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의 필요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이 단어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의 방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뚜렷이 인식할 수 있었다.

20일까지 이틀 일정으로 한국은 찾은 옐런 장관은 19일 오전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LG사이언스파크를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대담했다. 방한 첫날부터 부리나케 LG화학 고위 임원을 찾아가 만난 것부터가 이례적이었다.

주지하다시피 LG화학은 배터리 산업계에서 중국 기업을 제외하면 세계 1위를 달리는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의 모기업이다. LG엔솔은 2020년 말 LG화학이 배터리 사업 부문을 따로 떼어내 설립한 기업이다. 올해 초 코스피에 상장될 당시 단숨에 시총 2위를 기록해 화제를 뿌렸다. 이날 신 부회장이 밝혔듯이 LG엔솔은 수주 잔고만 해도 300조원이 넘는 글로벌 배터리 공급사로서 세계 최고의 종합전지 소재 회사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는 곳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오른쪽)이 19일 서울 LG사이언스파크에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으로부터 배터리 소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오른쪽)이 19일 서울 LG사이언스파크에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으로부터 배터리 소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옐런 장관은 신 부회장과 만남을 가진 뒤 공개발언을 통해 한국과의 ‘프렌드쇼어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러분의 혁신 노력은 한국경제의 활력을 의미한다”, “여러분의 창의력과 기초과학을 향한 의지가 한국의 생산적 경제를 달성하는 원동력”이라는 등의 립서비스를 펼쳤다. 이어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가 늘고 있음을 상기시킨 뒤 양국 관계가 돈독해질수록 세계경제가 더욱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제에 있어서의 국제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차질에 의해 물가가 오르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며 동맹 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때 그가 사용한 용어가 ‘프렌드쇼어링’이었다. 옐런 장관은 공급망 회복에 집중할 것을 주문하면서 “파트너와 동맹국 사이에 ‘프렌드쇼어링’을 도입하고 보다 굳건한 경제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프렌드쇼어링’의 의미에 대해 “관계를 강화하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뒤 “그것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가정을 고물가로부터 보호하고, 지정학적·경제학적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와 함께 “공급망 강화를 위해 주요 우방과 경제협력을 굳건히 해야 하고, 여기엔 한국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옐런 장관은 공급망 문제와 관련해 중국을 노골적으로 견제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독재 정치를 하는 국가들이 자원을 무기화함으로써 세계경제에 압력을 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였다. 그러면서 또 한 번 공급망 확보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의 경우 특정 재료와 물질의 제조에 있어서 지배적 힘을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공급망에서 특정 세력과 국가에 지배적 권한이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한·미 두 나라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고자 하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왼쪽)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사진 = 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왼쪽)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사진 = 연합뉴스]

이에 신학철 부회장은 “전기차 시장의 미래가 불투명할 때 LG화학이 도전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곳이 북미대륙이었다”고 치사한 뒤 “옐런 장관의 방문으로 미국과의 더 특별한 역사가 시작됐다” 화답했다.

이날 옐런 장관이 강조한 ‘프렌드쇼어링’은 최근 빈번히 거론돼온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그는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외신과 인터뷰하면서 이 단어를 입에 올렸다. 희토류와 태양광 패널 같은 산업용 소재 및 부품을 중국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한국 등 믿을만한 동맹과 공급망을 구축하는 작업, 즉 ‘프렌드쇼어링’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프렌드쇼어링은’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밝힌 인도·태평양 경제협력체 구상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옐런 장관의 방한도 그 연장선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옐런 장관의 이번 방한이 미국 측 요구로 성사됐다는 점도 한국과의 공급망 공동구축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한·미 양국의 ‘프렌드쇼어링’은 미래산업의 선두주자인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를 촉진하는 고리가 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미국은 특히 한국이 이차전지와 반도체 분야에서 선두권 기업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렌드쇼어링’은 얼마 전 국내에서도 ‘깐부쇼어링’이란 표현으로 언론에 소개된 바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해 11월 ‘오징어게임으로 풀어본 2022 통상전망’ 보고서를 통해 ‘깐부쇼어링’을 공급망 안정을 위한 편가르기로 풀이하면서 미국이 자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 예상했다. 당시 협회는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인도·태평양 경제협력 체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공급망을 동맹국 위주로 재편하는 ‘Friendshoring(깐부쇼어링)’을 포함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었다.

미·중 갈등 심화와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세계적 공급망 차질이 일상화·장기화되면서 ‘프렌드쇼어링’에 대한 필요성은 한층 더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깐부쇼어링’ 강화가 세계경제의 블록별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편가르기로 인해 결국은 모든 국가가 소재 부품이나 원부자재 등을 공급받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는 게 우려의 주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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