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빅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올림)을 단행했다. 연이은 정례 통화정책 회의에서 세 번 연속 금리 인상이 이뤄진 것도 한국은행 역사상 처음 벌어진 일이다. 13일 한은이 개최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통해서였다.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이로써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기존의 1.75%에서 2.25%로 올라갔다.

한은의 선택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를 잠재우는 것은 현 정부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돼 버렸다. 더구나 물가 관리는 중앙은행의 제1 과제인 만큼 지금이야말로 한은이 ‘인플레 파이터’로서의 본성을 드러내야 할 때라 할 수 있다.

한은의 이번 결정엔 당장의 인플레 수준을 낮추겠다는 의지 이상의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 기대심리의 확산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국내 소비자물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6.0%나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의 6.8%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통상 반 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생산자물가 상승세도 심상치 않은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5월 생산자물가지수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9.7%를 마크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인플레 기대 심리가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소비자들이 향후 1년 동안의 물가흐름을 전망한 수치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5월 3.3%, 6월 3.9%로 우상향 곡선을 그려보였다. 인플레 기대 심리가 확산되면 경제주체들은 그에 맞춰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을 올리게 되고, 한 번 올라간 가격은 그대로 굳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또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강화시키고, 임금 인상은 다시 상품·서비스 생산비용을 높이며 물가를 자극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사상 초유의 ‘빅 스텝’은 이 같은 인플레 기대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취해진 고육책이라 할 수 있다. 기준금리가 급등하면 2000조원을 넘보는 가계부채 뇌관이 더욱 예민해질 수 있고, 거시적 측면에서 모든 경제주체들의 활동이 둔화돼 경기가 침체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지만 한은은 이번에 그 같은 우려를 무릅쓰고 빅 스텝을 밟았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미 간 금리역전, 환율 상승세 심화 등의 우려가 반영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 문제 또한 한은 입장에서는 발등의 불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한·미 간 금리역전은 한은으로서는 언제나 달가울 수 없는 현상이다. 금리역전이 심화되면 국내에 투자된 외국인들의 달러 자본이 더 높은 수익을 좇아 미국 등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자본 유출이 심할 경우 자본시장 전반이 불안한 상태에 처할 수도 있다.

이날 한은의 결정으로 우리와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일단 0.50~0.75%포인트로 더 크게 벌어졌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1.50~1.75%다. 하지만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오는 26~27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관측이 맞아떨어지면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0.25%포인트(상단 기준) 낮아지게 된다. 이른 바 금리역전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연준이 이달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00%포인트 인상할지 모른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금리역전 폭이 최대 0.50%포인트까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자본 유출 러시는 그러잖아도 고공비행 중인 원/달러 환율을 더욱 끌어올리는 작용을 하기 마련이다. 1300원 선 언저리까지 올라간 원/달러 환율은 이미 국내 물가를 상승시키는 주요인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고환율이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 직접적 이유다. 고환율은 무역적자를 심화시키는 부작용도 일으키고 있다.

한은의 이날 결정이 환율을 내리기보다 상승 흐름을 일정 부분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데 그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한은이 기대하는 바도 그와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LG경영연구원의 조영무 연구위원은 한은의 ‘빅 스텝’ 발표에 앞서 “지금의 환율에는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전망이 이미 반영돼 있는 것 같다”며 “기준금리 인상폭이 0.25%포인트에 그치면 환율은 더 올라가고 수입물가가 높아져 인플레 압력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었다.

한은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된 2020년 3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내렸고, 그해 5월엔 0.25%포인트 추가 인하를 단행하는 등 빠르게 금리를 인하했다. 이후 한은 기준금리는 장기간 0.50% 수준을 유지했다. 기준금리가 그 이상으로 처음 올라간 때는 2021년 8월이었다. 당시 한국은행 금통위는 1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금리 인상(0.25%포인트)을 실현했고, 이달까지의 10개월 남짓 동안 0.25%포인트씩 네 차례, 0.50%포인트 한 차례의 인상을 단행했다.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 인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앞으로도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뜻을 분명히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회의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흐름이 전망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금리를 당분간 0.25%포인트씩 인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그 이유로 당분간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리라는 점을 들었다.

지금의 금리 수준에 대해서는 여전히 완화적이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 이 총재는 “한두 번 더 금리를 올리더라도 긴축이라 보기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올 연말쯤이면 기준금리가 2.75~3.00%에 이를 수 있다는 시장의 전망에 대해 이 총재는 “지금 기대로는 합리적”이라고 답했다. 여러 변수가 작용할 가능성을 전제하긴 했지만 현재 상황만으로 판단할 때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최대 세 차례 올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볼 수 있다. 한은 금통위 회의는 올해 연말까지 세 차례(8, 10, 11월) 더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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