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증권시장 안정펀드(증안펀드) 재가동에 앞서 공매도 금지 조치가 먼저 취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금융 당국은 4일 현재까지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당국도 증안펀드 재가동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공매도 금지 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인식은 재원이 한정된 증안펀드를 활용해 증권시장에 자금을 투입하더라도 공매도 매물을 받아내는 구실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우려가 현실화되면 증안펀드 재가동은 기관 등 큰손들의 공매도만 도와주고 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도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 금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의 주가 하락이 큰손들의 공매도와도 연관돼 있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다음 주가가 떨어지면 그 주식을 다시 사들여 현물로 상환함으로써 매매차액을 챙기는 기법이다. 결국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수록 큰 이익을 보장하는 속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금융시장 합동점검회의. [사진 = 연합뉴스]
금융시장 합동점검회의. [사진 = 연합뉴스]

이 제도는 기관이나 외국인 등에 유리하게 조성된 마당이라는 점에서도 비판을 받아왔다. 개인들에게도 공매도가 허용되고 있지만 개미들은 정보력에서 뒤지는데다 공매도를 위한 주식 대차기간 등에 엄격한 제한이 가해지는 등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공매도 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매도가 선진화된 증시에서 매매기법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당국도 섣불리 금지 요구에 응하진 못하고 있다. 섣불리 전면 금지에 나섰다간 외국인 등이 국내 증시를 외면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처럼 비상한 상황에서는 공매도 금지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 특히 증안기금이 본격적으로 재가동되기 전에 공매도 금지 카드를 먼저 꺼내들 가능성이 당국자들의 발언을 통해 시사되고 있다.

당국자들은 “증안펀드가 (증시에) 들어가기 전에 공매도를 먼저 금지하는 게 일반적”이라거나 “시장 불안 완화 차원에서 쓸 수 있는 카드”라는 말을 흘리고 있다. 금융 당국이 이미 내부 논의를 하고 있다는 말도 당국자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증안펀드 재가동을 앞두고 공매도 금지 문제가 새삼 부각되는 것은 이전의 경험과도 연결돼 있다. 실제 가동 단계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금융 당국은 2020년 3월에도 증안펀드를 조성한 바 있다. 당시에도 당국은 펀드 조성 발표에 앞서 한시적 공매도 금지 조치를 취했었다. 기금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당시 당국은 공매도 금지를 6개월 시한부로 결정했다. 그러나 시한이 임박하자 금지 조치 해제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고, 결국 작년 5월까지 시한을 연장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공매도 금지 조치 해제는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지수를 구성하는 종목에 한해 취해졌다. 그 나머지 종목에 대해서는 지금도 공매도 금지가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개인 투자자들은 최근 주가가 급락하자 다시 공매도 전면 금지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비상한 조치까지 검토하는 마당에 당국이 공매도를 현 상태대로 끌고 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점이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가 조만간 내려질 것이란 전망을 낳는 이유다. 증안기금이 이달 중순 무렵 재가동될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공매도 금지 조치는 수일 내에 취해질 가능성이 있다.

금융 당국은 증안펀드 재가동 작업을 이달 중순쯤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 규모는 10조원 수준이다. 당국이 이번에 증안펀드를 조성하면서 ‘재가동’이란 표현을 쓰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2년 전 봄 출범시킨 증안펀드가 아직 해산되지 않은 채 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다만, 펀드를 다시 가동하려면 금융당국이나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등 유관기관이 다시 모여 논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시일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증안펀드에는 자금 일부만 남아 있다. 10조7600억원 규모의 자금이 약정 기한 만료로 대부분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잔고는 1200억원 정도다. 여기에 실탄을 보충해 전체 규모를 2년 전 조성 당시의 수준으로 키운다는 것이 당국의 구상이다. 실탄이 다 채워지기 전에는 잔고 1200억원과 한국거래소·예탁결제원 등이 조성하는 7600억원 등을 활용해 유사시 증시에 긴급 투입한다는 계획도 세워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 당국은 지난달 28일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재로 금융시장 합동점검회의를 열고 증안펀드 재가동이 적기에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해 줄 것을 관계자들에게 당부한 바 있다. 그에 따라 후속 작업이 진행됐고, 그 결과 이달 중순이면 증안펀드 재가동이 현실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매도 금지와 증안펀드 기금 투입이 언제쯤 단행될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그건 전문가들과 얘기해봐야 한다”고 답했다. 공매도 금지가 선제적으로 취해질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민감한 부분이라 언급하는 게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전문가들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는 반응이었다.

증안펀드 재가동과 그에 앞서 단행될 공매도 전면 금지는 예고하는 것만으로도 증시에 일정 부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투자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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