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중

②-1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대만

②-2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미국

②-3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일본

②-4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중국

③ 여전히 불투명한 한국의 미래 전략

 

[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대만은 오늘날 반도체 산업에 관한 한 가장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나라다. 반도체 하나로 안보 위기와 세계적 경제난을 거뜬히 헤쳐나가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곳이 대만이다. 대만인들에게 반도체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 것이 지난해 10월 있었던 장중머우(미국명 모리스 창)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 전 회장의 CBS 인터뷰 발언이었다. TSMC 창업자인 장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중국이 대만의 반도체 산업 붕괴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대만 공격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란 말을 했다. 대만 반도체 산업의 기반이 소중하다는 것을 이보다 더 적절히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인구 2300만에 불과한 섬나라이지만 대만은 현재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절반 이상 점유하며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인 트렌드포스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대만의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64%에 이른다. 파운드리 하면 대만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만을 반도체 강국으로 이끌고 있는 곳이 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TSMC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반도체를 토대로 대만은 지난해 3분기와 4분기에 삼성전자를 제치고 연이어 분기별 반도체 매출 순위 세계 1위에 올랐다. TSMC가 발표한 지난해 4분기 매출은 6255억 대만달러(약 25조6000억원)였고 영업이익은 3250억 대만달러였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각각 43%, 78%나 증가한 경이적 수치다. 가히 ‘어닝 서프라이즈’라 할 만한 성과였다.

반면 삼성전자는 ‘어닝 쇼크’ 수준의 우울한 실적을 남겨 대조를 보였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가 기록한 실적(잠정치)은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4조3000억원이었다. 각각의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8.5%와 -69%였다. 전통적 IT기업들이 고금리 등의 직격탄을 맞았고 스마트폰과 PC 등의 수요가 감소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중 반도체 관련 매출은 19조~20조원, 영업이익은 4000억~9000억원 수준일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대체적 분석이다. 반도체 매출로 보면 3분기에 이어 연속으로 TSMC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는 얘기다.

TSMC의 경이적 도약은 세계 반도체 시장의 판도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의 주력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가 수요 부진의 늪에 빠져드는 동안 시스템 반도체(일명 비메모리 반도체)가 세계 시장의 새로운 총아로 각광받게 된 현실이 파운드리 산업의 획기적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파운드리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회사)가 맞춤형 주문을 하면 위탁생산을 해주는 반도체 제조업체를 지칭한다. 메모리 반도체가 한 개의 회사에서 설계와 생산이 모두 이뤄지는 것과 달리 쓰임새가 다양한 시스템 반도체는 대개 설계와 생산이 분리된 생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점이 요즘 같은 세계적 불황기에 시스템 반도체가 오히려 각광받는 요인이 되고 있다. 메모리 산업이 선(先)생산-후(後)판매 과정의 구조를 갖다 보니 요즘 같은 때 재고 증가→반도체 가격 하락의 악순환을 겪는 것과 달리, 시스템 반도체는 선주문-후생산 과정을 거치는 관계로 재고 처리 문제로 고민할 이유가 없다.

시장 점유율은 물론 수요 증가 측면에서도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를 압도한다. 시장 규모로 보면 시스템 반도체가 메모리의 1.5배 정도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나아가 연산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스템 반도체는 CPU와 AP(Application Processor: 스마트폰에서 컴퓨터의 CPU 역할 수행), GPU(Graphics Processing Units), 지문인식 센서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면서 수요를 늘려가고 있다.

대만에서는 이처럼 잘 나가는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세계 굴지의 파운드리가 여럿 활동하고 있다. 트렌드포스가 집계해 밝힌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 세계랭킹 10위의 파운드리에는 대만 업체가 4개나 포함돼 있었다. 각각의 회사는 1위 TSMC, 3위 UMC, 7위 PSMC, 8위 VIC 등이었다. 이들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차례로 56.1%, 6.9%, 1.6%, 1.2%였다. 이들 4개사의 점유율 합계만 해도 65.8%에 이른다.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2위에 자리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5.5%였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대만은 굵직한 팹리스 기업들도 다수 거느리고 있다. 트렌드포스가 밝힌 21년 3분기 기준 세계랭킹 10위권의 팹리스에는 대만 기업 4개가 포함돼 있다. 미디어텍과 노바텍, 리얼텍, 하이맥스가 그들 기업이다. 1위(퀄컴)를 포함한 나머지 6개는 모두 미국 기업들이다.

