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정기조가 5년 만에 확장재정에서 건전재정으로 바뀌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기간 400조원 이상 불어나며 1100조원에 근접한 국가채무를 방치할 경우 정상적인 국가운영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지난주 충북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2022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 건전재정 기조를 담은 새 정부의 재정운용 방향을 확정,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예산만 투입하면 저절로 경제가 성장하고 민생이 나아질 것이라는 재정만능주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우리 경제는 또다시 고물가와 고금리, 저성장의 복합위기를 맞고 있는 만큼 민생현안과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부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공부문 자산 매각, 공무원 정원·보수 억제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정부는 우선 내년부터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통제하기로 했다. 올해 관리재정수지 기준 GDP 대비 5.1%인 재정적자를 코로나19 발생 이전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 비율은 2019년만 해도 2.8%였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면서 2020년 5.8%로 급등한 뒤 줄곧 4~5%대에 머물고 있다. 사실 관리재정수지 적자 3%는 지키기 쉬운 기준이 아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부가 제시한 수치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목표”라며 “정부가 이 같은 재정준칙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지출 구조조정 노력과 예산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7년 기준 50%대 중반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국가채무 비율이 2017년 36.0%에서 올해 49.7%로 5년간 13.7%포인트 치솟은 것과 비교하면 증가폭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한 것은 최근 급격히 증가한 국가채무를 통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2017년 660조원에서 2022년 1068조원으로 5년 만에 408조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직전 5년간 국가채무 증가 규모(170조원)의 2.4배에 달한다. 엄격한 재정관리를 하지 않으면 급증하는 국가채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기본 시각이다.

결국 새 정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출 구조조정이 관건이다. 정부가 내년 역대 최고 수준의 지출 구조조정을 예고한 이유다. 통상 재량지출의 10% 수준인 10조원 안팎을 지출 구조조정 목표로 제시했으나 내년에는 이를 훨씬 뛰어넘는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재정준칙도 법제화하기로 했다. 재정준칙은 세계 90여개국이 운용중인 제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옛 터키)뿐이다. 독일은 재정운용 목표를 헌법에 규정하고, 재정적자를 GDP 대비 0.35% 이내로 유지해 신규부채 발생을 억제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법률로 재정준칙을 규정하고 있으며, 재정적자를 GDP의 0.5% 이내로 유지하도록 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재정준칙안을 마련했지만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아예 새로운 재정준칙을 만들기로 했다. 기존 정부안과 비교할 때 재정준칙 기준을 단순화하는 동시에 엄격하게 설계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안은 국가채무와 통합재정수지를 곱하는 등 복잡했지만, 새 재정준칙의 기준은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3% 이내로 유지하는 것으로 단순화했다. 보통 관리재정수지를 기준으로 하면 통합재정수지 때보다 GDP 대비 적자비율이 2%포인트가량 더 높아진다. 통합재정수지는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것이고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장성기금의 수지를 제외한 수치다.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넘어서면 수지한도는 더 축소된다. 기존 정부안에 따르면 국가채무 비율과 통합재정수지 비율 중 하나만 지켜도 됐지만, 이제 관리재정수지 비율을 무조건 관리해야 한다.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등 불가피한 상황에선 재정준칙 적용에 예외를 둘 수 있지만, 그 이듬해에 별도로 재정건전화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시행시점도 기존안(2025년)이 아니라 법률 개정 직후로 앞당긴다. 정부는 9월 재정준칙 확정안을 발표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정부는 재정지원도 효율화하기로 했다.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나눠먹기식 지원’을 시장 중심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일자리정책과 관련해서도 ‘세금 일자리’가 아니라 민간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재정지원을 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 사업과 중복되거나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한시 도입된 일자리사업은 폐지한다. 내국세의 20.79%가 의무 배정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수술대에 오른다. 정부는 교육재정교부금 중 일부를 따로 떼어내는 방식으로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를 신설해 지방대 육성, 반도체 등 미래 인재양성 등에 쓰기로 했다.

정부는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가재정 외 가용재원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컨벤션 시설과 홍보관, 유휴부지 등 불필요하다고 판단된 공공기관 자산을 매각하기로 했다. 정부는 불필요한 공공기관 자산을 매각해 확보한 재원을 공공기관 투자와 취약계층 지원 등에 활용키로 했다. 인프라 투자에 민간자본을 활용하는 민자사업 규모도 대폭 늘린다. 정부는 도로·철도 중심의 민자사업 대상시설을 교통·생활 인프라 확충으로 다양화하고 사업방식을 다변화하는 등 참여 유인을 높여 민간투자 규모를 연평균 5조원에서 7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국가재정·민자사업 연계를 강화하고 민자사업 대상을 사전에 확정하는 등 민자관리 체계를 혁신하기로 했다. 재원확충을 위해 유휴 국유재산 매각도 본격화한다. 정부는 폐 공공청사를 소상공인 상업시설로 대부하고 유휴 공공청사를 재개발해 청년 창업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미활용 국유재산을 활용해 주택을 신규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 재정은 위기 때마다 경제의 방파제 역할을 해왔는데 5년간 재정악화로 이제는 국가신인도의 잠재적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며 “공무원임금 등 공공부문을 긴축해 사회적 약자와 신성장 산업을 더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