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넘쳐나고 있다. 비온 뒤 죽순 돋아나듯 생겨나는 유튜브 다수가 언론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유튜브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 과잉 시대를 살아오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뉴스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이 폭증하면서 언론이 홍수를 이루는 지경에 이르렀다. 1도1사(一道一社: 도 단위로 1개 언론사만 두게 함)란 희한한 원칙 하에 정부가 언론사 설립을 제한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상전벽해가 이런 것인가 생각될 정도다. 행정관청도 아닌데 언론사 설립을 정부가 제한한 것도 문제였지만, 자칭·타칭 언론이 지금처럼 많아진 가운데 사이비 언론까지 앞뒤 없이 날뛰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전자가 언론자유 억압의 전형이었다면 후자는 무한 방임이 낳은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뉴스를 다루는 유튜브가 언론인지 여부는 논쟁적 주제로 남아 있다. 일단 언론중재법상 개념으로 치면 유튜브는 언론이 아니다. 따라서 관련 논쟁은 통념상의 언론, 광의의 언론 범주에 유튜브를 포함시킬지 아닌지에 모아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배경엔 유튜브 매체 다수가 취재라는 이름으로 외부 활동을 벌이고 있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짧지 않은 언론사 재직 경험과 그 과정에서 형성한 언론관을 토대로 개인적 의견을 밝히자면, 다수의 뉴스 관련 유튜브는 언론이 아니다. 특히 1인 유튜브의 경우 언론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본 장치인 게이트키핑 기능이 전무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게이트키핑은 언론사가 일련의 과정을 거쳐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일을 의미한다. 취사선택의 판단 요소에는 뉴스의 내용은 물론 취재 과정의 윤리성·정당성·합법성도 포함된다.

신문사를 예로 들면 기자가 작성한 기사는 데스크와 교열, 편집, 에디터(또는 편집국 부국장), 편집국장, 편집담당 임원, 편집인 등을 거쳐 활자화된다. 온라인 기사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기사의 중요도나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기사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기사 스크린의 집중도에서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게이트키핑 과정을 생략한 채 활자화되는 기사는 없다.

신문 기사 하나하나는 정해진 공정을 거쳐 뉴스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신문사 브랜드의 상품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사에 대한 저작권도 기자 개인이 아닌 신문사에 귀속된다.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신문사에서는 기자가 자신의 기사가 게이트키핑 과정을 거치면서 다소 변경됐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사실 관계가 왜곡된 경우가 아니라면 그래야 한다는 게 하나의 불문율이다. 이런 관행은 뉴스가 기자 개인의 생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기자들 모두가 잘 알고 있기에 유지되고 있다.

게이트키핑에 대한 필자의 확고한 인식은 지금 몸담고 있는 인터넷 매체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규모가 작은 인터넷신문사이다 보니 그 절차가 간소화됐고, 촘촘함의 정도도 떨어졌지만 게이트키핑 기능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게이트키핑 과정에서 기자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것이 팩트 체크다. 신입 기자가 들어오면 교육 및 실무 과정을 통해 가장 중점을 두고 강조하는 것도 이 점이다. 예를 들면 우리 기자가 온라인 직장인 커뮤니티를 통해 얻은 정보를 기사화하려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커뮤니티는 사원 확인 절차를 거쳐야만 글을 올리는 게 가능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덕분에 게시글에 대한 신뢰성이 비교적 높다는 평을 듣는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해당 커뮤니티에는 휘슬 블로잉이라 여겨질 만한 게시글들도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걸 그대로 기사화해 들이미는 기사는 절대로 송출하지 않는다. 신분 확인이 엄격한 커뮤니티일지라도 글쓴이의 사원 신분을 100% 신뢰할 수 없고, 사원이 맞다 할지라도 글의 내용은 사실이 아닐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닐 확률이 1% 미만이라 할지라도 내용에 대한 팩트 체크는 기자가 이행해야 할 필수 과정이다.

게시글 작성자와 연락이 닿아 내용이 맞는지를 확인했다고 해서 팩트 체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크로스 체크다. 해당 회사 관계자에게 게시글의 내용이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민감한 사안이거나 특정인 및 집단을 비판하는 내용일 경우 팩트 체크 과정은 이보다 몇 개는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 정도는 우리 같은 소규모 온라인 매체에서도 당연한, 최소한의 상식으로 통한다.

