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이달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으로만 가도 국내 대기업의 절반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좀비기업’(한계기업)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더욱이 금리인상이 빅스텝(0.5%포인트 인상)으로 갈 경우에는 대기업 60%가 금리 한계기업에 포함될 것으로 파악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기준금리 임계치는 평균 2.6%로 집계됐다. 이 같은 수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8∼18일 매출 1000대 제조기업 재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자금사정 인식조사를 통해 도출했다. 전경련은 “현재 기준금리가 2.5%인 만큼 한 차례만 더 기준금리를 인상해도 상당수 기업들이 유동성 압박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기준금리 임계치가 2.25% 이하인 기업 비율은 37.0%로 조사됐다. 기업 10곳 중 3곳 이상이 현재의 기준금리(2.5%) 아래에서 영업이익으로는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전경련은 이 조사 결과에 기반해 한은이 오는 12일 열리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할 경우 대기업 50%가량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낼 수 없는 취약기업으로 전락한다고 해석했다. 빅스텝으로 가서 기준금리가 3.0%가 되면 취약기업 수는 10개사 가운데 6곳(59.0%)꼴로 늘어난다고 전경련은 추산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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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재무담당자들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될 때마다 금융비용이 평균 2.0% 증가한다고 응답했다. 기업들은 기준금리가 올 연말에는 3.0%까지 오르고 내년에는 3.4%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구체적으로 올 연말 예상금리는 △3%대(67.0%) △2.75%(25.0%) △2.5%(8.0%) 등이었고 4.0% 이상은 없었다. 내년 중 예상 기준금리는 △3%대(81.0%) △4.0% 이상(10.0%) △2.75%(9.0%) 등으로 조사됐고 2.5% 이하 응답은 없었다.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현재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대체로 비슷하거나 악화된 상황이며, 연말로 갈수록 자금사정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예상됐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볼 때 기업들의 현재 자금사정은 ‘비슷’(57.0%), ‘악화’(28.0%), ‘호전’(15.0%)으로 나타나 악화 응답이 호전의 1.9배나 됐다. 연말로 갈수록 자금사정은 비슷(48.0%)하거나 호전(14.0%)된다는 응답은 감소하고 악화(38.0%)된다는 답변은 증가했다.

기업들은 자금사정이 나빠진 이유로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高)’ 현상을 지적했다. 자금사정은 악화하면서 기업들의 자금수요는 올해 연말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37.0%)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9.0%)의 4배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자금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문은 △원자재·부품 매입(36.7%)이 가장 많았다. 이어 △설비투자(23.0%) △차입금 상환(15.0%) △인건비·관리비(12.3%) 등의 순이었다.

자금을 조달할 때의 어려움은 △신규 대출 및 대출 만기 연장(33.3%) △환율 리스크 관리(22.3%) △신용등급 관리(11.0%) 등을 꼽았다. 안정적인 자금 관리를 위해 정책당국에 바라는 과제로는 △환율 등 외환시장 변동성 최소화(24.7%) △경제주체의 금융방어력 고려한 금리 인상(20.7%) △공급망 관리 통한 소재·부품 수급 안정화(16.3%) △정책금융 지원 확대(12.7%) 등을 지적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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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한·미 금리가 역전된 상황에서 추가 금리인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한계상황에 처한 기업들이 상당한 만큼 경제주체들의 금융방어력을 고려한 신중한 금리인상이 요구된다”며 “외환시장 안정조치와 정책금융 확대 등으로 금리 인상에 따른 기업부담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시장금리 급등으로 회사채 발행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은행 차입을 늘리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29일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692조3669억원으로 전달(681조6676억원)보다 10조원 넘게 증가했다. 지난해 12월 말(635조8789억원)보다는 56조원 이상 불어났다.

기업대출이 빠르게 늘어난 것은 올 들어 본격화된 금리상승으로 기업들의 주요 자금줄인 회사채 발행 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등급 AA-인 기업의 무보증 회사채 3년물 금리는 지난달 26일 기준 연 5.551%로 연고점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 27일(연 2.011%)과 비교해 무려 2배 이상으로 뛰었다.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 금리는 연 10%를 웃돈다. 신용등급이 BBB-인 기업의 무보증 회사채 3년물 금리는 연 11.405%까지 치솟았다. 지난해와 비교해 3%포인트 이상 급등한 수치다.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 대신 은행 문을 두드리는 까닭이다.

물론 대출이자 부담이 커진다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지난 8월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 통계에 따르면 기업대출 금리는 연 4.46%로 전달보다 0.34%포인트 상승했다. 2014년 7월(연 4.54%) 이후 8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기업 대출금리는 연 4.23%로 0.39%포인트,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연 4.65%로 0.29%포인트 각각 올랐다. 담보가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신용대출 금리는 최고 연 7%를 돌파했다. 자동차 부품사를 운영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원자재 수입을 위해 은행 대출을 신청했지만 공장 땅과 건물이 담보로 잡혀 추가로 제공할 담보가 없다”며 “연 6~7% 수준의 신용대출이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회사채 발행은 급감하고 있다. 지난달 1일부터 23일까지 회사채 발행액은 2조821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조3546억원)보다 61.8%나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5조9579억원)과 비교해서도 절반 수준에 그쳤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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