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성장률 제로 수준, 인플레이션 3% 언저리, 연준 기준금리는 4% 이상으로.’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이선 해리스 이코노미스트가 낸 미국 경제 관련 보고서 내용의 일부다. 연방준비제도(연준)가 판단 착오로 뒤늦은 대응에 나섰음을 비판하면서 예상한 미국의 경제상황을 한 마디로 요약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날 JP모건의 마이클 페롤리 이코노미스트도 미국의 경제 상황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제시했다. 그는 자사의 모델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미국 경제가 향후 2년 또는 3년 동안 침체에 빠질 확률이 각각 63%와 81%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미 정책 당국의 판단 착오에 대한 비판은 진작부터 조금씩 제기돼왔다. 연준 이사회 의장 출신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그 점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옐런 장관은 이달 초 있었던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년간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과소평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자 “내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불과 수일 전이던 지난 5월 하원 청문회에 출석했던 당시에는 “인플레이션은 구조적인 게 아니고 일시적인 것”이라며 연말이면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는 취지를 밝혔었다. 연준이 오랜 동안 유지해왔던 인플레 관련 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발언이었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사진 = EPA/연합뉴스]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사진 = EPA/연합뉴스]

옐런의 충격 발언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전망을 공유했을 가능성이 높은 연준 또한 오판에 의해 뒤늦은 대응에 나섰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실제로 연준은 이달 15일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75%포인트나 올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연준은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다음 번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0~0.7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만큼 미국내 인플레의 기세가 강하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연준은 미국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도 수정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 2.8%와 내년 전망치 2.2%를 나란히 1.7%로 내려잡은 것이다.

연준의 초강수는 미국의 경기 침체에 대한 자본시장의 우려를 키우는 쪽으로 작용했다. 그 같은 우려는 지난 주말을 앞두고 나온 연준의 통화정책 보고서를 통해 한 번 더 증폭됐다. 보고서에 “물가 안정 회복을 위해 조건 없는 노력을 펼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더욱 커진 미국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감은 물가 정점론과 주가지수의 기술적 반등에 대한 기대를 일거에 소멸시키며 증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 결과 뉴욕증시는 지난 한 주 동안 큰 폭의 하락장을 연출했다. 올해 1월 고점 대비로 치면 지난 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24%,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9% 이상 각각 내려앉았다.

국내 증시에서는 코스피지수가 지난 한 주 동안 5.97% 하락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2600선을 넘보던 지수는 2400선을 지키는 것도 불안하게 여겨질 만큼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투자자들은 지금도 연준의 입장이 또 어떻게 바뀔지에 주목하고 있다. 당장 관심을 끌 이벤트는 오는 22, 23일 차례로 행해질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미 상·하원 출석이다. 파월 의장의 의회 증언이 지난 주 통화정책 회의 직후의 발언과 달라질지 여부가 구체적 관심사다.

파월 의장은 지난 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소비와 노동시장 상황이 여전히 나쁘지 않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연준 성명도 “일자리 증가세가 견고하다”며 고용 상황에 대한 낙관론을 펼쳤다. 물가를 잡기 위해 초강수 금리정책을 이어갈 것이란 신호로 읽힐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지난주 연준은 점도표를 통해 오는 연말에 기준금리 중간값이 3.4%에 이를 것이란 전망을 제시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시장 전문가들은 연말 미국의 기준금리가 그 이상으로 올라갈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그런 전망들은 또 미국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있다.

이번 주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이벤트는 23일 발표되는 연준의 은행권 재무건전성 평가 결과다.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취합되는 이 평가에는 경기 침체 상황에서도 미 금융시장이 흔들림 없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 여부가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20일 코스피는 전장보다 8.96포인트(0.37%) 오른 2449.89로 개장해 일순 기대를 품게 했으나 곧바로 하락 흐름으로 전환됐다. 그런 흐름은 끝까지 이어졌고, 결국 이날 종가는 전장 대비 49.90포인트(2.04%)나 내려간 2391.03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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