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출기업에 대한 무역금융 제공 규모를 40조원 늘리기로 했다. 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주요국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만큼 하반기 수출이 부진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온데 따른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올해 상반기 수출실적이 반기 기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면서도 “세부 내역과 향후 여건을 들여다보면 하반기 수출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며 수출업체 지원 배경을 설명했다. 추 부총리는 “글로벌 긴축 가속화로 미국 등 주요국들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고, 세계 교역량도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며 “주력품목의 수출 성장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출기업들이 해외에 물건을 넘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춘 대책들을 내놨다. 추 부총리는 “중소·중견 수출기업 등에 대한 무역금융을 당초 계획한 261조3000억원에서 301조3000억원으로 늘려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증가율은 15.3%다. 정부는 올 들어 5월까지 130조원 규모의 무역금융을 제공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수입업체에 대한 금융지원도 강화한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기업들의 수입선 다변화를 지원하기 위해 수입보험도 1조3000억원 규모로 공급하고 수입환변동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국제 해상운임이 안정될 때까지 월 4척 이상의 임시선박을 지속 투입하는 등 공장을 가동해도 물류차질로 물건을 제때 해외로 보내지 못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가 대규모 수출기업 지원대책을 내놓은 것은 올 들어 6월까지 역대 최대 규모인 103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한 탓이다. 산업부와 관세청이 내놓은 ‘6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6% 증가한 3503억 달러, 수입은 26.2% 늘어난 3606억 달러로 집계됐다. 수출은 선방했지만 수입이 더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상반기 무역적자가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56년 이후 최대 규모의 적자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 상반기 91억6000만 달러 적자,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상반기 64억 달러 적자보다 규모가 더 크다.

올 들어 무역수지는 1월 47억4000만 달러 적자를 낸 뒤 2월, 3월에 흑자로 돌아섰지만 이후 4월과 5월, 6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적자가 3개월 이상 이어진 것은 2008년 4개월 연속(6~9월) 적자 이후 13년 만이다. 특히 올 5월까지 10~20%대 증가세를 보인 수출이 지난달 5%대 증가로 크게 둔화되면서 수출마저 꺾이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나온다.

올 상반기 무역적자 확대는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뛰면서 수입액이 급증한 탓이다. 지난해부터 상승하던 국제유가는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급등하며 3월 한때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았다. 올 상반기 평균 국제유가(두바이유)는 배럴당 101.8달러로 지난해 63.5달러보다 60% 올랐다. 액화천연가스(LNG)도 열량단위(Mmbtu)당 9.5달러에서 31.2달러로 229% 급등했다. 석탄(호주탄) 가격은 t당 91.8달러에서 319.1달러로 223% 올랐다.

이에 따라 상반기 주요 에너지원 수입액은 879억 달러(원유 499억 달러, 가스 241억 달러, 석탄 139억 달러)로 1년 전(468억 6000만 달러)보다 410억 달러(87.5%) 급증했다. 에너지원 수입액이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4.4%로 증가했다. 에너지원 수입액 증가분(410억 달러)이 무역수지 하락분(276억 달러)을 훌쩍 뛰어넘었다.

부산항에 야적돼 있는 컨테이너들. [사진 = 연합뉴스]
부산항에 야적돼 있는 컨테이너들. [사진 = 연합뉴스]

나라별로는 대중국 무역수지가 지난 5월 월간 기준으로 1994년 8월 이후 28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6월에도 12억2000만 달러 적자가 났다. 일본과의 무역이 적자일 때가 많은 상황에서 줄곧 흑자였던 대중무역마저 적자 구조로 고착화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올 상반기 수출액 3503억 달러(전년 동기 대비 15.6% 증가)는 반기 기준으론 역대 1위다. 지난해 하반기에 세운 반기수출 최대치(3413억 달러)를 경신했다. 6월 수출도 조업일수가 전년보다 2일 감소하고 화물연대 파업 영향이 있었는 데도 전년보다 5.4% 늘었다. 이 덕에 수출은 2020년 11월 이후 20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상반기 수출 품목별로 보면 반도체(690억2000만 달러)와 석유제품(303억8000만 달러), 석유화학(300억9000만 달러), 철강(207억7000만 달러), 바이오헬스(92억5000만 달러), 2차전지(47억1000만 달러) 등 6개 분야가 역대 상반기 수출 1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수입은 전년보다 26.2% 급증한 3606억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원유와 LNG, 석탄 등 석유류 제품과 산업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수입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올 상반기 비철금속은 127억3000만 달러, 철강재는 138억 달러어치가 수입됐다. 전년보다 각각 29억5000만 달러, 31억6000만 달러 늘었다. 농산품 수입도 135억4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21억9000만 달러 증가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무역연구원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대외변수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무역이 상반기 전체적으로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가장 크게 우려되는 것은 수출이다. 수출은 지난 1월 15.5% 증가한 데 이어 2월 20.8%, 3월 18.8%, 4월 12.9%, 5월 21.3% 증가했다. 수출이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수출액은 5.4% 증가에 그쳤다. 더욱이 미국 등 주요국이 긴축에 나서면서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미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3.7%에서 2.9%로 낮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세계 성장률을 4.5%에서 3%로 하향 조정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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