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춘추’ 임수편에 나온다는 공자와 관련된 일화 한토막.

공자가 곤궁에 처해 수일째 곡식 한 톨도 먹지 못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제자 안연(본명 안회)이 어찌어찌 쌀을 구해와 밥을 짓고 있었다. 이를 모르던 공자가 밥 냄새에 이끌려 방 밖을 내다보니 때마침 안연이 밥을 한 움큼 입에 넣고 있었다. 공자는 안연을 의심했다. 스승에 대한 공경심이 남다른 줄 알았던 그가 자신보다 먼저 음식에 입을 대는 것이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안연이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 공자는 시치미를 떼며 “밥이 깨끗하다면, 아버님께 먼저 제사를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제사 음식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는 예법을 안연이 익히 알고 있음을 이용해 그의 속마음을 떠보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안연은 “이 밥으로는 제사를 지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밥솥 뚜껑을 열다 이물질이 들어갔는데 더러운 밥을 스승에게 드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까워 그 부분을 자신이 먹었다며 한 말이었다.

공자는 훗날 공연히 안연을 의심했던 일을 후회하며 탄식하는 말을 다른 제자들에게 남겼다고 한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결과만 보고 내리는 판단이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를 일깨워주었던 셈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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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의 전말 공개 문제로 우리 사회가 시끌벅적해졌다. 공개·비공개로 갈라진 정치권의 의견 대립 탓이다.

갈등은 이전 정부가 전개 과정을 베일 속에 가려두고 결과만 공개한 채 사건의 성격을 일방적으로 규정지은 데서 비롯됐다. 실제로 지금 우리사회 구성원들은 사건의 결과만 보고 있을 뿐 어떤 맥락에서 그런 결과가 도출됐는지를 알지 못한다. 결과 중에서도 일부는 아직 미확인 상태로 남아 있다. ‘소각을 통한 시신 훼손’이 사실인지 여부 등이 그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건의 성격을 두고 서로 다른 정치·사회적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건의 골자는 2020년 9월 서해상의 소연평도 남쪽 수역에서 어업지도 선상 업무를 수행하던 해수부 공무원 한 명이 배를 이탈해 북한 수역으로 넘어갔고, 그곳에서 북한군에 의해 사살당했다는 것이다. 그해 9월 22일 밤 9시 40분경 발생한 피격 사건은 우리 대통령에게 상황 보고가 이뤄졌고, 우리 군이 인지하고 있는 가운데 발생했다. 그러나 사건 당시 우리 군은 어떠한 가시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물리적 대응은 물론 사살하지 말라는 대북 경고 메시지조차 없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 당시의 청와대도 북측에 아무런 구조 요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 대통령의 통신선 단절 운운이 그런 정황을 말해준다.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우리 정부와 군이 자국민 보호라는 헌법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다. 또 하나의 쟁점은 살해된 공무원이 북한 수역에 들어간 것이 월북 의도에 의한 것인지 여부다. 전자에 대해서는 ‘은폐’ 논란이, 후자 관련해서는 ‘월북 몰이’ 논란이 한창이다.

