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가파른 금리인상 등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던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한 달 만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은행권의 기업대출 역시 8조원 넘게 증가하면서 통계 작성 이후 8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한은이 최근 내놓은 ‘8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3000억원 증가한 1060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지난해 12월 이후 줄곧 감소세를 보이다가 지난 4월(1조2000억원), 5월(4000억원), 6월(2000억원)엔 3개월 연속 증가한 뒤 7월(-3000억원) 들어 뒷걸음쳤다. 하지만 한 달 새 다시 소폭 반등했다. 주택관련 대출 증가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기타대출(신용대출과 비주택담보대출, 보증대출 등)의 감소폭이 축소됐기 때문이다. 다만 증감액은 8월 기준으로 2004년 관련 통계작성 이후 가장 작은 수준이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은 주택거래량 감소 등 주택매매 관련 자금수요 둔화에도 불구하고 집단대출과 전세자금 대출이 증가하면서 1조6000억원 늘어난 792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액 대부분은 집단대출(1조2000억원)과 전세대출(9000억원)이 차지했다. 은행권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6월 6000억원 늘어난데 이어 7월 1조1000억원 증가했고 지난달에도 9000억원 늘어나며 꾸준히 불어났다. 지난해 8월에 비해서는 2조8000억원이나 증가했다. 반면 일반 개별 주택담보대출은 4000억원 줄어들었다. 기타대출은 대출금리 상승, 정부의 대출규제 지속 등이 악재로 작용해 1조3000억원이 감소한 266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째 내리막이고, 8월 기준으로 기타대출이 전달보다 감소한 것은 2004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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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의 기업대출은 8월 말 1146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7월보다 8조7000억원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 금융지원 및 시설자금 수요에 은행권의 기업대출 확대 노력이 더해진 까닭이다. 총량규제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받는 가계대출과 달리 기업대출은 정부당국의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황영웅 한은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차장은 “은행권의 기업대출은 8월 기준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고치”라며 “전달 대비 증가 규모가 계절적 증가요인 소멸 등으로 축소됐으나 예년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대출과 대기업대출이 모두 늘어났다. 중소기업대출은 코로나19 관련 금융지원이 지속되고 중소법인의 운전·시설자금 수요가 증가하면서 5조8000억원 늘어난 943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자영업자가 주로 빌리는 개인사업자 대출은 2조2000억원 늘어난 441조3000억원이다. 대기업대출은 회사채 발행여건이 악화되는 바람에 기업대출 수요가 은행권으로 몰리면서 2조9000억원 증가한 202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다만 회사채는 투자수요 위축이 이어지는 가운데 공적기관을 통한 회사채 발행 등에 힘입어 -1조5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소폭 순발행 전환했다. 기업어음(CP)·단기사채(1조2000억원→3조5000억원)는 일부 공기업을 중심으로 순발행이 확대됐다. 황 차장은 “전반적으로 직접금융 관련 내용은 위축된 부분이 많고 CP와 단기사채도 이 연장선상에서 보는 게 맞다”면서도 “지난달은 일부 공기업을 중심으로 순발행이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은행권 수신은 수시입출식 예금의 상당폭 감소에도 정기예금이 크게 늘어나면서 7월 -10조3000억원에서 지난달 8조7000억원으로 증가 전환됐다. 수시입출식 예금은 기준금리 인상 등에 따른 저축성예금으로의 자금이동 등으로 가계자금을 중심으로 상당폭 감소했다. 이에 비해 정기예금은 수신금리 상승에 따른 가계 및 기업자금 유입, 지방자치단체 자금유입 등으로 크게 증가했다. 자산운용사 수신은 833조8000억원으로 1조원 증가했다. 국고 여유자금을 회수하면서 머니마켓펀드(MMF·-6000억원)가 감소 전환한 가운데 기타펀드(2조원)와 채권형펀드(8000억원)가 증가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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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과 제2금융(보험사, 상호금융, 저축은행, 여신전문금융회사, 농협 등)을 포함한 전(全)금융권의 지난달 가계대출 역시 전세자금 수요, 여름 휴가철 자금수요 등으로 증가세로 다시 전환됐다.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8월 중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전달보다 7000억원 증가했다. 전달 9000억원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동안 가계대출은 1~3월엔 감소세를 기록하다가 4월부터 증가세로 전환한 뒤 7월 감소세로 바뀌었다.

항목별로 보면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2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7월 증가액이 2조500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소폭 늘었다. 기타대출은 전달보다 2조1000억원 감소했다. 7월 3조4000억원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감소폭이 줄어들었다. 업권별로는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전달보다 300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1조6000억원으로 전달(2조원)보다 증가폭이 줄었다. 제2금융권의 지난달 가계대출은 상호금융·농협 등은 줄어들었으나 저축은행(4000억원)·보험(3000억원)·여신전문금융회사(2000억원)를 중심으로 늘어나며 전체적으로 전달보다 4000억원 증가했다. 7월에는 전달보다 6000억원 감소한 바 있다. 기타대출은 전달보다 1조3000억원 줄어들어 지난달(-2조3000억원)보다 감소폭이 축소됐다. 신용대출이 9000억원 줄어든 게 주요인이다. 

금융당국은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이 증가세로 전환됐지만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주택 매매거래는 부진하지만 집단 대출 및 전세 관련 자금수요가 지속됐고 여름 휴가철 등 계절적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변제호 금융위 금융정책과장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안정적으로 유지돼 우리 경제의 불안 요인이 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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