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은행들이 17일부터 대출금리 인하에 나선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고, 통화정책 방향의 전환(피벗)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만 생각한다면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질 일이다. 이미 역전돼 있는 한·미 간 기준금리가 조만간 더 벌어질 것이란 점까지 고려하면 기이하게 여겨질 여지도 있다.

이날 현재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는 1.00%포인트로 벌어져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새달 1일 통화정책 회의를 마치면서 기준금리를 최소 0.25%포인트 더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금리 역전의 정도가 커지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 압박을 더 크게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은행들이 대출 자금을 조달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줄어든 점이 그것이다.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루트는 여럿이다. 그중 하나가 중앙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리는 것이다. 이 때 적용되는 금리가 기준금리다. 즉,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이 돈거래를 할 때 적용되는 정책금리에 해당한다. 그런 만큼 기준금리는 돈의 도매거래에 적용되는 일종의 도매시장 금리라 칭해도 무방한 개념이다. 도매금리는 소매금리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실제로 기준금리는 채권시장 금리는 물론 은행들의 각종 금리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장금리 전반을 주도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기준금리다. 은행들의 경우 기준금리가 오르면 수신금리를 올리는데, 이는 다시 은행들의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진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부담이 연간 3조원 이상 증가할 것이란 분석을 제시한 바 있다.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흔히 활용하는 또 다른 수단으로는 예·적금 등 수신과 채권시장을 겨냥한 은행채 발행 등이 있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직접적으로 은행들이 취급하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상품의 금리에 영향을 미친다. 수신금리와 은행채 금리 등은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 기준으로 활용하는 코픽스를 산출하는데 직접 활용되기 때문이다.

코픽스는 은행들의 자금조달비용지수를 의미하는 말이다. 코픽스 산출은 8개 시중은행이 예·적금과 금융채, 양도성예금증서(CD), 주택부금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때 드는 비용을 토대로 이뤄진다. 코픽스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꼽히는 것이 시중은행들의 예·적금 금리다.

은행들은 매달 중순경 은행연합회가 공시하는 코픽스를 활용해 변동형 주담대 금리 등을 새로 산정한다.

코픽스에는 신규취급액 기준과 잔액 기준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해당월에 자금조달에 들어간 비용만을, 후자는 해당월 이전의 자금조달 비용까지를 모두 포함해 산출한 값을 말한다.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대출상품 이율을 말할 때 신규취급액 기준이니 잔액 기준이니 하는 표현을 하게 된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최근 은행들이 대출금리 인하에 나선 것은 이처럼 산출되는 코픽스 금리 등 자금조달 비용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지난 16일 은행연합회는 12월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가 전달(4.34%)보다 0.05%포인트 하락(잔액 기준 코픽스는 3.19%에서 3.52%로 0.33%포인트 상승)했다고 공시했다. 코픽스 금리가 전달보다 하락하기는 지난해 1월(-0.05%포인트)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코픽스 하락에 따라 은행들이 취급하는 변동형 주담대 금리도 덩달아 하락할 수밖에 없게 됐다. 시중은행들은 17일부터 신규 주담대 변동금리에 새로운 코픽스 금리를 반영한다.

이에 따라 KB국민은행은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를 적용하는 주담대 변동금리를 기존 5.78~7.48%에서 5.73~7.43%로 낮추기로 했다. 전세자금대출(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 금리도 코픽스 하락폭 만큼 낮아져 5.49~6.89%를 적용받는다.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도 저마다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를 적용하는 주담대 변동금리 인하에 나선다. 우리은행은 6.41~7.41%에서 6.36~7.36%로, NH농협은 6.03~7.13%에서 5.98~7.08%로 각각 금리 수준을 하향 조정한다.

주담대 혼합형 금리와 신용대출 금리도 동반 하락한다. 각각의 지표금리인 은행채 5년물과 1년물 금리가 최근 들어 내림세로 돌아선 것이 원인이다. 최근 들어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레고랜드발 리스크가 해소된 것을 계기로 은행채 등의 금리가 하락(은행채 값 상승)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채 금리가 하락한다는 것은 은행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감소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채권금리 하락 현상을 두고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이 시장에서 선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금융 당국도 이달의 기준금리 인상분 대부분이 이미 시장에서 선반영됐다고 보고 은행들의 대출금리 인상 여부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경위야 어떻든 은행채 금리 하락은 일정 정도 은행들의 예금금리를 내려가게 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 채권시장에서 싼 값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은행들로서는 무리하게 예금 금리를 올려가며 돈을 유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예금금리 인상 억제 효과 또한 대출금리 인하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내리는 데는 당국의 압박이 작용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예금 금리 상승이 대출 금리를 끌어올릴 것이란 전제 하에 진작부터 은행들을 상대로 예금금리 인상 자제를 요구해왔다. 당국의 이 같은 요구엔 시중 자금이 은행으로만 몰리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금융소비자들의 싸늘한 시각도 은행들로 하여금 대출금리를 내리도록 압박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시중에서는 진작부터 은행들이 고금리 시기를 틈타 예대마진을 키워가며 돈 장사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금융당국과 정치권, 언론 등으로부터 파상적으로 비판이 제기되자 일부 은행들은 우대금리 확대 등의 방법으로 대출금리를 추가 인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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