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우리나라의 지루한 국제분쟁이 일차적으로 종료됐다. 이 사건을 맡은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최근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방해로 손실을 입었다며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의 일부를 한국 정부가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 같은 소식은 지난 31일 법무부를 통해 전해졌다.

ICSID가 우리나라에 지불하라고 결정한 금액은 론스타가 청구한 금액(46억7950만 달러, 약 6조1000억원)의 4.6%인 2억1650만 달러(약 2925억원)다. 분쟁이 시작된 지 10년 만에 나온 결론이었다.

론스타는 2003년 8월 외환위기의 여파로 흔들리던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했다. 그리고 5년 뒤 영국계 홍콩상하이은행에 외환은행을 63억1700만 달러에 매각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때 우리 정부의 훼방으로 매각이 성사되지 못했고, 결국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그 절반 남짓 가격에 처분함으로써 큰 손실을 입었다는 게 론스타의 주장이었다. 론스타는 또 하나금융으로의 매각 과정에서도 우리 정부가 승인을 지연시켜 자신들에게 부당한 손해를 입혔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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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각 계약이 늦춰진데 따라 입었다는 손해액에 한국 정부의 ‘불공정한’ 과세 처분으로 낸 세금을 더한 것이 론스타 측의 청구 금액이었다.

이에 ICSID는 홍콩상하이은행 매각 무산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에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세 당국이 부과한 15억 달러의 세금도 국제기준에 비춰볼 때 과분하지 않았다며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한국 금융 당국이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불합리한 이유로 지연시킴으로써 론스타에 손해를 입혔다는 주장을 일부 수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ICSID가 우리나라에 배상하라고 결정한 금액이 앞서의 2억여 달러였다. 이 기구는 또 중재 신청 이후 배상액에 대해 발생한 이자도 함께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 결정이 최종 확정되면 한국 정부는 론스타에 3100억원가량을 지급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론스타는 외환위기의 상처가 남아 있던 국내 사정을 악용해 외환은행을 불과 1조3834억원에 매입한 뒤 하나금융에 비싸게 팔아넘겼다. 지분 51%와 경영권을 사고팔면서 남긴 이익만 해도 얼추 2조5000억원가량이었다. 처음부터 경영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먹튀’란 비판이 나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스타는 자신들이 부당한 손실을 보았다며 이 일을 분쟁화한 뒤 국제기구로 가지고 갔다. 자신들이 저지른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이 외환은행 매각 가격을 떨어뜨린 점까지 고려하면 우리로서는 황당하게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ICSID도 외환은행 매각가 하락 책임의 일부는 론스타의 주가조작에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진 =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진 =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간의 과정을 보면 론스타의 행위는 얄밉기 짝이 없다. 하지만 냉정히 돌아보면 론스타가 아무런 경쟁도 없이 외환은행을 헐값에 낚아챌 수 있었을 만큼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국내 상황이 두고두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가 관치금융에 익숙해져 있었던 탓에 자본시장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응하지 못한 채 국민 정서만을 살피며 갈팡질팡했던 것도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당시 검찰이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유죄 판결을 받아냄으로써 이번에 과실상계를 유도해냈다는 사실이다. 결정문 내용으로 볼 때 주가조작 유죄 판결이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지불해야 할 손해배상금액은 훨씬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액수가 예상보다 크게 줄었지만 법무부는 이번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ICSID의 처분에 대한 취소 결정을 이끌어내 우리 국민들의 혈세를 론스타에게 단 한 푼이라도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연한 결심이자 시도라 할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기다렸다는 듯 이 일을 정쟁화하고 나선 정치권이다. 일부 언론이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권의 목소리에 동조하고 나선 것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야당 일각에서는 현 정부를 ‘론스타 내각’으로 칭하며 정부 비판에 나섰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이 진보와 보수 정권을 넘나들며 진행된 점을 고려하면 억지가 밴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론스타 먹튀 행각이 진행되는 동안 경제 관련 요로에 있던 사람들 상당수가 지금의 내각에 참여하고 있다는 게 그 같은 공격의 배경이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당시 경제부총리로 있었던 김진표 현 국회의장이 이끄는 국회는 ‘론스타 입법부’란 시비에 휩싸이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현 국회는 야당이 지배하고 있다.

야권의 비판 내용 중에 수긍할 만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외환은행 매각 건 처리 과정에 관여했던 이들에게 책임을 묻거나 사과 표명을 요구하는 것이 그에 해당한다. 정부가 선방했다고는 하나 대규모 국고 손실이 발생했으면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고 사과할 일은 사과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책임 추궁이나 사과 요구가 당장 시급한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일은 론스타 건에 대한 최종 결론이 내려진 다음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은 정부의 방어 노력에 모두가 힘을 보태야 할 시점이다. 지금 이 마당에 ‘론스타 내각’ 운운하며 당시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서는 것은 론스타를 상대로 최후의 일전을 앞둔 정부의 대항논리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일일 뿐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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