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상속세 부과시 유산취득세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다시 불거져나왔다. 28일 은행회관에서 정부 출연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주재로 열린 ‘상속·증여세제 개편방안 공청회’를 통해서였다.

유산취득세제 도입 필요성은 2020년 10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망을 계기로 우리사회 일각에서 이미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삼성가(家)에 부과될 상속세가 12조원 이상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됐다. 특히 재계 등을 중심으로 기업가 유족들에게 부과되는 상속세 부담이 과도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결과 가업승계가 어렵다는 것이 재계의 주장이었다.

상속 또는 증여시 세금을 물리는 방식은 유산세제와 유산취득세제 두 가지로 나뉜다. 이중 유산세제는 재산을 상속 또는 증여하는 사람의 이전될 재산 총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전될 재산 총액에 세금을 부과하다 보니 자연스레 누진세제 하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세율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이 회장 사망 이후 삼성가에 10조 이상 천문학적 규모의 상속세가 부과된 배경이 되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유산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거론되는 것이 유산취득세제다. 이 제도는 상속 또는 증여를 통해 이전될 재산의 총액이 아니라 각자에게 나누어주는 몫에 대해 일일이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취한다. 분산된 액수에 세금을 부과하다 보니 자연스레 다단계 구간별로 세율이 달라지는 과세체계 하에서 낮은 세율이 적용되기 마련이다. 그 결과 납세자 입장에서는 유산세제를 적용할 때보다 크게 낮아진 세금을 부담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증여세의 경우 유산취득세제를, 상속세에 대해서는 유산세제를 적용하고 있다. 즉 어떤 사람이 10억원을 2명의 자녀에게 5억씩 증여할 경우 과세 당국은 피증여자 자녀 각각에게 5억원에 대한 세금을 부과한다. 이 때 적용되는 최고세율은 20%다. 1억원에 대해서는 10%, 나머지 4억원에 대해서는 20%의 세율이 적용되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 유산세제를 적용한다면 최고세율은 30%로 올라가게 된다. 물론 이는 그야말로 가정일 뿐이다. 현행법상 증여세에는 유산세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속세의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삼성가의 예에서 보았듯이 상속세엔 유산세 방식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상속 또는 증여하는 금액이 30억을 초과할 때 적용되는 최고 세율은 50%다. 다만, 삼성가의 경우 여기에 이른 바 재벌 할증분까지 추가되는 바람에 최고세율이 60% 수준까지 올라갔다.

경영계가 우리의 상속세제에 불만을 토로하는 배경엔 이처럼 무거운 상속 및 증여 관련 과세체계가 자리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 자료에 의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속세에 대해 유산세제를 적용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영국·덴마크 네 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유산취득세제를 적용하고 있다.

상속 및 증여세 제도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찬반 양론이 맞부딪혀왔다. 내는 쪽에선 과도하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고, 특히 재벌가의 경우 가업승계가 어려워져 결과적으로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특히 유산세제 적용은 상속세 납세자 각자에게 불합리하게 과도한 부담을 지워준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날 공청회에서도 유산세제에 대한 불합리성을 지적하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됐다. 김완일 가나 세무법인 대표는 “부동산 및 금융 관련 실명제가 시행돼 과세환경이 조성됐고, 다양한 통제 기능이 마련돼 있는 만큼 유산취득세를 도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엔 상속인 각자에게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이 과세행정상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젠 실명제 등이 정착돼 있으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승문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중과세 논란을 완화하고 부의 분산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상속세제를 유산취득세제 방식으로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증여세와 함께 상속세가 장기간 이중과세 논란에 휩싸여 있음을 상기시키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이중과세 주장은 이미 소득세 또는 상속세 등을 내고 취득한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상속 또는 증여시 또 한 번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유산취득세제로의 개편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반론의 요지는 △피상속인(재산을 물려주는 사람) 중 과세 대상이 극소수이고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 맞지 않으며 △상속세나 증여세 부담 완화가 다른 세금 인상을 유도한다는 점 등이다. 공청회에서는 “총 상속재산 가액 대비 결정세액으로 산출한 상속세 실효세율은 2020년 기준 8.6%에 그쳤다”면서 “전체 피상속인 중 과세 대상은 1만명 정도에 불과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새 정부는 유산취득세제 도입 필요성에 공감을 표하고 있다. 다만, 도입 시점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재면 기획재정부 재산세제과장은 “국제적 사례나 과세 인프라, 응능(능력에 맞는)부담 원칙 등을 고려할 때 유산취득세제로 전환하는 것은 필요한 방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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