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와 경쟁할 ‘제2의 증권거래소’가 생긴다. 지난 3년간 대체거래소(ATS) 설립을 준비해온 금융투자협회(금투협)와 대형 증권사들이 지분구조 등에 대한 논의를 마친 가운데 중소형 증권사들도 참여의사를 밝히면서 ATS 설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ATS가 설립되면 한국거래소의 67년 독점체제가 막을 내린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금투협과 7개 대형 증권사로 구성된 ATS설립준비위원회는 최근 중소형 증권사 30여 곳으로부터 ATS 참여의사가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에 따라 ATS 설립준비위는 각 회사별 지분율을 최종 결정하고 올해 안에 예비 인가를 신청하기로 했다. 최종인가까지는 2년가량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금투협과 KB증권·NH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신한금융투자·키움증권·한국투자증권은 2019년 ATS 설립준비위를 구성하고 관련 논의를 시작해 지분구조에 대한 논의를 마쳤다. ATS 설립준비위는 대형 증권사들과 금투협의 지분을 각각 8∼10%선으로 결정했다. 중소형 증권사들의 지분은 3%선으로 알려졌으나 향후 참여 증권사 수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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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금투협과 기존 증권사 7곳의 지분을 빼면 중소형사들이 3%씩 가져간다고 했을 때 10여 곳밖에 참여하지 못한다”며 “참여사 수에 따라 중소형사는 더 적은 지분을 가져가는 곳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의 지분은 지난해 말 기준 증권사 등 34곳과 자기주식(3.80%)으로 구성돼 있다.

다자간 매매체결회사인 ATS는 금융사들이 전자거래 기반으로 설립한 주식거래 시스템이다. 정규 증권거래소인 한국거래소와 달리 상장심사, 시장감시 등과 같은 공적 역할은 없고 주식매매 체결기능만 있다. 상장주식과 예탁증권만 거래할 수 있고, 비상장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는 거래대상에서 제외된다. 

한국거래소는 전신인 대한증권거래소가 1956년 개설된 이후 67년 동안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ATS 도입 근거가 마련됐고, 설립을 추진해왔지만 거래소 본사가 있는 부산 시민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한국거래소의 주식매매 체결이 분산됨에 따라 부산의 위상이 추락할 것을 우려한 탓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증시에서 주식거래가 크게 늘어나면서 인원과 비용이 적게 들어 주식거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ATS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설립에 탄력이 붙었다. 해외 주요국들이 거래소 간 경쟁을 통해 주식매매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있다는 평가도 호재로 작용했다. 해외에서는 수많은 대체거래소가 설립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는 각각 50여 곳, 200여 곳이 운영될 정도로 활성화돼 있다. 일본에서도 대체거래소를 통한 매매체결 시설 간 치열한 경쟁에 힘입어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ATS 설립의 쟁점과 개선방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해외 선진국들이 ATS의 성장을 통해 유통시장의 경쟁촉진 및 시장효율성 제고 등 긍정적 효과를 얻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원종현 국회 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 입법조사관은 “정규거래소와 ATS 사이는 물론 거래소와 ATS 내에서의 경쟁 격화는 거래소 산업의 변화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며 “ATS의 최대 강점인 IT 기반으로 기존 거래소의 매매시스템보다 성능이 뛰어난 전산설비를 갖춤으로써 매매체결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고 새로운 수수료 체계를 도입해 투자자들은 거래비용을 감축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증권가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이런 까닭에 그동안 ATS 설립에 부정적이었던 한국거래소도 ‘반대할 시기는 지났다’며 호의적 신호를 내비쳤다.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ATS 설립이 가능해진 만큼 다른 거래소와의 경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서학개미’(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이 해외 거래소에 상당 규모로 직접 투자를 하고 있고, 외국인들도 국내 시장에 참가하고 있는 만큼 (한국거래소는) 이미 해외 거래소와 직접적인 경쟁 환경에 노출돼 있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법상 ATS의 거래 한도는 시장 전체로는 15%, 개별종목은 30%까지로 제한된다. ATS가 정착하고 나면 15∼20%까지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럴 경우 한국거래소는 일정 부분 수익감소가 불가피하다. 시장에서는 ATS가 설립되면 거래소 간 경쟁을 통해 거래시간 연장과 거래비용 감소, 새로운 종류의 호가방식 등 다양한 매매체결 서비스가 등장해 투자자들의 편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ATS 도입은 경쟁촉진 차원에서 긍정적”이라며 “(ATS가) 얼마나 차별화된 전략을 들고나오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거래시간 연장과 새로운 형태의 매매체결 서비스 등을 기대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어느 정도 시장점유율 확보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ATS는 주문방법이 호가제시인 한국거래소와는 달리 다양한 주문 서비스, 매매체결 구조설계가 가능하다. 정규 거래시간인 오전 9시~오후 3시 30분 외 야간시간에도 매매하는 24시간 트레이딩 시스템 도입도 검토 중이다. 24시간 매매하게 되면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유럽 등 해외 시장상황을 반영해 투자할 수 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대체거래소의 빠른 시스템이 도입되면 전반적인 거래환경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트레이딩 분야에서 타임래그(시간 지체)가 줄어들고 기관 투자자 중심으로 매매가 활발히 이뤄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최근 증시 부진으로 거래대금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황 연구위원은 “국내 증시 일평균 거래대금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인 10조원 정도까지 줄어들면 한국거래소와 대체거래소 양쪽 다 수익성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위험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주식거래만 가능한 ATS는 시장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고, 거래비용 면에서도 한국거래소의 주식매매 수수료율( 0.0027%)이 해외 거래소(0.25% 수준)보다 매우 낮아 경쟁 여지가 크지 않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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