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국내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반 년 만에 3%대를 회복했다. 소비자들이 향후 1년 동안 물가가 그 정도 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이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2022년 12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전달(4.2%)보다 0.4%포인트 낮아진 3.8%였다. 같은 조사에서 기대인플레율이 3%대로 내려간 것은 지난 6월의 3.9%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월별 기대인플레율은 지난 7월 4.7%로 치솟은 이래 지난달까지 4.2%, 4.3%를 번갈아 기록하는 등 4%대를 유지했었다.

기대인플레율이 정점을 찍은 시점인 지난 7월은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최고조에 이른 때와 일치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3%였다. 이후 소비자물가는 5.6~5.7% 선을 오르내리다 11월 들어 5.0%로 내려앉았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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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주요 품목의 응답비중은 공공요금(67.3%), 석유류(35.5%), 농축수산물(30.9%) 순이었다. 전달에 비해 공공요금 응답 비중은 8.3%포인트 증가한 반면,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제품을 지목한 응답자 비율은 각각 6.3%포인트, 3.6%포인트 감소했다.

이는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향후 1년 동안 공공요금이 물가 상승을 주도할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 동시에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제품이 물가 상승을 이끌 것이란 전망은 전달보다 다소 약화됐음을 보여주었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도 생활물가와 관계된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가격이 안정된 현실을 지적하면서 “소비자물가지수와 환율 하락이 기대인플레율을 낮추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다가올 일정 기간 동안 소비자물가가 어느 정도 상승할지에 대한 소비자들의 전망을 의미한다. 한국은행은 향후 1년간을 대상으로 설정한 뒤 매달 기대인플레율을 추출해낸다. 이달 조사는 지난 12~19일 전국의 25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조사에 응한 가구 수는 2380개였다. 한국은행은 다양한 지역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구간별 응답 내용을 정리한 뒤 중간값을 추출해내 이를 기대인플레이션율로 삼는다.

한국은행은 지난 1년 동안의 물가 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함께 조사하는데 이를 물가인식이라 칭한다. 다시 말해 물가인식은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지난 1년간의 물가 변동률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상의 조사들은 ‘소비자동향조사’라는 이름으로 소비자심리지수(CCSI) 조사 등과 함께 이뤄진다.

미국의 경우 미시건대학이 한국은행과 비슷한 방식으로 기대인플레율을 집계해 발표한다. 우리와 다른 점은 향후 1년과 5년을 설정한 뒤 단기와 장기 기대인플레율을 따로 집계한다는 것이다. 1년 기대인플레율은 향후 1년 동안. 5년 기대인플레율은 향후 5년 동안 나타날 것으로 소비자들이 예상하는 인플레율을 각각 지칭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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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지표에 불과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추출된 기대인플레율은 각국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을 운용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참고자료로 쓰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나 한국은행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들의 물가에 대한 기대심리가 실제로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이치는 이렇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높아지면 소비자들은 물가 상승이 기대되는 품목들을 대상으로 미리 상품을 확보하려는 생각을 갖는다. 이와 함께 근로자 개개인은 물론 노동조합들은 예상되는 물가상승 정도를 미리 반영해 임금 인상을 요구하게 된다. 수요 증가나 임금인상 요구 증대 등은 실제로 소비자물가를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 같은 원리 탓에 중앙은행들은 현실적 물가 흐름 못지않게 기대인플레율 추이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 이를 기타 다양한 경제지표들과 취합해 분석한 뒤 기준금리 경로 등 통화정책 운용 방향을 시장에 미리 제시하곤 한다. 결국 기대인플레율 조사는 통화당국과 시장의 소통 과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기대인플레율 자료는 정부의 물가관리 정책에도 반영된다. 정부가 내년에 101개 품목에 대해 할당관세를 적용키로 결정한 것도 그 사례 중 하나다. 이런 내용의 정부 방침은 27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3년 탄력관세 운용계획’을 통해 공개됐다.

이 계획의 세부 내용은 내년에 대두유·해바라기씨유 등 식용유와 커피 원두(생두), 감자·변성전분 등 11개 품목에 대해 연중 0%의 할당관세를 적용한다는 것 등이다. 한시적으로 긴급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있는 양파와 닭고기·고등어·돼지고기·주정·계란가공품 등에 대해서는 관세 인하 기간을 최대 6개월까지 연장키로 했다. 동절기를 맞아 수요가 늘어난 난방용 액화석유가스(LPG)와 액화천연가스(LNG) 관세율도 0%로 낮추고 사료용 옥수수의 경우 할당관세 적용물량을 100만t 늘린다.

할당관세제는 일정 물량의 수입품에 대해 일정 기간 동안 관세율을 낮추거나 높이는 제도를 말한다. 기본세율을 기준으로 40%포인트 범위 안에서 관세율을 가감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이날 정부가 내년에 관세율을 줄이기 위해 선정한 품목 수는 역대 최다에 해당한다. 이는 고물가가 심각한 수준에 있음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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