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중

②-1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대만

②-2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미국

②-3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일본

②-4 주요국 반도체 산업 동향: 중국

③ 여전히 불투명한 한국의 미래 전략

 

[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오늘날 세계 반도체 산업은 1990년대에 버금가는 격변기를 맞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반도체 최강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했던 일본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압력으로 1차 및 2차 미·일반도체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스스로 입지를 약화시켰고, 1990년대 중반 협정이 소멸된 이후엔 과감한 투자를 망설이다 한국에마저 추월당하는 상황을 자초했다.

이후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일본은 경제규모 순위에서 중국에 한참 뒤진 3위의 자리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의 비극을 맞게 된 데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의 주도권 상실이 한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반도체 산업은 다시 미국이 압도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반도체 생산과 설계, 장비 등에 걸쳐 두루 우월한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원천기술에 관한 한 미국에 맞설 수 있는 나라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경제 규모 면에서 유일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려 드는 제2의 경제대국 중국을 배제한 가운데 반도체 가치사슬의 확실한 중심축이 되려 하고 있다.

삼성전자 평택공장 내부. [사진 = 연합뉴스]
삼성전자 평택공장 내부. [사진 = 연합뉴스]

미국은 미·일 및 미·일·대만, 더 크게는 한·미·일·대만을 하나의 가치사슬로 엮어 미국을 세계적 반도체 생산기지로 만들려는 작업을 차근차근 벌여나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디지타임스 분석(‘2022년 반도체산업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은 2021년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2739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세계 전체 매출(5559억 달러)에서 미국이 차지한 비중은 49.3%였다.

다음 순위는 한국 19.3%, 대만 9.7%, 일본 6.6%, 중국 6.1% 등이 차례로 차지했다. 한국·대만은 반도체 생산에서, 일본은 장비와 소재 분야에서 비교적 강한 면모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한국·대만의 선전은 미국이 반도체 소비를 수입에 의존하는 전략을 쓴 덕분에 가능했다. 장비와 반도체 설계 분야 등에서의 우위를 지키면서 제품 생산은 사실상 외국 기업에 아웃소싱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 한국·대만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제 세계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 목적은 반도체 물량의 안정적 확보다. 원천기술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반도체 생산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0년대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져 있는 점이 그 원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되면서 반도체 대란이 일어났던 것이 미국의 반도체 물량 결핍을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미국이 반도체 산업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루기 시작한 것도 그런 경험 때문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일본이나 대만·중국 등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를 35%가량 소비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선은 자국내 생산 능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일 수밖에 없다. 일본이나 중국이 벌이고 있는 반도체 산업 지원도 일차적으로는 반도체 자급 능력 확보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현재 반도체 생산에서 대만과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대만이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는 바람에 1위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대만은 특히 세계적으로 수요가 더 많고, 시장 안정성에서 앞서는 비메모리 생산에서 한국을 압도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단기 기준이긴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에 삼성전자가 대만의 TSMC에 반도체 매출 선두 자리를 내준 것도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의 희비가 갈린 데서 비롯됐다.

지난해 4분기의 경우 삼성전자는 반도체(DS) 부문에서 20조7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화로 환산한 TSMC의 같은 기간 반도체 매출은 25조원대였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최강인 TSMC는 특히 영업이익률에서 삼성전자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성적(52%)을 올려 부러움을 샀다. 삼성전자가 겨우 흑자를 기록했고, SK하이닉스가 적자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메모리가 수요 감소와 재고 누증으로 인해 단가 하락에 고전한 것과 달리 비메모리 반도체의 몸값이 높아진 것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삼성전자 평택공장. [사진 = 연합뉴스]
삼성전자 평택공장. [사진 = 연합뉴스]

오늘날 반도체 산업은 큰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거대 소용돌이는 미국을 위시해 대만·일본·중국, 그리고 유로존 국가들이 저마다 반도체 산업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육성·발전시키려 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첨단기술을 요하는 산업에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망 확보에 사활을 거는 한편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저마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반도체 산업 블록화도 그와 직결돼 있다.