게이트키핑의 번거로움을 언론사들이 기꺼이 감수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한 팩트 체크는 기본적인 이유에 해당한다. 게이트키핑이 갖는 보다 궁극적인 기능은 한 개인의 판단에 스며들 수 있는 주관적 오류나 확증편향성을 제거하는 일이다. 작은 부분에 매몰되거나 의지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뉴스가 정치적 선전선동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우리사회의 기성 언론사 중에도 뉴스를 통해 선전선동을 일삼는 곳들이 더러 있다. 이념 장사에 혈안이 돼 있는 매체들이 그에 해당한다. 그들 언론사에 있어서 정치나 이념은 훌륭한 상업적 도구에 불과하다. 적어도 필자 눈엔 그렇게 비쳐진다. 이외에도 특정인 또는 집단의 법익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오류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과정이 게이트키핑이다.

팩트 체크와 관련해 신입 기자들이 종종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명예훼손의 개념이다. 그들에게서는 사실 확인만 끝나면 기사화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하지만 명예훼손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성립되는 형법상 범죄다. 공연성과 적시성 두 가지 요건만 갖춰지면 범죄가 성립될 수 있다. 명예훼손의 불이익을 입을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적시한 가운데 공공연하게 부정적 사실을 밝힐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해당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사회적·국가적 법익이 더 커질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법기관이 판단할 일이지만, 언론사는 그런 사안을 맞닥뜨렸을 때 치열한 내부 논의와 심사숙고, 결단 등의 과정을 거친다.

게이트키핑은 언론을 언론이게 하는 필수 기능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팩트 체크다. 이를 묵살하는 매체는 언론이라 할 수 없다. 팩트 체크는 특정인 또는 집단을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할 때 더욱 엄격히 요구된다. 제대로 된 언론사라면 모든 소속 기자들이 이 사실을 숙지하고 있다.

이 같은 기본 인식 하에 또 하나 중시되는 것이 사실과 의견의 명확한 구분이다. 이는 언론 유관단체들의 각종 언론윤리강령에서 기본적으로 다뤄지는 내용이다. 의견을 사실인양 기술하거나 주관을 객관화하는 일은 기자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는 의미다. 요즘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서 진행자들이 패널들의 의견 표출에 ‘개인적 의견’임을 자주 상기시키는 것도 주관의 객관화를 억제하고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이 역시 ‘개인적 의견’일 수 있겠지만, 요즘 ‘청담동 술집 논란’의 한 가운데에 있는 유튜브인 더탐사는 언론이라 부를 수 없는 매체다. 사회적 파장이 클 수밖에 없는 사안을 폭로하면서 기본적 팩트 확인도 하지 않는 등 게이트키핑 기제를 충실히 작동시키지 않았다는 점이 그런 판단의 이유다.

해당 유튜브의 첩보 수준에도 못 미치는 방송 내용을 명색 중앙종합일간지 기자 출신이라는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미리 국회에서 공개한 것은 한심스러운 일이다. 기자의 도리·의무 등을 제대로 익힌 사람이라면 ‘청담동 술자리’ 이야기 같은 저질 미확인 뉴스를 함부로, 그것도 국회 국정감사장 같은 엄중한 자리에서 공표하지는 않을 테니 하는 말이다.

저질 가짜뉴스 유포에는 현행법 체계 하에서 정치적 고려 없이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묻는 게 정답이다. 뉴스를 내보내는 매체가 언론인지 아닌지를 따질 필요도 없다. 입법을 통해 언론에 대한 감시를 지금보다 강화하자는 게 아니다. ‘언론 탄압 저지’란 이름의 철옹성을 쌓아둔 뒤 그 안에서 악의적 가짜뉴스를 제작해 배포하며 사회적 담론 수준을 떨어뜨리는 일은 더 이상 허용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방임을 우려해야 할 만큼 민주화 주장이 설득력을 잃은 지금이라면, ‘언론 탄압’ 구호를 방패삼아 준동하는 가짜 언론의 저항을 미리부터 꺼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죄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점은 정부 기관이 앞장서서 언론과 비(非)언론을 구분하는 일이다. 언론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그 기본조건이 무엇인지 등은 필자 같은 논객 등 사회적 공론장 참여자들이 따질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조차 필요 없는 일일지 모른다. 시민 각자가 이미 언론의 기본조건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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