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불통의 벽을 하나하나 쌓아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출발은 요란했으나 용두사미식으로 소통 의지가 흐지부지되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우려의 배경엔 출근길 문답 중단, 대통령 출근 통로와 기자실 간 가벽 설치, 특정 언론사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신년 기자회견 생략, 조선일보와의 신년 단독 인터뷰 등등의 심상찮은 전개 과정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는 특히 실망적인 사건이었다. 소통의 유용한 수단인 인터뷰가 역설적으로 불통의 끝판 격이 되어버렸다. 신년 기자회견을 대체한 것으로 보이는 이 회견은 윤 대통령의 언론관이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인터뷰 내용을 두고 메시지가 있네 없네 말들이 많았지만, 진짜 중요한 문제는 대통령이 취해서는 안 될 형식으로 신년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점이었다. 대통령실은 부처별 신년 업무보고를 통해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겠다고 미리 해명했지만, 실제로는 조선과의 새해 벽두 인터뷰(1월 2일자)가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대체한 꼴이 되고 말았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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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에 올해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의 신년 메시지를 일방적 신년사 발표와 연이어 실시된 특정 신문사 단독 인터뷰를 통해 접해야 했다. 당초 기대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많은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맞는 새해인데다 국내외 정세(情勢)마저 심상치 않은 상황인 만큼 내실 있는 신년 기자회견을 진행하리라 기대했었다. 북핵과 경제, 한결 민감해진 한·중 및 한·일 관계, 개혁과제 이행 로드맵, 거대 야당과의 협치, 봉합되지 않는 여권 내부 갈등, 고물가 관련 민생문제 등 다양하고도 민감한 현안에 대해 대통령의 진솔한 생각을 듣고 싶어 했던 것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전임자와의 차별을 강조하며 소통 의지를 유난히 강하게 내비쳤던 점도 그런 기대감을 키워주었다.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사실 약식회견 중단이 신년회견 생략이라는 결과로까지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약식회견에서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신년회견을 진정한 소통의 장으로 만들어주길 기대하는 이들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문제적 언론이라는 이야기를 하려 함이 아니다. 이념적 색채가 어떠하든 특정한 정체성을 지닌 매체 하나만을 상대로 질문을 받은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특정 언론사의 단독회견이 갖는 가장 큰 결함은 질문에 담기는 문제의식과 시각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코드’가 맞는 매체와의 인터뷰라면 대통령실이 처음부터 그걸 노렸다고 보아야 한다.

유사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유별난 폭스뉴스 사랑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결말은 실패로 돌아갔다. 누구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소통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하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반대중이 신뢰하는 CNN이나 뉴욕 타임스 등을 적대시한 채 폭스뉴스에만 차별적 호의를 표한 것이 원인이었다.

국정 운영자의 소통은 코드가 다른 매체들로부터 불편한 질문을 받아 상응하는 답변을 제시함으로써 국론을 조율해 나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소수의견이 갖는 나름의 가치를 인정하고 최대한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소통을 위한 기본자세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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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이해를 따지더라도 이번 신년회견은 득보다 실이 많은 선택이었다. 언론을 담당하는 대통령실 참모들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 화를 자초했다고 생각된다. 언론과 기자들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참모들이었다면 대통령의 신년회견이 특정 언론사의 단독회견 형식으로 진행되도록 놔두지는 않았을 터이니 하는 말이다.

이런저런 출입처를 드나들었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부여되는 회견을 기관장이 특정 매체와 단독으로 하는 것은 금기에 해당한다. 이는 해당 기관도 알고 기자들도 익히 아는 불문율이다. 매체별 창간기념 등의 용도가 아니라, 유의미한 계기에 사회가 공유하는 주제를 두고 기관장이 특정 매체와 따로 회견을 하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로 치부된다. 기관장의 단독회견 응대가 결국 해당 매체 외의 모든 언론사를 적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 그 원인이다.

드러내놓고 할 말은 아닐지 모르지만, 기자들도 사람인지라 현실 속에서는 그게 인지상정으로 통한다. 아마도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자들이 출입하는 모든 기관 또는 조직에서 나타나는 공통 현상이 아닐까 싶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실이 기자단으로부터 순번제 풀기자 제도를 수용함으로써 출입기자들에게 근접 취재 기회를 고르게 부여하는 것도 언론들의 그런 생리를 고려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입맛에 맞는 언론만 상대하려 하는 것은 불편한 질문, 공격적인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해할 만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야심차게 출근길 약식회견을 했다가 뜻하지 않게 상처를 입곤 했던 불유쾌한 기억들이 공격적 언론을 기피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지금 같은 언론 대응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 정권에 까칠한 공영 케이블 방송을 섣불리 민영화하려는 일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론 언론이 어느 정도 상업성을 띠는 것이 맹목적 이념 추구를 억제시키며 합리성을 보강해주는 효과를 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공영 언론의 소유형태 변경은 정권이 쾌도난마식으로 주도할 일은 아니다. 그런 행태는 북한·중국 같은 통제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언론을 대하는 대통령의 자세다. 치열한 고민 없이 사사로이 친구 만나듯 편하게만 언론을 대하려 한다면 진정한 소통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모든 언론이 내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재치와 입담 자랑을 위한 무대가 아닌 만큼 치밀한 사전 준비와 어휘 선택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때로는 ‘언필칭 요순이요 공맹’이란 또 다른 비아냥을 들을지언정 그게 소통의 명분을 살리면서 엉뚱한 설화(舌禍)를 막을 현실적 대안이다.

윤 대통령의 공동 기자회견 거부는 일시적 현상일 것이라 믿고 싶다. 연말 연초에 걸쳐 두 달 가까이 진행된 부처별 업무보고도 막 마무리됐으니 이제라도 대국민 보고형식의 대통령 기자회견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단점 보완을 위한 연구·검토는 충분히 이뤄졌을 테니 출근길 약식회견도 조만간 재개됐으면 한다. 특히 약식회견 재개와 지속은 두고두고 ‘소통하는 대통령이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듣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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