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중

②-1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대만

②-2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미국

②-3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일본

②-4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중국

③ 여전히 불투명한 한국의 미래 전략

 

[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반도체에 대한 중국의 최대 고민은 수요·공급의 불일치에 있다. 미국과 함께 세계 최대의 반도체 수요국이면서도 반도체 자급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게 원인이다. 반도체칩 생산에 관한 한 미국 역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저간의 사정엔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이 반도체 원천기술과 장비 생산, 반도체 설계 능력 등에서 우월한 지위를 누리는 반면 중국엔 그런 지적 자산이 결핍돼 있다.

기술이 뒤처져 있는 탓에 중국은 반도체칩과 장비의 수요를 주로 수입에 의존해왔다. 칩의 경우에도 고급공정 제품은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왔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요즘 들어 미국은 그 같은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중국을 괴롭히고 있다. 고급공정이 요구되는 반도체와 첨단 장비의 대(對) 중국 수출을 제한하기 위해 각종 조치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혼자만 훼방꾼 노릇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일본과 유럽·대만은 물론 한국까지 끌어들여 대중 압박 대열에 합류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미국은 자국 주도의 세계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적극성을 보인 일본에 대해서는 보상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IBM과 협력해 일본의 신생 반도체 기업연합인 ‘라피더스’에 2나노 기술을 전달키로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라피더스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 지원 하에 도요타와 소니 등 일본 8개 대기업이 작년 11월 공동으로 설립한 반도체 생산법인이다.

일본 정부가 700억엔(약 6640억원)을 지원하는 이 법인은 2027년부터 2나노급 비메모리 반도체를 양산한다는 목표를 세워두었다.

최근 일본의 니콘, 도쿄일렉트론(TEL)과 네덜란드의 장비 생산업체 ASML 등은 중국으로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하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지난해 10월 미국 상무부가 밝힌 대 중국 반도체 장비수출 규제 방침에 따라 만들어진 결과였다.

중국의 위기감은 지난해 10월 열린 20차 당대회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궈타이쥔안 증권연구소의 황웨이츠 애널리스트는 작년 11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베이징무역관이 ‘20차 당대회 이후 중국경제 전망’이란 주제로 개최한 웹 세미나에서 지난 당대회의 주요 키워드가 ‘안보’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그 중 하나로 ‘공급망 안보’를 지목했다. 향후 중국 정부가 식량 안보, 에너지 자원 안보와 함께 공급망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란 얘기였다.

그는 중국이 특히 미국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력 강화와 안전·자립형 공급망 구축에 무게를 둔 산업정책을 펼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 중 핵심은 ‘반도체 자국화’ 또는 ‘반도체 자국화율’ 향상이다. 중국 반도체 산업 육성의 일차적 목표는 반도체의 자급자족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노력을 한 마디로 압축한 표현이 ‘반도체 굴기’다.

외신들은 최근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위해 1조 위안(약 186조원) 이상 규모의 반도체산업 지원 패키지를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올해 1분기부터 작동할 이 패키지는 향후 5년 동안 반도체 제조설비 투자에 대한 지원 및 세제 혜택 등에 활용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외부로부터의 기술 이전이 차단된 가운데 중국의 기술자립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중국은 2014년에도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450억 달러(약 57조원) 규모의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대기금)를 설립해 관련 기업 지원에 공을 들였다. 이를 업고 성장한 기업이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인 SMIC와 국영 YMTC 등이다.

[사진 = EPA/연합뉴스]
[사진 = EPA/연합뉴스]

중국은 2015년엔 반도체 생산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중국제조 2025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다. 중국을 2025년까지 제조업 강국으로 육성한다는 게 목표였고 그 중 일부가 1조 위안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겠다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반도체산업 지원패키지가 그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목표연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린다는 게 구체적 목표였다.

중국 정부는 이전부터 반도체 산업 지원에 열을 올려왔으나 정부의 직접 지원에 치우친 나머지 세계무역기구(WTO) 등으로부터 제지를 받곤 했다. 하지만 대기금을 동원한 지원정책은 이전과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민간기업 중심으로 기금을 조성해 반도체 생산기업을 지원하고 이를 토대로 산업계가 독자적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해가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아직까지는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반도체 설계와 생산, 소비의 전 단계를 아우르는 반도체 자립 구도를 구축하려면 아직 갈 길이 먼 게 엄연한 현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시부터 한층 강화된 미국의 중국 견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로 작용했다.

현재 중국은 반도체의 주요 수입국으로 분류된다. 2021년 기준 중국의 반도체 수입액은 3500억 달러(약 441조원)에 달했다. 전체 수입액의 13%가 반도체를 사들이는데 투입됐다.

반면 생산 부문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비메모리 분야에서 상대적 강점을 보이고 있다지만, 반도체 전체로 보면 전세계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디지타임스가 지난해 봄 발간한 ‘2022년 반도체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2021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한 매출 비중은 6.1%였다. 미국이 전체 5559억 달러 중 2739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전체 시장의 49.3%를 장악했다. 그 다음 순위는 한국(19.3%), 대만(9.7%), 일본(6.6%) 등이 차지했다. 유럽지역 국가들의 매출 비중은 8.5%로 집계됐다.

미국은 칩 생산에서는 한국(메모리)이나 대만(비메모리)에 뒤지지만 팹리스(자체 설계 후 위탁생산한 반도체를 판매하는 회사)와 칩리스(자체 브랜드 없이 칩 설계만 하는 회사), 반도체 장비 생산, 칩 생산 등을 망라한 반도체 관련 산업 전반에서 주도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중국은 파운드리 부문에서도 10%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밝힌 2022년 3분기 기준 파운드리 매출 순위에서 ‘톱10’에 든 중국 기업은 5위 SMIC(5.3%)와 6위 화홍(3.3%), 10위 넥스칩(1.0%) 등 세 개다. 메모리 부문에서의 점유율은 이보다도 크게 부진한 상태에 있다.

비메모리에서 보다 강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중국은 팹리스 기업 순위에서는 더욱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트렌드포스가 발표한 2021년 3분기 팹리스 매출 순위 ‘톱10’은 미국과 대만 기업들로만 채워져 있다. 미국 회사들인 퀄컴(1위)과 엔비디아(2위), 브로드컴(3위), AMD(5위)가 대만 미디어텍(4위)과 함께 5강을 형성한 가운데, 대만의 노바텍(6위), 리얼텍(8위), 하이맥스(10위)가 사이사이 순위표에 이름을 올렸다. 점유율(톱10 매출 기준)로 보면 1위 퀄컴이 22.9%를, 상위 5위 이내의 미국 4개사가 도합 71.4%를 차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미국의 강한 압박을 만나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다만 미국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반도체 자급자족을 위해 ‘자국화율’을 높이려는 노력은 더욱 가열차게 진행될 것이라는 게 전문기관들의 관측이기도 하다. 트렌드포스 등 조사기관들은 중국 반도체 산업이 당분간은 성숙된(레거시) 공정을 통한 반도체 생산에 치중하면서 기회를 모색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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