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정부가 금융시장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구체적 행동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지금까지 불안심리를 다스리는데 주력해왔으나 약발이 먹히지 않자 물리적 대응에 돌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이번 결정엔 주가와 원화가치, 채권값이 동시에 폭락하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됐다.

국내 금융시장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초긴축과 그에 따른 달러화 강세 등의 영향으로 불안감을 키워가고 있다. 지난 28일의 경우 증시에서는 코스피지수 2200선이 맥없이 무너졌고, 원/달러 환율은 1440원선을 넘어섰다. 코스피가 2200선 아래로 내려가기는 2년 2개월 만에, 원/달러 환율이 1440원을 넘긴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이날 채권시장에서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전 거래일보다 3.4bp(1bp=0.01%포인트), 10년물 금리는 12.4bp 상승했다. 채권금리 상승은 채권값 하락을 의미한다.

이에 정부는 전방위 대책들을 내놓았다. 주 내용은 △정부의 국채 조기 상환(바이백) 및 한국은행의 국고채 매입 △증권시장 안정펀드(증안펀드) 재가동 △공매도 모니터링 강화 등으로 요약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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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국채 바이백과 한국은행의 국고채 매입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취했던 양적완화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조치다. 정부가 국채를 조기상환하는 것이나 한은이 국채를 매입하는 것 모두 시중 유동성을 늘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투입되는 자금 규모는 바이백 2조원, 한은 국고채 매입 3조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번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은 채권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다. 치솟는 채권금리의 급등세를 진정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다. 시장금리를 대변하는 채권금리는 중앙은행의 기준금리와 긴밀히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금융위원회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행동에 돌입할 움직임을 보였다. 증안펀드를 투입해 패닉 상태에 빠진 증권시장을 안정화시킨다는 것이 주 목적이다. 금융위는 28일 금융감독원과 함께 금융시장 합동점검 회의를 열고 증안증권 재가동 의지를 밝혔다. 이날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회의에서 “증안펀드 재가동 등 금융시장 변동성 완화조치를 적기에 실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곤 회의 내용을 즉각 공개했다.

금융위는 이미 증안펀드 재가동을 위해 금융기관 및 증권유관기관 등 출자기관들과 실무협의를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 증시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자 10조원 이상의 증안기금을 조성한 바 있다. 그러나 증시가 곧 안정을 회복하는 바람에 실제 가동 단계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증안펀드 자금이 증시에 유입되면 시가총액이 크고 발행량이 많은 대형주가 상대적으로 큰 혜택을 누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들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 주가지수 부양 효과를 보다 크게 낼 수 있다는 점이 그런 전망의 배경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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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행위에 대한 당국의 감시도 보다 엄격해진다. 직접 행위를 규제하지는 않지만 90일 이상 장기 공매도를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정보보고 의무를 부과한다는 것이 골자다. 공매도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다음 해당 주식의 주가가 떨어지면 되사서 갚는 매매기법이다. 그렇다 보니 주가가 하락해야 돈을 버는 구조를 지닌다. 이 점 때문에 공매도를 자유롭게 활용하기 어려운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주범이란 주장과 함께 공매도 금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국은 다음 달 7일까지 의견 수렴을 한 뒤 공매도 감시 강화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이 방안이 실행되면 공매도 목적으로 주식을 빌릴 경우 90일이 지나면 금감원장에게 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장기 공매도에는 다른 목적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는 게 의무 부과의 명분이다.

하지만 실제 목적은 기관투자가들과 외국인들의 공매도 남용에 의해 주가가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려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간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가 기관투자가와 외국인들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현재 개인에 한해서는 공매도를 위한 주식 대차 기간에 제한이 가해지고 있다.

당국은 국제적 관례 등을 들어 공매도에 대한 전면 금지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주가가 하락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공매도의 속성상 지금처럼 증시 불안정이 심각할 때엔 일정 정도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위는 이번 조치에 대해 “개인 투자자의 우려를 고려해 90일 이상의 장기 대차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함으로써 투자자들의 우려를 해소하고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높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금융위의 이 조치가 사실상 공매도 행위를 억제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정부 관계자가 지금의 환율 급등이 국내에서의 달러 사재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직접적 표현은 자제했지만 적어도 최근 수일 동안의 원/달러 환율 급등은 국내에서의 달러 사재기에 일부나마 기인했을 것이란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문제의 발언은 기획재정부 김성욱 국제경제관리관이 28일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는 도중에 나왔다. 김 관리관은 우리가 풍부한 외환보유액과 대외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환시장에 위기가 닥치면 준비한 대책을 제시할 것임을 먼저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환율 상황이 내부 요인보다는 외부 요인에 기인한다는 점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환율 급변동이 역외 움직임 때문만은 아니다”라는 시각을 드러냈다. 이어 “지금 우리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국내 주체”라고 지적했다. 환율 급등의 근본적 원인은 대외에서 찾을 수 있지만, 최근 수일간의 환율 이상 급등세는 국내 경제주체들의 달러 사재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거론한 것으로 이해될 만한 발언이었다.

‘달러 사재기’란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려는 듯 그는 “시장에서 일부 심리의 쏠림”이 있고, 그런 현상은 전세계적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한 발 더 나아가 “사재기라는 식으로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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