·버터·우유 등 유제품, 두부·샐러드·간편식, 베이컨·소시지, 음료·우유·요거트 등 5개 항목이다. 해산물이나 육류 등은 제외된다. 구매가능 품목이 40개 안팎이지만 소비자 반응을 살펴보고 서비스 지역과 품목을 확대하기로 했다. 

1998년 한국법인을 만든 코스트코는 오프라인 매장에만 전력을 기울였다. ‘좋은 제품을 싼 가격에’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창고형 할인점의 제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주요 업체들이 온라인 매장과 배송을 강화하는 와중에도 이 정책을 고수해 왔다. 코스트코 온라인몰이 있지만 빠른 배송이나 큰 폭의 할인 혜택은 없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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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나 e커머스 업체들이 물류센터나 배달인력 확보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사이 ‘매장방문’을 고집한 코스트코는 오히려 실적이 크게 개선되기도 했다. 코스트코 감사보고서(2020년 9월~2021년 8월)에 따르면 이 기간 매출액은 5조3523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3%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775억원으로 24.3% 늘어나고, 당기순이익도 1347억원으로 27.8% 증가했다. 코스트코 매출 성장률이 두 자릿수 이상을 기록한 것은 2014회계연도(11.8%) 이후 6년 만이다.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든 주요 업체들이 고비용에 적자행진을 이어가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새벽배송 서비스는 2015년 마켓컬리가 첫선을 보였다. 밤 늦게 주문하더라도 다음날 아침이면 원하는 상품을 받아볼 수 있는 이점 덕분에 유통가의 화제로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쿠팡의 로켓배송 서비스도 다음날 배송을 넘어 당일 또는 새벽배송이 가능한 ‘로켓 와우’로 진화했다. 이제 새벽배송 서비스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대세로 자리잡았다.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시행되며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각종 생필품과 신선식품을 새벽배송으로 받으려는 수요는 급속히 늘어났다. 새벽배송이 오프라인 시장의 판로를 온라인으로 확장하는 교두보 역할을 한 것이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국내 새벽배송 시장은 2020년 2조5000억원 규모에서 2023년에는 11조9000억원 규모로 확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발 빠른 배송이 소비자 구매촉진과 만족도 향상으로 직결되는 것이다. 이런 시장성에 힘입어 많은 기업들이 새벽배송 지역을 넓히거나 새롭게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새벽배송 시장이 과열양상을 보이며 시장에 진출했던 대형 유통기업들마저도 고비용 구조를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 실제로 롯데그룹의 통합 온라인몰인 롯데온과 BGF리테일그룹 계열 온라인 식품업체 헬로네이처가 백기를 들고 철수를 선언했다. 새벽배송 시장을 급격히 키웠던 코로나19가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 국면으로 접어들며 더 이상 출혈경쟁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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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흑자를 거둔 기업도 없다. 새벽배송 선두주자로 꼽히는 SSG닷컴과 마켓컬리의 지난해 적자는 전년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같은 기간 오아시스마켓의 영업이익도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새벽배송은 배송원이 야간시간 근무해야 하는 특수성으로 인건비가 일반 배송보다 배 정도 비싸다. 신선식품이 주력인 만큼 창고와 배송차량 등 ‘콜드체인(냉장유통)’ 인프라 또한 필수다. 오랜 기간 재고를 유지하기 어려워 상품의 ‘선입선출’도 보장돼야 한다. 새벽배송 진출이라는 코스트코의 변신이 다소 의외라는 유통업계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지만 코스트코의 새벽배송 진출은 한국의 치열한 e커머스전쟁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24년 제국’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라는 관측도 있다. 신세계그룹의 트레이더스가 시장점유율을 갉아먹고 쿠팡이 가격경쟁력으로 집요하게 공략해오자,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코스트코의 아성에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코스트코가 새벽시장에 진출하도록 만든 주요인은 국내 e커머스산업의 빠른 성장이 꼽힌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전체 커머스산업 규모는 4830억 달러(약 604조7000억원)에 이른다. 이중 e커머스는 1960억 달러 규모로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시장 규모가 커지자 쿠팡은 기존 e커머스 업체와는 차원이 다른 공세를 퍼붓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신선식품 부문을 강화하면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최저가로 가격 수시조정)의 타겟을 코스트코와 트레이더스 등 창고형 할인점에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회원이 로켓배송 서비스로 주문금액에 상관없이 당일·익일 배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스트코로선 영역 잠식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트레이더스의 추격도 만만찮다. 트레이더스 매출은 2019년 2조3371억원에서 지난해 3조3150억원으로 41.8% 급증했다. 유통업체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소싱을 통해 코스트코만이 판매할 수 있는 치즈류의 상품 등을 제외하면 트레이더스는 철저하게 코스트코의 가격과 연동해 제품을 판매한다”며 “회비도 없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2%대로 코스트코보다 1%포인트가량 낮은데 이는 결국 소비자에게 더 많은 몫을 돌려준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문제는 수익을 낼 수 있느냐에 있다. 코스트코의 외형은 꾸준히 커지고 있지만, 영업이익률은 2015회계연도 4.5%에서 5년 만에 3.3%로 떨어졌다. 더군다나 인건비와 판촉비, 운영비 등의 증가로 2020회계연도만 해도 판매관리비가 1000억원 정도 늘어났다. 이런 마당에 새벽배송 시작으로 판매관리비는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할 공산이 크다는 게 유통업계의 지적이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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