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과 미국 간의 기준금리 역전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미국 중앙은행이 16일 새벽(한국시간) 이틀에 걸친 통화정책회의를 마치고 큰 폭의 기준금리 인상을 발표한데 따른 것이다. 이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끝낸 뒤 정책금리를 기존보다 0.75%포인트 올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미국의 기준금리는 1.50~1.75%로 치솟게 됐다. 상단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행 기준금리와 같은 수준이다.

연준은 그간 금리를 올리더라도 통상 그 폭을 0.25~0.50%포인트로 잡아왔다. 그러나 미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대를 기록하며 40년래 최고치에 다다르면서 물가 정점론이 무색해지자 소위 ‘자이언트 스텝’을 취하게 됐다. 이는 지금의 물가 오름세가 그만큼 심상치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연준이 FOMC 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을 취한 것은 2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연준은 이날 회견에서 다음 번 통화정책 회의에서도 ‘빅 스텝’(한 번에 0.50%포인트 인상) 또는 ‘자이언트 스텝’을 취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오늘 관점에서 볼 때 다음 FOMC 회의에서 50bp(1bp=0.01%포인트)나 75bp를 인상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사진 = EPA/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사진 = EPA/연합뉴스]

다만 그는 “오늘의 75bp 금리 인상은 대단히 큰 폭의 인상으로 이런 규모의 움직임이 흔한 조치가 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해 연거푸 자이언트 스텝을 취할 가능성이 제한적임을 시사했다. 즉 시장 상황과 각종 변수를 검토해가며 금리 인상폭을 조절해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발언엔 물가 억제 의지를 강조함으로써 인플레 심리를 누그러뜨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이 올해 말까지 열릴 네 차례의 FOMC 회의에서 매번 기준금리 인상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연준 FOMC 회의는 오는 7. 9, 11. 12월에 차례로 열린다. 이 중 두 번의 회의에서는 0.50%포인트 이상의 금리 인상 결정이 내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골드만삭스다.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7월 회의에서 0.75%포인트, 9월 회의에서 0.50%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한 뒤 11, 12월 회의 때는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릴 것이라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말에 3.25~3.50%로 귀결된다. 영국계 바클레이스는 다음달 FOMC 회의에서는 0.50%포인트 금리 인상이 결정될 것이란 전망을 제시했다.

다음 달 인상폭이 어느 정도이든 대체적인 전망은 연말에 미국의 기준금리가 3%대 중반에 이를 것이라는데 모아져 있다. 그 근거는 이날 연준이 발표한 점도표 내용이다. 연준은 3월 회의에 이어 이번에도 새로운 점도표를 공개했는데 여기엔 올해 말 기준금리(중간값 기준)가 3.4%에 이를 것으로 나타나 있다. 점도표상의 내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는 3.8%였다. 석 달 전 공개됐던 점도표 수치보다 각각 1.5%포인트, 1.0%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연준은 지난 3월 회의와 이번 회의를 마친 뒤 경제전망 자료들을 공개했는데, 점도표는 그 자료의 일부다. 점도표는 연준 위원들 각자가 전망하는 미국의 기준금리 수준을 점으로 표시토록 해 그 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그림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연준은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양적긴축(대차대조표 축소) 조치도 지속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 경제를 짓누르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한 셈이다. 연준은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인플레이션 추가 상승을 압박하고 글로벌 경제활동에 부담을 준다”면서 “중국의 코로나 관련 봉쇄도 공급망 차질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연준의 긴축 강화 행보의 배경엔 미국의 고용상황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자리하고 있다. 연준은 “최근 몇 달간 일자리 증가세가 견고했고, 실업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과도한 금리 인상을 통한 물가잡기 시도가 미국 경제를 냉각시키고 정리해고를 촉발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물가 상승세가 예상 외로 강하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그런 주장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가속화는 한·미 간 금리 역전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우리보다 높아지는 현상인 금리 역전은 우리 경제에 여러 면에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장 우려되는 것이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다. 이들 자금이 더 큰 이익을 쫓아 미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금리 역전은 원/달러 환율에도 영향을 미쳐 원화 가치 하락을 자극할 여지를 안고 있다. 그 결과 원화 기준 수입물가가 오르고 종국엔 국내 물가에 가해지는 상승 압박도 더욱 커지게 된다.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자금이 기준금리 역전만으로 이탈을 시도하지는 않는다는 의견을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탄탄하기 때문에 기준금리 역전이 나타난다 해도 자본이 대거 유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 같은 주장은 자본 유출이 금리보다 그 나라 경제의 건강성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견해와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이 같은 낙관론에는 일정한 전제가 따른다. 금리 역전의 정도가 크지 않을 경우에나 통용될 수 있는 논리라는 의미다. 분석기관들의 전망대로 갈 경우 한·미 간 금리 역전은 다음 달부터 시작될 수 있다. 연준이 다음 달 최소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한다는 게 일반적 전망이고 보면 한은이 7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빅 스텝’을 취하지 않는 한 금리 역전은 곧바로 현실화된다. 현재 양국의 기준금리가 상단 기준으로 나란히 1.75%를 기록하고 있어서이다.

다음 달을 넘긴다 할지라도 한·미 간 금리 역전은 연내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한은이 네 차례 남은 올해의 금통위 회의에서 한 차례의 ‘빅 스텝’을 포함해 매번 금리를 올린다 해도 우리 기준금리는 연말에 3% 수준에 가까스로 도달한다. 연준 기준금리 전망치인 3.4%에는 못 미친다는 얘기다. JP모건은 15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한은이 7월에 한 차례 ‘빅 스텝’을 밟은 뒤 남은 8, 10, 11월(12월엔 금통위 회의가 없음)에 0.25%씩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이 금리 역전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느 정도의 역전 현상은 감수하려는 분위기도 읽힌다. 섣부른 기준금리 인상이 우리경제의 뇌관으로 남아 있는 가계부채 문제를 심화시키고, 아직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 하고 있는 국내경제를 더욱 냉각시킬 수 있다는 게 걸림돌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7월 금통위 회의를 앞두고 한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통화정책 회의가 같은 달 열릴 연준의 FOMC 회의(현지시간 26~27일)보다 앞선 14일 열린다는 점이 그 이유다. 한은으로서는 선제적 대응이라는 보다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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