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살림이 적자로 일관하고 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는 적자폭이 너무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여파로 국가채무 또한 가속도를 붙여가며 증가일로를 달리고 있다.

지난 정권 5년 동안에는 그 속도가 특히 빨라져 누적된 국가채무가 대한민국의 신용도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 수립 이래로 문재인 정권 출범 시점까지만 해도 누적된 국가채무는 600조원대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후 국가채무는 빠르게 늘어 어느덧 1000조원 선마저 넘기게 됐다. 유한한 정권이 무한한 국가를 위해 장기계획 하에 운용해야 할 재정을 함부로 집행한 것이 원인이었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워낙 씀씀이가 헤펐던 탓에 지난 정권에서 임기 말까지 곳간지기 역할을 했던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조차 “곳간이 비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18일 기획재정부가 공개한 ‘재정동향’ 8월호에 따르면 적자살림은 올해 상반기에도 지속됐다. 반년 동안 쌓인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101조9000억원이나 됐다. 적자 규모는 작년 상반기보다 22조2000억원 증가했다. 올해 5월말과 비교하면 적자액이 30조7000억원 늘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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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정부는 2분기에 추경사업 지출 등이 집중되면서 총지출 진도율이 높아진 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한해에 걸쳐 실행될 지출이 앞당겨져 집행되는 바람에 단기간에 재정적자 규모가 커졌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연말까지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이 계획범위(110조8000억원)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같은 보장성 기금을 차감해 나온 결과물이다. 그런 만큼 실질적으로 당대 정권이 나라살림을 얼마나 알뜰하게 했는지를 나타내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총수입은 전년 동기보다 35조8000억원 늘어난 334조4000억원이었고 총지출은 1년 전보다 63조6000억원 증가한 409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수입이 적지 않게 늘었지만 지출이 그 이상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재정수지 적자폭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적자가 추가되면서 올해 6월 말 기준 국가채무는 1007조5000원으로 불어났다. 그나마 국고채 일부 상환으로 한 달 전에 비해서는 그 규모가 11조2000억원 줄어든 것이었다. 기재부는 올해 말이면 우리의 국가채무 규모가 1037조7000억원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다.

국가채무가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보다 빠르게 증가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급히 올라갔다. 전임 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40%를 밑돌던 국가채무는 현재 50%선을 넘보고 있다. 2019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게 ‘40% 기준의 근거가 뭐냐’고 따져 물은 ‘사건’ 이후 국가채무 비율이 천정 뚫린 듯 치솟은데 따른 결과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1회계연도 결산 총괄분석’에 의하면 우리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7.0%로 올라갔다. 1년 만에 3.2%포인트나 높아졌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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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변변한 재정준칙 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아직도 관련 논의만 벌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나름의 구상을 밝히고 있지만 아직은 확정된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재정준칙 마련을 위한 시도는 그간에도 여러 차례 이뤄졌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강력한 정책의지가 수반되지 않은 탓에 유야무야되는 일이 반복돼왔다. 재정준칙 마련을 위해 제시된 법률안 내용이 부실하다는 비판도 제기됐었다.

대표적인 예가 2020년 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했던 국가재정법 개정안이었다. 법안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60%선 유지를 골자로 하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재정건전화법안에 명기됐던 45% 기준이 크게 완화된 것이었다. 거기서 한술 더 떠 60%선을 언제든 넘어서는 것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유보조항도 곁들여져 있었다. 재해나 경기침체 등이 발생할 경우 기준선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국회 결의가 이뤄졌다 하더라도 사실상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한 시늉뿐인 법안이었다.

결국 바통은 윤석열 정부로 넘어오게 됐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재정준칙 마련에 적극성을 보이며 관련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당선될 경우 대통령에 취임한지 1년 이내에 ‘책임 있는’ 재정준칙을 마련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 공약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논의를 거쳐 지금의 윤석열 정부로 넘어오며 구체화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최근 한 학술회의에서 현 정부가 준비 중인 재정준칙의 대강을 밝힌 바 있다. 요지는 국가채무 비율을 60% 이내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선을 넘을 경우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을 마이너스 2%로 축소하겠다는 실행방안도 소개했다. 정부는 공청회 등을 거쳐 9월 초에 재정준칙 마련을 위한 정부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재정건전화법 제정이든 국가재정법 개정이든 이전처럼 시늉만 할 게 아니라 지켜야 할 기준을 명확히, 그리고 타이트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작은 정부 및 건전재정 추구 의지를 남달리 강조해왔다. 얼마 전엔 추경을 포함한 것이긴 하지만 올해 예산보다 줄어든 내년도 예산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로 인해 윤석열 정부가 준비 중인 재정준칙 내용에 특별히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일의 결과물만큼은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이 아니기를 각별히 기대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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