시스템반도체 최강자로 자리매김한 TSMC는 현재 가장 앞선 기술공정을 토대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TSMC의 강점 중 하나는 누적된 반도체 IP(지식재산권)이다. 이를 활용해 저비용으로 단시간 안에 반도체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TSMC는 시장 개척을 위한 해외투자에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현 시점에서만 보더라도 내년 말 가동을 목표로 일본 구마모토에 공장을 짓고 있고, 동시에 일본 내 제2 공장 부지까지 물색하고 있다. 세계적 기업인 도요타와 소니 등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TSMC 측은 유럽에서도 첫 번째 공장을 짓기 위해 부지를 물색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도 TSMC의 주요 투자 대상국에 포함돼 있다. TSMC는 지난달 초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지은 공장에서 장비 반입식을 가졌다. TSMC는 연간 수익 100억 달러를 목표로 이 공장에 4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대만은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 수출의 40% 정도를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다. 대만으로서는 반도체가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산업 분야가 되어준 셈이다. 인구수가 적은 대만이다 보니 전체 경제 규모 면에서는 아직 한국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1인당 소득만큼은 한국을 이미 앞질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에 대만이 1인당 소득에서 3만5510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일본과 한국의 1인당 소득 추정치 3만4360달러, 3만3590달러를 모두 앞섰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IMF는 대만의 경제성장률이 2021년 6.57%, 지난해 3.31%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했다. IMF는 대만이 올해에도 2.84%의 성장을 이룰 것이란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은 1.7%를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가 안보와 민생을 동시에 해결해줄 도깨비 방망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대만 정부도 자국 기업들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최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타이베이무역관이 전해온 바에 따르면 이달 7일 대만 입법원은 ‘대만형 칩스법’으로 통칭되는 산업혁신조례 일부법률개정안을 의결했다. 올해 1월 1일부터 2029년말까지 시행되는 이 법안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만 경제부와 재정부는 올해 상반기 안에 하위법령을 마련키로 했다.

이 법안은 기술혁신을 수행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적 지위에 있는 기업들에게 R&D 투자액의 25%, 설비투자액의 5%를 법인세에서 감액해주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가지 혜택의 적용 방식은 or가 아닌 and다. 다만, 두 가지 혜택이 겹쳐져 그 합이 법인세의 50%를 초과하지 않도록 했다.

눈에 띄는 것은 혜택의 주 대상이 TSMC 같은 대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국회가 지난 정기국회에서 ‘부자 감세’ 운운하며 대기업들에게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춰주고, 국가전략기술산업 수행 대기업에 대폭적 혜택을 주는 것에 반대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대만 내 학계에서는 이번의 입법원 조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반도체 장비와 재료 분야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별도의 노력이 펼쳐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만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노력은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물·토지·전력·인재 등을 분야별로 나누어 촘촘히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깨끗하고 풍부한 물 공급은 반도체 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TSMC의 경우 2021년 한 해에만 7610만t의 물을 사용했다. 이 점을 감안, 대만 정부 당국은 가오슝시와 공동으로 건설할 재생수 공장 4곳 중 두 곳을 반도체 기업의 물 수요 충족을 위해 가동하기로 했다. 반도체 기업들이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경우를 대비한 지원계획이라 할 수 있다.

대만 행정원은 1나노급 반도체 생산 시설 부지로 떠오른 타오위앤의 롱탄(龍潭)지구가 토지 임대 여력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오자 지구 확충 계획 마련을 추진하고 나섰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전력 공급 또한 대만 정부가 신경을 기울이는 대목이다.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은 대만전력공사가 판매하는 전력의 5분의 1을 소모할 정도로 전력 수요가 많은 편이다. 이 점을 고려해 대만전력공사는 TSMC 2나노 공장이 들어서는 신주과학단지 등에 초고압 변전소를 신설·확충하기로 했다.

반도체 산업 발전을 이끌 인재 양성 노력도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이를 위해 대만 정부는 2021년 5월 ‘국가중점분야 산학협력 및 인재양성 혁신조례’를 제정했다. 정부와 기업·대학이 힘을 합쳐 중점분야 전문연구학원(대학원)을 설립해 석·박사급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이 조례 제정의 목적이다.

이와 별개로 대만 노동부는 지난해 말 양명교통대와 공동으로 ‘반도체 및 중점과학기술산업 인재발전기지’를 개설했다. 이 곳은 15세 이상 구직자와 실업자, 취업준비생 등을 대상으로 학비 지원과 함께 직업훈련을 실시해 초·중급 기술인력을 배출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여기서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에겐 알선을 통해 반도체 기업 취업의 기회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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