각국이 쓰는 전략은 대동소이해 보인다. 이 시리즈의 앞선 기사들에서 보았듯이 주요국들은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해 특별법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의 ‘CHIPs for America Act’, 대만의 ‘산업혁신조례’, 일본의 경제안전보장추진법, 유럽연합(EU)의 ‘European Chips Act’ 등이 그에 해당한다.

나름의 특별법을 통해 사회주의 성격의 중국은 물론이거니와 미국이나 대만·일본·유로존조차도 국가가 앞장선 가운데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직접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대만 TSMC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또 연합법인 ‘라피더스’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투자금 일부를 지원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각국 정부의 지원은 세제 개편을 통해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나아가 부지 조성과 공장 건설을 위한 행정 지원, 반도체 산업의 필수 요소인 전기와 물 공급 등 다방면에서의 지원이 특별법을 근거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 정부가 ‘대기업 특혜’니 ‘지역균형 발전’이니 하는 해묵은 반발논리에 막혀 반도체 산업 지원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들이다.

지원 부족을 대변해주는 대표적 사례가 공장 건설에 걸리는 기간이다. SK하이닉스는 2019년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공장 부지를 선정했지만 각종 행정 규제와 토지 보상 등에 발목이 잡혀 더디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 전망으로는 2027년에 이르러서야 공장 가동이 이뤄지게 된다. 부지 선정에서 제품 생산까지 걸리는 기간이 8년임을 알 수 있다.

반면 대만 TSMC가 일본에 짓기로 한 제1 공장의 경우 사업 발표(2021년 11월 일본 언론 첫 보도)에서 공장 가동까지 걸리는 기간이 3년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일본 정부와 TSMC는 내년 말 가동을 목표로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짓고 있다. 사업 발표 후 이뤄진 부지 선정을 기산점으로 치면 2년 수개월 만에 거대한 공장 하나가 지어지게 되는 것이다. 속전속결을 가능케 하는 것이 나라별로는 이름이 다른 소위 ‘반도체 특별법’이다. 정부가 부지 선정에서 공장 건설 인·허가, 물공급 시설 및 송전시설 확충 등을 적극 도와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아가 각국 정부는 필수 인력 공급을 위해 교육제도 개편에 나서는 동시에 생산시설 건설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역민들과의 갈등까지도 적극적으로 해결해주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정부가 주도해야만 육성·발전될 수 있는 분야이다. 이를 인식해 우리 정부도 반도체 특별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회 관문을 쉽사리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늉만 내려는 듯한 정부의 소극적 태도도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반도체 특별법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첨단산업특별법) 개정안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그에 해당한다. 전자는 예비타당성 조사 완화 및 면제 등 인·허가 절차 간소화 내용을, 후자는 반도체 기업에 대한 세제혜택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첨단산업특별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중’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법안 발의자인 양향자 의원이 담으려 했던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증원 조항은 삭제된 채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삭제의 근거는 ‘지역 균형 발전론’이었다.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지난해 말 국회 문턱을 넘어섰으나 세제 지원이 빈약하다는 대통령의 지적에 의해 새로운 내용으로 다시 국회로 되돌려졌다. 새로 제출된 법안의 주 내용은 세액공제율을 대기업과 중견기업 8%→15%, 중소기업 16%→25%로 높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대기업 특혜’라는 야당 일각의 반대에 부딪혀 난항하고 있다. 지난 14일 국회 논의 과정에서는 대통령의 지시로 지원이 강화된 법안이 새로 제출된 점을 들어 “대통령 한 마디에 또 법을 또 고치려 하냐”라는 반발까지 더해졌다.

남들은 날고 뛰는데 우리는 이리저리 조리돌림을 당하며 이미 누더기가 돼버린 반도체 산업 지원법안들조차 마냥 시간을 끌며 정치적 논쟁거리로 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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