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중

②-1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대만

②-2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미국

②-3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일본

②-4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중국

③ 여전히 불투명한 한국의 미래 전략

 

[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세계 주요국들이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한 각축전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싸움에 불을 붙인 쪽은 이번에도 미국이었다.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8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육성법(반도체 지원법)’에 서명한 일이었다. 이 법은 미국 반도체 산업의 육성·발전을 꾀하고 기술적 우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2800억 달러(약 350조원)를 투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이른바 ‘칩4 동맹’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대상은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 세계 최강그룹으로 분류되는 미국과 한국·대만·일본이다. 미국은 설계와 장비 분야에서,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생산 분야에서, 대만은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에서, 일본은 장비 산업 분야에서 강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미국의 최근 움직임은 중국을 배제한 가운데 세계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주도권을 확고히 장악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반도체 산업 지형도가 조만간 다시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나 대만·일본은 안보 분야에서도 미국에 일정 정도 엮여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한국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 점이 현재 한국이 안고 있는 딜레마라 할 수 있다. 결국 한국으로서는 미국 및 중국과의 관계를 적절히 조율해가며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부흥을 꾀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미국이 세계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나선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미국은 1980년대에도 자국 반도체 산업이 일본 기업들에 밀리기 시작하자 힘을 앞세워 글로벌 산업구조 재편을 꾀한 바 있다. 그 결과물이 1986년과 1991년에 차례로 체결된 미·일 반도체협정이었다. 일본 기업 및 정부를 상대로 미국 정부가 체결한 당시 협정들의 골자는 △일본 기업들로 하여금 반도체를 미국에 싼값에 공급하지 않게 하면서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에 보조금 등을 지급하지 못하게 하는 것 등이었다.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 미국의 세계 1위 지위가 흔들리자 신흥 강자인 일본을 억지로 주저앉히려 했던 게 협정 체결의 목적이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협정은 성공적이었다. 두 차례에 걸쳐 체결된 협정의 효력은 기한 만료로 1996년 모두 종결됐지만, 이를 계기로 일본은 세계 최강자 지위를 미국에 넘겨주었다. 굴욕적인 협정 체결 이후 일본은 반도체 대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에 전념하며 나름의 입지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미·일 반도체협정은 한국·대만 등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어주었다. 협정 체결 이후 미국은 세계 최강의 지위를 탈환했지만 삼성전자와 TSMC 등을 각각 앞세운 한국·대만과 경쟁해야 하는 새로운 상황을 맞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반도체 지원법’과 ‘칩4 동맹’ 아이디어였다. 이들 국가를 자국 주도로 한데 엮어 세계 공급망을 장악하려는 게 주된 목적이다. 새로운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도 목적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중국 최대의 반도체 생산업체인 SMIC. [사진 = EPA/연합뉴스]
중국 최대의 반도체 생산업체인 SMIC. [사진 = EPA/연합뉴스]

하지만 중국도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며 결기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미국의 최근 동향과 맞물려 한층 강화된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14년부터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를 설립해 자국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펼쳐왔다. 450억 달러(약 56조원) 규모로 조성된 이 펀드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 등 반도체 생산기업들을 지원하는데 활용됐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미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한 번 더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1조 위안(약 183조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지원 패키지 사업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이 자금을 자국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하려 하고 있다.

한국의 라이벌인 대만의 반도체 산업 지원정책은 국내에도 널리 소개돼 있다. 우리 국회가 지난 정기국회에서 여당 주도로 발의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 계기가 됐다. 개정 법률에는 국내 반도체기업들의 시설투자에 대해 최대 8%(대기업·중견기업 기준)의 세액공제를 해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타이베이무역관에 따르면 대만 입법원(국회 격)은 지난 7일 ‘대만형 칩스법’으로 통칭되는 산업혁신조례 일부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골자는 올해 1월 1일부터 2029년 말까지 TSMC 등 자국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개발(R&D) 투자액의 25%, 설비투자액의 5%만큼을 세금에서 감면해준다는 것이었다. 감면 대상 세목은 법인세다. 단, 여기엔 한 가지 단서가 붙어 있다. 감면 총액이 전체 법인세의 50%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대만은 그러지 않아도 법인세 최고세율(20%)을 우리보다 4%포인트나 낮게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경우 지난 정기국회에서 세법 개정안이 의결됨에 따라 법인세 최고세율이 25%에서 24%로 낮아졌다.

대만은 반도체 생산 공정에 다량 소요되는 전기와 상수도 부문에서도 갖가지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추후 이 시리즈를 통해 상세히 다루겠지만 대만 정부는 반도체 산업 관련 인재 양성과 공장부지 공급에서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필수 구성요소인 땅·돈·물·전기·인재 등 필요한 분야마다 촘촘히 지원책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에 관한 한 경쟁에서 한 발 비켜서 있는 유럽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며 나름의 입지를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 대표적 움직임이 지난달 초 회원국 간 합의가 이뤄진 ‘EU 반도체칩법’(EU Chips Act)이다. 이 법은 반도체 산업에 최대 430억 유로(약 57조원)를 투입해 2030년까지 EU의 반도체 세계시장 점유율을 20%로 높이는 것을 겨냥해 만들어졌다. 생산능력을 지금의 두 배 정도로 높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일본도 옛 영화를 꿈꾸며 반도체 산업 경쟁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구체적 움직임은 지난해 11월 도요타, 소니, 소프트뱅크, NTT, 미쓰비시 등이 참여해 ‘라피더스(Rapidus)’를 결성한 일이었다. 자동차 부품과 낸드플래시 반도체, 통신사 등 각 분야의 대기업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드림팀이란 별칭을 얻은 이 조직은 향후 일본의 반도체 산업 육성·발전을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도 라피더스의 활동을 돕기 위해 자금 지원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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