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산업의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크게 높이기로 했다. 과정상의 우여곡절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결정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부분의 국내외 전문가들은 올해엔 국내 경제를 포함한 세계경제가 작년보다 더 나빠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우리의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1%대 중·후반에 머물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책의지를 지닌 정부조차 우리의 성장률 전망치를 1.6%로 제시했다. 이 정도 저성장은 우리가 2차 오일쇼크, 환란, 세계 금융위기, 2020년의 코로나19 본격 창궐기 등 특별한 때를 제외하곤 겪어본 적이 없다.

우리경제가 마주하고 있는 악재는 복합적이다. 장기적 긴축에 의한 세계적 경기 둔화로 수출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고물가와 고금리에 의한 소비 부진도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비와 함께 내수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설비투자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우려된다. 투자가 부진해지면 고용이 줄고 이는 다시 소비 부진을 초래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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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가 산적한 가운데 공급망 혼란을 가중시켜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경제 상황도 낙관을 불허한다.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세계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면 우리의 주된 먹거리인 반도체도 수출 부진의 늪을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더구나 지금 세계 반도체 산업은 수급 불균형과 치열한 국제경쟁, 주요국들의 보호무역주의색 짙은 합종연횡 정책으로 인해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가고 있다. 이는 반도체가 주요국 모두에게 자국 전략산업의 대표 주자로 인식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반도체는 이제 좋든 싫든 경제를 넘어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뤄지는 기간산업의 핵심 도구가 돼버렸다.

하필 이럴 때 세계 반도체 산업을 선도해온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위상이 흔들리는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며 부흥을 꾀하고 있고, 비메모리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부문을 석권해온 대만도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우리도 과거의 일본처럼 미국·대만 등에 치여 순식간에 반도체 산업의 변방으로 밀려날 수 있다.

한국은 2021년 미국의 인텔을 제치고 반도체 매출에서 세계 1위를 탈환했으나 지난해 내내 대만의 추격에 시달렸다. 작년 3분기 매출에서는 대만에 밀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더 무서운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지적재산권 보호를 구실 삼아 중국을 배제시킨 뒤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로 하여금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기도록 유도하는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당근책도 제공되고 있다.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제정된 ‘반도체 칩스법’이 그중 하나다.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시설투자에 대해 25%의 세액공제를 해준다는 것 등이 이 법의 골자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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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탐탐 반도체 시장에서의 종합1위 자리를 노리는 시스템반도체 최강자 대만의 공세도 만만찮다. 대만은 반도체 기업의 시설투자에 대해 적용중인 15%의 세액공제율을 25%로 올리는 내용의 법 개정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대만은 파운드리 세계 1위 업체인 TSMC에 15%의 연구개발(R&D) 투자금 세액감면도 해주고 있다. 그밖에 임금은 물론 물을 많이 쓰는 반도체 기업의 특성을 고려해 상수도요금에서도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우리 정부가 수일 전 내놓은 반도체 산업 지원책은 그리 획기적이라 할 수 없다. 시기적으로도 만시지탄이라 할 여지가 있다. 정부안의 요지는 반도체와 배터리·백신 등 국가전략기술 산업 분야의 시설투자에 대해 세액공제율을 대폭 늘린다는 것이었다. 세부적으로는 중견 및 대기업은 기존의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공제율을 높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와 함께 올해 투자증가분(직전 3년 평균치 대비)에 한해서는 10%의 추가 공제를 해준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기업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불과 2주 전 국회 결의를 통해 기존 6%에서 8%로 올라간 바 있다. 당시 국회는 그 같은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당내 반도체특위가 마련한 20% 세율 적용안을 제시했으나 세수 감소가 우려된다는 정부의 저지에 부딪혀 원안을 거둬들였다. 그 결과 국회를 통과한 안이 정부의 8% 적용안이었다. 하지만 정부안은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10%안보다도 인색한 것이었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여당내 반도체 특위의 지원방안이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이에 대통령이 다시 나서 적극성을 보인 덕분에 정부가 대기업에 최대 25%까지 세액공제율을 적용하는 내용의 지원방안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미국이나 대만의 지원 강도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올 한해 추가 지원하는 10%를 제외하면 대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세액공제율은 15%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 이마저도 국회 문턱을 무사히 넘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전례로 보아 ‘부자 감세’, ‘대기업 감세’ 주장을 앞세운 반대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각에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국가의 주요 정책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었다’는 등의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유의 비판에는 일리가 있다. 정부 정책이 조변석개하면 그만큼 정책에 대한 신뢰가 추락할 수 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따라서 정부는 더 없이 낮은 자세로 국회, 특히 야당에 협조를 구하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세계 반도체 시장 현황과 함께 솔직히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적절한 선에서 유감 또는 사과를 표명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민들도 정부의 정책추진 의지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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