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예상했던 대로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 상황이 재연됐다. 처음은 아니지만 우리가 2020년 2월 이후로는 겪지 않았던 일이다. 이에 시장은 다시 긴장모드에 들어갔다. 금리역전을 가장 크게 신경 쓸 곳은 한국은행이다. 당장이야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지만 두 나라 간 금리역전은 마냥 방치할 수 없는 불편한 상황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우리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은 것을 의미하는 한·미 간 금리역전은 이제 막 시작된 데다 아직은 그 폭도 크지 않다는 점에서 발등의 불이라 할 수는 없다. 다만 금리역전이 장기화하거나 그 폭이 더 벌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은행으로서는 경기침체를 우려하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들지 않을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번 금리역전은 2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치면서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함으로써 초래됐다. 이날 결정으로 미국의 기준금리는 2.25~2.50%로 올라갔다. 한국은행 기준금리(2.25%)보다 상단 기준으로 0.25%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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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일상적 상황이라 할 수 없다. 신흥국의 경우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야 금융시장이 무리 없이 작동된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더 높을 경우 신흥국의 외화 자본이 보다 안정적이면서 더 많은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미국으로 대거 유입되기 쉽다는 점이 그 같은 인식의 기반이다.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본의 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금리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금리보다 경제의 펀더멘털이 중요하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리역전 현상이 장기간 이어지거나 그 폭이 커진다면 자본유출 러시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한·미 간 금리역전이 초래할 문제는 여럿이다. 금리역전을 논하기 이전에 미국이 이번처럼 통상적이지 않은 수준으로 금리를 올리면 미국경제 성장이 그만큼 더뎌지게 된다. 경기침체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기준금리 상승은 일정 정도 경기를 둔화시키는 작용을 하기 마련이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우리의 경우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민간소비는 0.15%까지 감소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미국이라 해서 이 같은 이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더구나 미국경제는 자국민들의 소비에 대한 의존도가 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은 아니라지만 연준의 거듭된 ‘자이언트 스텝’으로 미국경제가 하강국면에 진입하면 한국의 수출도 타격을 입게 돼 있다. 그러잖아도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수출 부문에서 고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올해 2분기 성장률(전기 대비, 속보치)은 0.7%였다. 성장을 주도한 것은 민간소비였다. 민간소비의 성장 기여도는 1.4%나 됐다. 수출 등 다른 부문에서 발생한 마이너스 요인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민간소비가 성장을 이끈 주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FOMC 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금 미국경제는 침체 국면에 있지 않다고 밝혔다. 주장의 근거는 견실한 미국 내 고용의 흐름이었다. 연준은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소비와 생산지표가 둔화된 모습을 보였지만 노동시장이 견고하고 실업률은 낮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연준이 이번에 두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취한 배경엔 경기 연착륙에 대한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대폭 금리를 올려도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은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란 의미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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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의 금리 인상 결정 직후 뉴욕증시가 폭등 장세를 보인 것은 연준의 인식에 시장이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파월 의장이 회견에서 금리의 추가 인상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속도 조절론을 함께 거론한 점도 증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미국경제에 대한 외부 기관의 전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달 들어 미국경제 성장률에 대한 전망을 수정하면서 그 수치로 2.3%를 제시했다. 3개월 전보다 전망치를 1.4%포인트나 낮췄다. 전망의 재조정 이유는 미국의 1분기 성장률 확정치가 잠정치보다 내려갔다는 점, 미국의 5월 개인소비지출이 감소한 점 등이었다. IMF는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4월보다 0.4%포인트 낮춘 3.2%로 다시 제시했다.

원/달러 환율이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금리역전의 장기화·심화는 미국이 우리보다 긴축 강도를 장기적으로 더 높게 이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달러화 가치를 높이고, 원화의 상대적 가치를 낮추는 작용을 하게 된다. 여기서 비롯되는 원/달러 환율의 과도한 상승은 우리나라의 수입물가를 높이고 결국 국내 소비자물가를 추가로 자극하기 십상이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기업들의 투자와 국내 소비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무리하게 금리를 올렸다간 경기침체라는 달갑잖은 상황을 맞이할 지도 모른다. 더구나 지금처럼 외부 요인에 의해 고물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물가는 잡지 못한 채 경기만 침체시킴으로써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도 있다.

한·미 간 금리역전은 당분간 이어지면서 그 폭을 키워갈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이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고, 양적완화도 지속할 뜻을 이번에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이날 회견에서 차기 통화정책 회의에서도 ‘자이언트 스텝’이 결정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필요하다면 오늘보다 더 큰 금리 인상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연준이 다음 FOMC 회의에서 다시 한 번 자이언트 스텝을 취하고 이후 두 차례 회의에서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린다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말에 3.50~3.75%로 치솟는다. 연준은 올해 중 세 차례(9, 11, 12월) 더 FOMC 회의를 개최한다. 한국은행 역시 8월 회의를 포함, 연내 세 차례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를 남겨두고 있다.

한국은행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결정된 28일 오전 이승헌 부총재 주재로 시장점검 회의를 열었다. 한은은 일단 미국의 금리인상 결정이 국제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다소 제한적’이라는 입장을 정리했다. 연준의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이 시장의 예상과 대체로 맞아떨어졌다는 것이 그 같은 판단의 주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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