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 사이에서 강조되는 경구 중 하나가 ‘글을 무서워하라’는 것이다. 책임감을 갖고 글을 써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그들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 중엔 ‘일물일어(一物一語)’라는 것도 있다. 하나의 사물 또는 상황에 가장 적합한 단어는 하나밖에 없으니 글 쓰는 이는 그걸 골라내기 위해 고심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표현이다. 이 모두는 말에 비해 글이 보존성 면에서 우월하다는 점을 고려한 교훈이다.

하지만 이들 경구는 유명 정치인이나 공직자 등 명사들에게는 부족한 교훈일 수 있다. 그들의 경우엔 입을 통해 나오는 말도 곧바로 활자화되는 게 예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유형의 영상 및 활자 매체가 널려 있는 현실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보존성 면에서 보자면 영상 또한 활자에 결코 뒤진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위의 교훈들은 일반인들에겐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늘 주목 받는 유명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에게 있어서는 말의 무게 또한 글 못지않다고 할 수 있으니 ‘글을 무서워하라’는 교훈은 절반만 맞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의 말은 곧 역사가 되곤 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초가 되고, 나아가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기도 한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그래서 정치인 등의 말이나 글은 남달리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하는 이의 의도와 듣는 이의 메시지가 다르다면 심각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예를 들어 입법 활동을 하는 정치인이 법률 제정안이나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그 안에 곡해될 수 있는 조문을 넣는다면 사회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국회에 자구를 심사하는 상임위원회가 있다지만 법안 제출자와 심사위원이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가운데 법률안이 최종 관문을 통과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문제 발생 위험은 법 조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외교문서를 비롯한 각종 공문서, 상거래용 계약서 등을 작성할 때도 문서의 자구는 오해나 분석·해석의 여지를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작성돼야 한다. 이런 문서들의 생명은 정확성·명료성이다. 다소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문구를 사용할지라도 정확성·명료성을 기하는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최근 ‘검수원복’을 둘러싸고 논란의 불씨가 된 ‘등’ 같은 표현 하나까지도 세심히 살펴가며 넣고 빼기를 고민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국사를 다루는 인물들 중엔 어휘력과 문해력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 한 정치인이 ‘호가호위’라는 말을 엉뚱하게 구사해 구설을 자초한 일도 있었다. 그 정도 어휘력으로, 정확한 확인조차 없이 그릇되게 공개적으로 어휘를 구사하는 사람이 입법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한편으론 아슬아슬하기까지 하다. 진짜 중요한 건 학식이 아니라 바른 언어를 사용하려는 자세와 성의다.

공공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의 어휘력 및 문해력 부족 문제는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 돼버렸다. 어문학적 지식 부족을 탓하기 이전에 성의 부족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주요 공문서를 작성하거나 공개 발언을 할 때 어떤 어휘를 구사할지 고민해보고, 선택한 어휘가 의도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적절한지 확인해보는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는 게 문제다.

[사진 = 세종교육청 제공]
[사진 = 세종교육청 제공]

필자가 눈살을 찌푸렸던 오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모 정권 때 청와대가 군부대에 간식을 전달하면서 ‘부사관 이하 장병’이란 표현을 쓴 게 생각나는 사례 중 하나다. ‘장병’이 장교와 사병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건만 그 앞에 ‘부사관 이하’란 어울리지 않는 수식 문구를 붙인 게 문제였다. 언젠가 청와대가 서울 도심의 맛집에서 사온 추어탕을 초청 인사들에게 대접하면서 음식을 ‘공수’해 왔다고 발표해 실소한 일도 있었다. 표현대로라면 광화문 인근의 식당에서 청와대까지 항공 수송을 했다는 것이니 황당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었다. 대통령의 담화나 기념사 등에 ‘국가 안위’를 지킨다는 표현이 등장한 실수 사례도 종종 있었다. ‘안위’는 ‘안전과 위태로움’을 병렬적으로 나타내는 어휘다. ‘안위를 지킨다’는 표현은 어이없는 망발이다. ‘난이도(어렵고 쉬운 정도)가 높다’ 또는 ‘난이도가 낮다’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표현이다.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심심한 사과’를 잘못 해석하는 해프닝이 발생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휘력·문해력 빈곤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직접적 원인을 따지고 들자면 한자어에 대한 이해 부족이 문제라 할 수 있다. 우리 말 중 가장 흔한 외래어가 한자어임을 생각하면 한자 교육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실감나게 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책을 통해 소수 엘리트가 쓴 정제된 글만 읽던 이전과 달리 인터넷을 통해 즉흥적으로 작성된 글을 주로 접하는 현실도 어휘에 대한 이해 부족 현상을 심화시킨 것 같다.

물론 이번의 경우에 있어서 가장 큰 잘못은 어휘를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문제의 표현을 제멋대로 받아들인 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통신어를 포함하는 청소년들의 은어를 정색하고 문제시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은 제한적이다. 청소년들의 은어가 구어를 넘어 문어 담화로 정착하면서 세대 간 소통 장애 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문화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동아리 의식을 키워주는 은어의 사용은 청소년 그룹 외 특정 집단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문화현상이라 할 수도 있다.

‘심심한’을 둘러싼 해프닝에 내포된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인이나 정부 기관의 엉터리 국어 사용이다. 1인 미디어 범람으로 영향력이 전보다 줄었다고는 하지만 종이신문이나 지상파 방송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 전통 매체에서조차 ‘유명세를 탄다’라거나 ‘염두하다’ 등등의 망발을 접하는 사례가 너무도 많아진 탓이다. 부정확한 어휘 사용과 함께 ‘~지적이다’, ‘~할 전망이다’ 등등의 널뛰는 비문 표현도 지적돼야 할 대상들이다.

바른 언어생활을 위해 당장 필요한 일은 정치인의 발언이나 정부 기관의 공식 담화부터 바로잡는 일일 것이다. 나아가 여전히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전통 매체들의 정확한 어휘 사용에 대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바른 언어의 구사는 말과 글을 도구 삼아 생업을 꾸려가는 이들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자 도리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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