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고용노동 정책 당국의 발표 내용을 부정하는 듯한 반응을 보여 국민들은 혼란스럽게 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대한 정부의 방침을 발표했는데, 대통령이 하루 뒤인 24일 그 내용을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정책 당국의 책임자가 발표한 내용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고용부 장관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을 패싱한 채 정부 정책을 확정한 뒤 발표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사건이었다.

대통령의 ‘불쑥 발언’에 고용부로서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정부 정책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의중을 묵살한 채 장관이 주제넘은 행동을 한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발표 내용을 미리 대통령실에 보고했다고 해명하기도 어려웠을 듯 싶다. 그럴 경우 본의 아니게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을 것이다.

고용부의 당혹감은 장관이 신중치 못한 사람으로 몰릴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 해명을 자제하고 있는데서 잘 드러난다. 고용부는 다만 부처 출입기자들의 개별 취재에 응하는 형식으로 전날 발표 내용을 대통령실과 공유했다고 밝힘으로써 혼란을 진화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고용부는 또 전날 장관이 최종 확정된 정책이 아니라 정책추진 방향을 발표했을 뿐이라는 취지를 밝히며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틀리지 않았음을 강조하려 했다. 노동시장 개혁의 최종안은 미리 밝힌 대로 ‘미래 노동시장연구회’를 구성해 향후 4개월 간 입법과제와 정책과제를 연구한 뒤 마련토록 하겠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내놓은 해명이었다. 노동시장 개혁의 최종안은 추후 확정해 따로 발표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고용부의 발표는 일찍부터 예고된 것이었고, 그 내용 또한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과도 공유된 것이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4일 오전 국회에서 문제의 고용부 발표 내용을 두고 당과 미리 교감이 있었는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보고를 받은 건 있다”고 말했다.

사건의 전개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자면, 이번 일은 하나의 해프닝이라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불쑥 발언’이 엉뚱한 소동을 일으켰다고 보는 게 타당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언은 윤 대통령의 24일 오전 출근길에서 나왔다. 출근길에 길목을 지키던 기자들이 전날 고용부 장관이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과 관련한 질문을 던진 게 엉뚱한 사달을 낳았다. 발표된 주 52시간제 개편안에 대해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며 그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윤 대통령은 “아직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발표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노동부가 발표한 게 아니고, 부총리가 노동부에 민간연구회라든가 그런 분들의 조언을 받아 노동시간 유연성 (제고) 등에 대해 검토해보라 얘기한 상황”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나아가 보고받지 못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는 말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발언에는 아직 확정된 안이 없으니 미리부터 반발할 일은 아니라는 의도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이 갖는 무게감 탓에 이 발언은 큰 파장을 낳았다. 어쨌거나 고용부 장관이 브리핑을 통해 공식 발표한 내용이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는 듯한 상황이 연출된 게 원인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문제는 표현의 기술이었다. 따지고 보면, 고용부 장관 발표 내용은 확정된 새 정부의 고용정책이 아니었다. 장관 발표와 함께 배포된 보도자료의 제목도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이었다. 그 중 일부가 주52시간제 개편이었고, 그 내용은 현재 주 단위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 시간을 4주 단위 48시간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이었다.

브리핑 내용 중에는 합리적이고 균형 있는 정책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다음 달 중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를 꾸리겠다는 것과 이 기구를 4개월 간 운용하며 정책과제를 완성하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처럼 내용을 면밀히 따져 보면, 아직 공식입장이 발표된 게 아니라는 대통령의 발언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정제되지 않은 표현 탓에 추진 방향 자체가 부정되는 듯 받아들여지면서 혼선이 인 것이 문제였다. 사달의 단초가 대통령의 발언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의미다.

대통령의 발언은 그 무게로 인해 국가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곤 한다. 따라서 국가 지도자라면 때와 장소는 물론이거니와 표현 방식을 좌우하는 어휘 선택이나 토씨 운용에도 남달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장삼이사들의 일상사에서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경구가 통용될 만큼 모든 말에는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그 말이 대통령의 것이라면 구태여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국기문란”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옴으로써 그 말의 의미가 보다 깊어지고 파급력이 커졌던 일과 함께 이번 해프닝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자극할 값진 실패사례가 되길 기대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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