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와’(和)를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와’는 화합을 의미한다. 일본의 연호에도 ‘와’란 글자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연호로서 역대 최장 기록을 지녔다는 ‘쇼와’(昭和)나 지금의 연호 ‘레이와’(令和)에도 ‘와’가 포함돼 있다.

일본인들이 일상에서 ‘와’를 실천하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붐비는 지하철이나 스포츠 경기장 등에만 가 봐도 그들이 안내원의 지시를 얼마나 잘 따르는지를 금세 실감하게 된다. 그들의 질서정연한 행동을 보고 있자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각자가 모범적으로 스스로를 통제하는 행동에서 민도가 높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으레 집단범죄 가능성에 대한 공포감으로 귀결된다. 영화 속에서 종종 보았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가미가제 특공작전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가미가제의 광기에 생각이 미치면 전체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일면서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그래서 필자에게 일본은 정서적으로 먼 나라일 수밖에 없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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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본의 침략사와 패망을 통해 정치가 전체주의에 매몰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저리도록 느낄 수 있었다. 전체주의는 극우나 극좌 정권에서 인치(人治)가 확고히 자리잡을 때 심화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유럽의 파시즘과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 해방 이후의 북한식 인민민주주의가 그걸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집단이 결국 패망한다는 것은 역사적 진리다. 그 진리를 결정적으로 확인해준 사건이 1990년대 초 소비에트연방(소련)의 붕괴와 러시아연방의 탄생이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도 러시아에 잔존해 있는 전체주의의 부정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서구를 선망하던 우크라이나가 전체주의 체제 이탈을 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러-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전체주의 실험이 여지없이 실패하는 근본 이유는 다양성의 결핍이다. 하나의 리더십을 축으로 전체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방향 설정이 잘못될 경우 구성원 모두가 파멸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런 집단에서 이견 표출이나 대오 이탈은 배신으로 간주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와 유사한 현상이 지금 민주화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민주란 이름을 앞세워 만들어진 더불어민주당에서다. 각종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를 축으로 똘똘 뭉쳐 검찰 수사에 저항하며 ‘야당 탄압’, ‘조작’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딱 그런 형국이다. 이미 드러난 이 대표 측근들의 혐의만 해도 상당하건만 당이 집단의 힘을 앞세워 버티려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런 행태는 최악의 상황을 맞더라도 모두 함께 죽자고 덤벼드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그래서 나온 말이 ‘연환계(連環計)’다. 여당 측에서 나온 이 말은 적벽대전에서 위나라 조조에게 치욕스러운 패배를 안기는 과정에서 오나라가 취했던 계략이다. 요지는 오가 뱃멀미로 곤욕을 치르던 조조 진영의 배들을 한 묶음으로 엮도록 유도한 뒤 화공(火攻)으로 물리쳤다는 것이었다. 연환계란 이름은 쇠고리(연환)로 위나라 배들을 엮도록 했다는 데서 유래됐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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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나오는 연환계의 실행 주체는 오나라였지만, 여당 측 인사는 민주당이 스스로 자신들을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묶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이 용어를 쓴 것으로 보인다. 주장의 취지는 시한폭탄일 수 있는 이재명 대표를 당과 하나로 묶어 민주당이 위험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민주당은 이 대표를 향해 다가오는 검찰의 칼끝을 무디게 할 목적으로 민주연구원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물리적으로 막아서기도 했다. 국회 내 의원회관, 심지어 청와대까지 압수수색을 받았을 만큼 개명된 세상이건만 당사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별도 법인에 대한 압수수색마저 불법 저지한 것이다. 압수수색 대상은 이 대표 최측근 인사의 컴퓨터였고 그 목적은 해당 인사의 8억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의 확인이었다. 민주당이 압수수색을 막으며 내심으로 바란 바는 이 대표 측근을 건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민주당과 당 대표를 신성불가침의 대상으로 인정하라고 위력시위를 벌인 셈이다.

인의 장막으로 압수수색을 저지한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은 군사독재 시절 스크럼을 짠 채 강압적 공권력에 맞섰던 시위대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최루탄과 곤봉을 앞세워 무자비하게 공격해오는 공권력에 저항하며 대오를 유지하려면 스크럼을 짜야만 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때의 스크럼은 시위대가 흐트러짐 없이 ‘독재 타도’를 외치는데 있어서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 시위 행위는 불법이었지만 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을 범법으로써 파괴한다는 명분 덕분에 당시의 시위대는 다수 시민의 지지를 받았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넘치도록 보장되고 있고, 고관대작이라 해서 법적 특권을 누리는 일도 사라졌다. 이견을 용인하지 않는 민주당을 제외하면 민주화 요구 자체가 무의미해진 지금이다. 이런 세상에 제1 야당 대표라 해서 치외법권의 영역을 구축하려 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과거의 정가에는 위법 혐의가 제기되면 그 당사자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주장하기 이전에 직을 내려놓고 검·경 수사에 협조하는 관행이 있었다. 특권을 내려놓고 당당히 법적 다툼을 벌여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게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을 살리기 위한 최선의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런 관행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져도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양심”과 “진실”을 입에 올리며 범법 사실을 부인하는 일이 흔해졌다. 그 바람에 조직 또는 진영 전체가 함께 피해를 입곤 했다.

민주당의 연환계는 이재명 리스크를 진영 갈등의 산물로 몰고 가려는 의도와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재명 리스크는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합법·불법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 만큼 민주당이 “너희 쪽 허물도 들여다보라”고 요구할 수 있을지언정 정치 탄압을 주장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검찰을 향한 민주당의 저항은 자당 소속 김해영 전 의원의 말대로 “이길 수도, 이겨서도 안 되는” 싸움이다.

지금 이재명 대표가 해야 할 일은 대붕을 꿈꾸는 정치인답게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조용히 지켜보며 민주당을 의정에 집중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추후 자신의 혐의점이 제기되면 그땐 당대표직과 의원직을 내려놓고 개인 자격으로 당당히 검찰 수사에 응해야 한다. 그게 정의를 실현하면서 자멸적 책략인 연환계를 풀어 민주당을 수권하는 정당으로 만드는 바른 길이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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