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기대인플레이션율이 한 달 새 0.6%포인트나 상승하며 4%를 넘보기에 이르렀다. 2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율은 5월(3.3%)보다 높은 3.9%를 기록했다. 이 조사는 이달 13∼20일, 전국의 25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수준 자체도 문제이지만 더 우려되는 점은 기대인플레율 상승폭이다. 한 달 사이에 기대인플레율이 이처럼 크게 오르기는 2008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기대인플레율의 급등은 향후의 물가상승률 추이가 우상향으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기대인플레율 자체도 우려스럽다. 6월 기대인플레율 조사치는 2012년 4월(3.9%) 이후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기록이다.

기대인플레이션은 향후 1년 동안에 대한 소비자들의 물가상승 전망이다. 즉, 6월 기대인플레율이 3.9%라 함은 소비자들이 향후 1년 동안 물가가 이 정도 더 올라갈 것이라 전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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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진 한국은행 통계조사팀장은 지금의 물가 흐름이 기대인플레율을 높이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구체적 원인으로는 국제 곡물가 상승과 공급망 차질 등 해외 요인, 국내 생활물가와 체감물가의 가파른 상승세 등을 지목했다. 황 팀장은 또 미국의 기대인플레율 상승 속도가 이전보다 빨라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소비자들이 인플레이션과 미국 중앙은행의 ‘빅 스텝’ 등과 관련된 뉴스를 전보다 많이 접한 것도 인플레 기대를 자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 24일 미시간대가 발표한 미국의 기대인플레율은 5.3%였다.

기대인플레율이 높아지면 경제주체들은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올리려는 경향을 보인다. 임금 인상에 대한 요구도 거세지기 쉽다. 동시에 소비자들이 상품이나 서비스 구입을 서두르는 분위기가 나타날 수도 있다. 디플레이션 기조 하에서 소비자들이 상품 및 서비스 구입 시점을 최대한 미루려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소비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기대인플레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심리지수(CCSI) 동향 등도 그 같은 요소 중 하나다. 이번 한은 조사에서 나타난 6월 CCSI는 96.4로 5월(102.6)보다 낮아졌다. 이 지수가 100 아래로 내려가기는 2021년 2월(97.2) 이후 처음이다. 이 지수가 100 미만이면 소비심리가 비관적임을 의미한다. 여기엔 경기 둔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대인플레율이 높은 상황에서 경제주체들이 보이는 제반 행동들은 또 한 번 물가를 자극하는 결과를 낳기 십상이다. 그렇게 해서 올라간 물가는 다시 되돌아 내려가지 않고 그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올라가려는 속성을 지닌다. 고물가가 임금인상 압력을 높이고 그 압력이 또 고물가를 유발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행을 포함해 물가관리 당국이 가장 우려하는 바가 이 같은 시나리오의 현실화다. 기대인플레율은 그런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을 가늠케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물가 심리를 관리하는데 큰 비중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물가관리 목표를 설정해두고 그 선을 벗어나려는 기미가 나타나면 금리정책 수단을 동원해 선제적 대응을 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기대인플레이션율이 급등하는 흐름이 보이자 한은 및 정부 관계자들은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으면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기대인플레가 불안해질 경우 물가가 임금을 자극하고 이는 다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등 임금-물가 간 상호작용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덕수 총리도 현 상황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한 총리는 28일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앞선 이 총재의 발언과 비슷한 내용의 우려를 표명했다. 한 총리는 “물가가 오르면 인플레 기대치가 가산되고, 임금 인상 요구도 강해진다”며 “그로 인해 다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악순환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최근 방송에 출연해 오는 6~8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소비자물가 상승 행진이 당분간 더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지난 달 상승률 5.4%를 상회하는 수준까지 물가 상승률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정부 안에서 공유돼 있음을 말해준다.

한편 지난 1년 동안 소비자들이 체감한 물가 상승률을 의미하는 ‘물가인식’ 또한 한 달 만에 0.6%포인트 상승해 4.0%에 달했다.

물가 집계와는 무관하지만, 주택가격이 향후 1년 동안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는 소비자의 비중은 크게 감소했다. 6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전달보다 13포인트 하락해 98에 머물렀다. 은행 금리의 상승 추세 속에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져가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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