피해자 유족들은 사건 전개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취한 조치들을 낱낱이 공개하고, 어떤 근거로 월북이란 결론을 내렸는지 설명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유족의 요구에는 문재인 정부가 사건 당시의 부실한 대응을 ‘은폐’하면서 북한 정권의 만행을 최대한 합리화시키기 위해 ‘월북 몰이’를 했다는 의심이 깔려 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부의 헌법적 의무 이행 문제와 월북 논쟁은 별개로 다뤄질 수도 있는 사안들이다. 이중 월북 논쟁은 일견 무의미하다고 할 수도 있다. 적어도 북한의 만행을 규탄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그렇다. 월북 여부가 잔혹함의 정도를 형량하는 변수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니 북한의 입장을 이해시키려는 의도를 지닌 ‘월북 몰이’가 사실이었다면 당시 정부가 꽤나 어리석고 한심한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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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모든 국민, 좁게는 피해자와 유족 측 인권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월북 몰이’는 국가 기관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천인공노할 짓이다. 진보 이념을 앞세우는 세력이라면 더더욱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피해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권 차원에서 볼 때 월북인지 아닌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월북 판정은 우리 사회의 통념상 피해 공무원과 유족들에겐 치명적인 주홍글씨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섣불리 결론내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국가가 반드시 진상을 규명한 뒤 월북이 아니라면 그 사실을 공지해야 한다. 고인과 유족들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은 당연히 수반돼야 할 수순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에 붙잡혀 있다는 보고를 받은 시점부터 피격 때까지 약 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가 그중 첫 번째이다. 군 등에 모종의 조치를 지시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국방부가 “북한이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했다가 사흘 만에 “시신 소각으로 추정된다”라고 말을 바꾼 과정도 궁금증을 키우고 있다. 따라서 북한군이 피살 공무원의 시신을 부유물 위에서 정말 불로 훼손했는지, 아니면 그들 주장대로 시신이 사라진 채 혈흔만 남은 부유물을 소각 처리한 것인지도 필히 확인해야 한다. 당시 우리 정부가 북측 주장이 맞다고 믿었다면 왜 적극적인 시신 수색에 나서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따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해양경찰이 공무원 피격사건 첫 수사발표에서 “자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가 닷새 후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바꿔 발표한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국민의힘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는 합동참모본부가 사건 당일엔 ‘월북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가 이틀 뒤 월북으로 판단된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된 궁금증도 해소돼야 한다.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국민들이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사건 전말을 공개하면 그만이다. 방법은 사건 관련 자료들을 공개하는 것뿐이다. 관련 부처의 보관 자료는 물론 대통령 기록물도 예외일 수 없다. 이를 외면한 채 이전 정부나 현 정부가 구구하게 해석을 가한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진실을 덮으려 하면 할수록 의구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당당하다면 민주당이 공개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게 일반의 생각이기도 하다.

국가 안보상 민감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어 공개가 어렵다는 것은 군색한 변명이다. 대통령과 우리 군은 생명이 경각에 달린 우리 국민을 구조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였는지, 청와대와 군 등 기관 간에 어떤 메시지 교환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일반현황을 공개하는데 무슨 보안사항이 포함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만약 인적 정보자원의 신원이나 특수정보(SI) 취득 방법 및 경로 등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면 그 부분은 공개 대상에서 배제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배제된 내용은 국회 정보위원회나 국방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로 하여금 공동으로 확인토록 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국회에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드는 것도 검토할만한 일이다. 문제의 공무원 피격은 국회 국정조사를 하고도 남을 만큼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TF 조사 내용을 보고 있자면, 사건 당시 문재인 정부가 취한 일련의 행동들은 사건의 의미와 북한의 잔혹성을 최대한 축소 또는 희석시키려는 쪽으로 수렴돼 있었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기본 방향과 목표가 김정은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는데 있었던 것으로 의심할 만하다는 얘기다. 당시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이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는 북측 통지문 내용을 애써 강조한 점도 문재인 정부 내부의 그런 기류를 대변해준 것으로 판단된다. 그게 아니라면, 또 의사 결정 과정이 합법적이었다면 민주당은 김정은 ‘심기 경호’에 대한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관련 정보 공개에 협조해야 한다.

피살 공무원 유족이나 국민들의 요구는 무리하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결과가 발생하기까지의 경과를 알고 싶다는 것뿐이다. 과정이 은폐돼 맥락이 끊긴 가운데 나타난 결과는 생뚱맞게 느껴지기 십상이다. 이번 일처럼 역사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에 대한 해석을 그릇되게 할 위험성이 커진다. 공자 같은 성인도 그런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진대 시속에 쓸려 사는 우리네 보통사람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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